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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버 피치 - 나는 왜 축구와 사랑에 빠졌는가
닉 혼비 지음, 이나경 옮김 / 문학사상사 / 2005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스포츠를 좋아하는 사람 중에도 축구를 싫어하는 사람이 있다. 모든 스포츠가 그렇겠지만 축구만의 독특한 게임 방식이 나름의 특성과 재미를 전해 주기도 하고, 지루함과 답답함을 전해주기도 한다. 공 하나를 놓고 스물 두 명의 성인 남자들이 목숨을 건다. 축구의 룰이 다른 스포츠에 비해 간단하다는 것은 큰 매력이다. 손을 사용하지 않고 온 몸을 이용해서 상대방의 골대 안에 집어넣으면 된다. 얼마나 단순하고 깔끔한 규칙인가. 전문 용어를 몰라도 전술을 이해하지 못해도 좋다. 서로 뺐고 뺐으려는 일련의 충돌과 집착, 열정과 몰입이 보는 사람에게 전이된다. 축구를 전쟁에 비유하기도 하고 인생에 비유하기도 한다. 물론 많은 스포츠가 세상사에 비유되기도 하지만 축구만큼 인간의 전쟁과 닮은 경기는 없다. 영국에서 출발한 축구가 전 세계로 확산되기 시작한 것은 제1차 세계대전과 무관하지 않다.
영국인들에게 축구는 종교와 유사하다고까지 할 수 있다. 특히 <비버 피치>의 저자 닉 혼비같은 열성 팬의 경우는 종교보다 축구가 우선한다. 태어나면서부터 각 지역 연고팀과 끈끈한 유대관계 속에서 국가대표 팀보다 지역 연고 축구 클럽에 대한 애정과 정성이 훨씬 더 강한 것은 어쩌면 당연한 모습처럼 보인다. 생활과 축구가 분리되지 않는 상태인 저자에게 객관적인 시선과 축구에 대한 다양한 즐거움을 찾아내는 것은 부질없다. 이 책을 통해서 우리가 확인할 수 있는 것은 축구를 얼마나 좋아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저자 닉 혼비는 말한다. 나만큼 축구 좋아하는 사람 있으며 나와 바라고. 없을 것 같다.
캠브리지 출신의 작가 닉혼비가 축구에 대한 열정이 어느 정도인지, 축구를 좋아한다고 말을 하려면 어느 정도가 되어야 하는지 반성(?)하게 하는 책이다. 쉽게 말하면 닉 혼비는 축구에 미친 놈이다. 어느 분야든 매니아는 있게 마련이다. 정도가 다르고 몰입의 깊이가 다를 뿐이지만 우리 주변에는 자기 생의 한 부분을 차지하는 아주 중요한 면을 가진 사람을 보면 충분히 행복해 보인다. 그것은 돈과 명예와는 무관하다. 물론 경제적인 부분이 뒷받침되어야 하지만 그걸로 해결되지 않는 나름의 독특한 즐거움을 찾아내고 즐기는 사람들이 가장 부럽다. 당연한 말이겠지만 그것이 생의 즐거움이나 인생의 목적과 직결되기도 하니까. 닉 혼비는 인생과 축구가 혼연일체다. 그가 응원하는 아스날의 경기결과와 시즌 성적이 그의 생활과 인생과 기분을 좌우한다. 이 정도면 그에게 아스날은 축구 클럽이 아니라 하나의 종교다.
닉 혼비는 스스로 말한다. 나는 강박증 환자라고. 주변 사람들이 얼마나 힘들어하는지 알고 있으면서도 그것을 고치거나 바꿀 생각은 없다. 왜냐면 노력한다고 해서 달라지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스스로 알기 때문에 미안할 뿐 노력하지 않는다. 축구가 그럴 수 있는 요소를 충분히 가지고 있다고 독자들에게 설명하거나 유혹하지 않는다. 다만 자신의 축구 사랑과 자신의 인생을 축구 경기와 함께 풀어내고 있는 그의 이야기들을 읽어나가다 보면 자연스럽게 독자들도 축구를 한 번 보고 싶다. 특히 아스날의 경기를 꼭 한 번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그것이 이 책의 목적은 아니다. 닉 혼비는 그저 축구가 내 인생에서 어떤 의미인지 고백하고 있을 뿐이다. 솔직하고 진지하게. 아니다, 진지하게는 아니다. 이 책의 또 다른 매력은 작가인 닉 혼비의 재치있는 문장에 있다. 유머와 축구와의 결합이다. 그렇다고 해서 가벼운 농담이 아니라 짙은 페이소스를 자아내게 하는 블랙 코미디다. 순간순간 자신이 얼마나 기뻤고 행복했는지, 아스날의 경기 결과에 따라 얼마나 불행하고 우울했는지를 저자는 적절한 비유를 통해 익살스럽게 표현하고 있다. 그것이 독자들에게는 더 진한 공감대를 형성하게 한다. 읽는 사람 입장에서는 그것이 축구가 아닌 자신이 좋아하는 다른 분야와 치환해서 읽어도 감정이 이입될 수 있기 때문이다. 닉 혼비에게는 그것이 모두 축구인 것이 문제다. 그것도 아스날이라는 축구 클럽의 경기 결과 하나 때문에.
미하이 칙센트 미하이의 <몰입의 즐거움>에 보면 하루에 ‘몰입’하는 시간의 비율이 성공의 척도라고 말한다. 그런 면에서 본다면 닉 혼비처럼 ‘축구’에 완전히 ‘몰입’하는 사람들이 인생에서 성공할 확률이 높은 것일까. 부인보다 축구를 선택하겠다는 수많은 영국 남자들에게 축구는 단순한 경기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월드컵 시즌의 ‘축구과부’를 위한 호텔 패키지 상품이 불티나게 팔리는 나라 영국에서도 특별히 축구이 ‘미친’ 저자의 책은 객관과 이성으로 축구를 접근하고 싶은 사람에게은 절대 읽지 말아야 한다.
결국 아스날의 홈구장인 ‘하이버리’ 근처로 이사하게 된 저자의 생활이 지금은 어떤지 궁금하? 무언가 미치게 할 수 있는 것을 갖고 있는 사람은 행복하지 않을까. 그런면에서 닉 혼비는 누구보다도 행복한 축구팬이다. 그간 벌어진 수많은 축구장 참사를 들먹이며 훌리건에 대한 사회정치적 분석을 시도하는 것도 닉 혼비 앞에서 무기력 해 보인다. 경계를 규정 지을 수 없으나 약간의 폭력사태를 축구팬의 열정으로 축구장에서 빼놓을 수 없는 장면으로 인정하면서도 죽음을 부른 일부 과격 훌리건들에 대해서는 분노와 차가운 비판을 서슴지 않는 이중적인 태도를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그의 축구에 대한 순수한 열정과 사랑이 퇴색하거나 부정적인 면으로 비쳐지지는 않는다. 왜냐면 그는 가장 순수한 아스날의 팬이며 축구를 사랑하는 한 남자의 모습을 가장 솔직하게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조금 다른 측면에서 축구에 대한 관심과 열정을 가지고 있다고 해서 그를 찬양하거나 비난할 필요는 없다. 축구에 대한 그의 열정만큼 우리에게 몰입할 수 있는 그 무언가를 가지고 있는지 그것이 궁금하다. 나이가 들면서 지정 좌석을 가진 시즌권을 끊는 등 몇 가지 변화가 있었지만 기본적으로 그는 여전히아스날을 응원하고 있을 것이다. 축구장을 의미하는 ‘피치’와 열정을 의미하는 ‘피버’가 모여 <피버 피치>라는 제목이 탄생했다. 우리들 인생에서 열병을 앓게 하는 무엇인가를 발견한 사람은 얼마나 행복할까하는 생각이 다시 한번 들게 하는 책이다.
060605-06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