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격하고 서툰 사랑 고백 우리시대의 논리 1
손석춘 지음 / 후마니타스 / 200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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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시대와 세상살이를 묶어 보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책으로 보는 세상살이는 더욱 느낌이 새로워진다. 먼 과거의 이야기도 아니고 미래에 관한 전망도 아닌 불과 얼마 전에 벌어진 일들에 대한 철저한 망각과 혹은 세밀한 분석은 관계자들만의 몫으로 돌려버리기 쉽다. 군중 혹은 민중의 입장에서 보면 머나먼 이야기 일 수도 있고 내 이야기지만 하릴없이 속으로만 분노하는 경우도 많다. 세상 모든 일이 나와 무관한 일이 어디 있을까. 더구나 바로 우리가 살아가면서 직접 만나게 되는 현장속의 일들일 경우에는 더욱 문제가 된다. 토인비의 말처럼 인간의 가장 큰 불행은 역사에서 아무것도 배우지 않는 데 있는 지도 모른다.

신문의 칼럼은 가장 첨예한 문제들을 담아내는 현실적 문제의 돋보기다. 사설이 아니라 기명칼럼의 경우 개인적인 식견과 관점이 두드러지기 때문에 특정인의 칼럼만을 가지고 하나의 문제를 다양하게 바라볼 수는 없다. 하지만 모두 같은 수준의 칼럼을 방향만 달리 한 채 쓰는 것도 아니다. 소위 ‘조중동’의 사설과 칼럼들을 조목조목 반박하고 평가하면서 꼬장꼬장한 목소리로 자신의 의견을 끝까지 뱉어내는 것은 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의 입장에서 본다면 특별한 용기임에 틀림없다. 본업이 작가나 대학에 몸담고 있는 교수가 아니라 언론인이라면 더욱 그렇다. 그런 면에서 손석춘의 칼럼들은 특별함을 가진다.

세상에 대한 끊임없는 발언과 결기있는 자세는 결국 이 땅에 사는 사람들에 대한 ‘사랑’이라고 말하는 손석춘을 어떻게 볼 것인가는 독자의 몫이다. <과격하고 서툰 사랑고백>은 소설이나 시집 제목으로도 손색없다. 그러나 이 책은 세상과 소외된 이웃들에 대한 진정한 ‘사랑고백’임에 틀림없다. 2004년과 2005년 한겨레의 칼럼들을 모아놓은 이 책은 가장 역동적인 시기를 살았던 우리의 기억들을 새롭게 한다. 정치적으로는 대통령 탄핵과 17대 총선이 절정을 이룬다. 미국의 이라크 침략과 한국군 파병은 고 김선일씨에 대한 아픈 상처를 덧나게 한다. MBC 이상호 기자의 X-파일을 어떻게 되었나?

불과 얼마전까지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일들을 우리는 때때로 까맣게 잊고 지낸다. 기억력의 한계 때문이 아니라 실제 생활과의 거리감때문일지도 모른다. 주변에 가까운 누군가의 죽음도 시간이 가면 잊혀지기 마련이지만 현실의 문제들은 잊혀지더라도 끝나지는 않는다. 우리의 삶과 직간접적으로 연관된 모든 문제들에 대한 우리의 태도와 모습은 어떠해야 하는지 돌아본다. 이 땅의 노동자들은 왜 아직도 ‘조중동’의 논리를 자신의 논리로 착각하며 살아가는지, 자신의 사회경제적 계급과 지위를 잊고 불합리한 이데올로기를 선택하는지, 그것이 5․31 지방선거에서 어떻게 나타나는지 확인하는 일은 서글프다. 무상교육, 무상의료가 천국의 이야기이라고 착각하는 건 아닌지, 스웨덴을 벤치마킹하고 싶다던 노무현은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지 알 수 없다. 탄핵과 17대 총선의 결과를 열린우리당은 지금까지 어떻게 활용했으며 그 결과가 어떠한지 확인하는 일은 답답함을 넘어 분노가 된다. 대안없는 비판에 대한 비판을 멈출 때가 아닌가 싶다. 손석춘의 칼럼들이 이야기하는 2년간의 한국 사회의 자화상은 우울하다 못해 비참하다. 그대로 사람들의 삶은 계속되었고, 앞으로도 계속 될 것이다. 다만 그 깊이와 넓이를 돌아보아야 할 때가 아닌가. 비정규직의 양산과 미군기지 이전에서 보여준 정부의 태도를 생각하면 부자신문이라 불리는 수구보수 언론의 대명사 ‘조중동’의 협잡과 동맹으로 여겨진다. 논리의 비약이 아니라 이제 노무현 정권의 소임은 실패로 끝났다는 결론이 자연스레 나온다. 무엇이 다른가 생각해 볼이다. 아직도 노무현이 좌파라고 외치는 정신나간 사람은 없겠지만 미래 사회에 대한 대안과 희망은 누구에게 어떻게 찾을 것인가. 역사의 수레바퀴가 거꾸로 굴러가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현실 정치에 참여하거나 그것을 감시하고 비판해야 하는 사람들이 제대로 서지 않는다면 미래는 암담하다. 더더욱 암담한 것은 그것은 그들만의 몫이 아니라 세상의 주인인 우리들의 책임이라는 사실을 잊고 사는 것이다. 겁 없이, 혹은 조롱하듯 내뱉은 정치인들의 말 속에 숨은 뜻을 헤아려야 한다. 우매한 국민들, 멍청한 민중들이 세상을 바꾸지 못한다. 모두가 투사나 독립군이 되라는 선동이 아니다. 최소한 세상을 바라보는 기본적인 시각과 자신의 태도가 어떠한가를 점검해 보는 정도를 손석춘은 요구하고 있는 것일까

내가 바뀌어야 세상이 바뀐다. 목소리 칼칼한 진보 언론인 한 사람이 세상을 바꿀 수는 없다. 다만 그 목소리들이 모이고 모여야 한다. 제 목소리를 내지 못하더라도 행동으로 보여줘야 하지 않는가. 침묵하는 다수의 고민과 성찰은 그대로 부자신문의 비이성적인 목소리와 대중들의 심리 속에 똬리를 틀고 있는 파시즘과 결합되어 현실로 나타난다.

‘사랑’은 참 다양한 방법이 있다. 특히 세상과 사람을 사랑하는 방법은 제각각이다. 그것이 ‘과격하고 서툰’ 것일지라도 그 진정성을 의심하거나 부정할 수는 없다. 마치 전사의 목소리로 세상에 대한 격문을 발표하는 심정으로 자신의 목소리를 높이는 손석춘의 외침들이 불편하고 부담스럽지 않고 당연한 이야기로 읽힐 수 있는 시대가 올 것이다. 어느 시대에나 부정과 모순이 존재한다. 그걸 바라보는 관점이나 무게가 다를 뿐이다.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는 우리 모두의 지혜를 모은다고 해서 해결되지 않는다. 혁명보다 힘든 ‘개혁’을 말하는 현실이 서글프다.


060607-0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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