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주의의 민주화 - 한국 민주주의의 변형과 헤게모니
최장집 지음 / 후마니타스 / 2006년 6월
평점 :
절판


민주주의는 시대를 초월한 삶의 기본 조건일까?

정치적 형태로서 민주주의가 갖는 의미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기원과 역사적 과정을 고찰하지 않더라도 현재 전 세계 대부분의 국가에서 민주주의를 정치적 이념으로 채택하고 있다. 민주주의 이전의 중세 봉건 사회에서 공화정으로 이행 과정은 피의 역사로 점철되어 있다. 현재 우리가 쟁취한 절차적 민주주의는 비릿한 피냄새가 가득하다. 오욕의 한국 현대사를 굳이 들먹이지 않더라도 얼마나 많은 희생과 투쟁을 통해 획득한 가치인가는 누구나 알고 있다. 노무현 정권의 출범으로 절차적 민주주의는 대한민국에서 정착된 것으로 인정받고 있다.

그러나 문제는 이러한 민주주의의 과정을 통해 달라진 삶의 질적 변화이다. 물론 변화가 없을 리 없지만 대다수 사람들이 민주화라는 정치적 이념과 결합되지 못하는 수많은 난제들에 대해 고민하고 있다는 것이다. 확실한 정책적 대안을 제시하지 못한다고 해서 비판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현실의 문제를 점검하고 그 뿌리를 확인하는 일은 미래를 준비하는 가장 현명한 방법 중의 하나이다.

최장집의 <민주주의의 민주화>는 이러한 현실적 문제와 대안을 고민하기 위한 분명한 제언들로 가득하다. 개별 사안과 정치적 쟁점들에 대해 갑론을박하는 논쟁들도 중요하지만 거대 담론을 점검하는 좋은 기회가 되는 책이다. 우리 생활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사항들이지만 너무 멀게만 느껴지는 이야기들이 대부분이다. 현재 가장 첨예한 국가의 정책 사안인 한미 FTA에 대해 국민들은 제대로 인식하고 있지 못하다. 우리들 삶에 얼마나 직접적이고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할 지에 대해 고민하지만 정책 결정 과정이나 의사 표현이 서툰 것은 지금 당장 먹고 사는 문제와 거리가 멀어서일까. 그렇지 않다. 극단적인 정치 혐오증은 민주주의 열망에 대한 실망에서 비롯된다. 17대 총선은 대통령 탄핵에 대한 여당에 대한 국민적 분노가, 최근에 벌어진 5 ․ 31 지방 선거는 집권 여당에 대한 분노가 고스란히 드러난 선거로 볼 수 있다. 미래를 향한, 혹은 선거와 정책을 통한 국민적 열망들이 정치에 반영되는 것이 아니라 일종의 보복과 실망감의 표현 수단이 되어 버렸다.

안토니오 그람시가 제기한 ‘헤게모니’의 개념을 조금 다른 차원과 개념으로 정의한 뒤 민주주의와 헤게모니의 문제를 다루면서 본격적인 논의가 시작된다. 이 문제는 노동과 민주주의 그리고 동아시아 전체를 조망하는 평화와 공존의 공동체적 관점에서 한반도 문제를 살펴본다. 특히 3장 ‘노동없는 민주주의의 위기’에서 우리나라 현실에서 벌어지는 특수한 개념이 아니라 세계화와 신자유주의가 촉발하는 민주주의와 국가의 역할 문제를 다루고 있는 부분이 인상적이다. 이어서 최근에 벌어지고 있는 ‘한미 FTA’ 현안에 대한 문제와 대안은 눈여겨 볼 만하다. 정치인들과 학자들의 입장에서 엘리트주의를 표방하는 민주주의는 성공할 수 없고 양극화를 심화시킬 뿐이며 당면한 현실적 문제들을 풀어나갈 방법들을 찾기가 쉽지 않다. 우리들 삶에 좀 더 밀착된 이념으로서 민주주의 이후의 문제를 제대로 고민하고 미래의 방향들에 대해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 내지 못한다면 우리의 삶은 어떻게 될 것인가.

전우익 선생의 <혼자만 잘 살믄 무슨 재민겨>는 양극화가 고착될 경우 공멸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간접적으로 전달하고 있다. 김유선의 <한국 노동자의 임금실태와 임금정책>을 보면 IMF이후 정규직 노동자들의 실질 임금과 비정규직 노동자들에 대한 문제점이 적나라하게 드러나 있다. 대통령이 나서 대기업 노동자들에게 반성하라고 가르치는 나라의 노동 문제는 인식 방법 자체에 문제가 있다. 내맘대로, 내멋대로, 능력대로의 민주주의에 동의하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사회적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우리의 현실에서 민주주의는 민주화되고 있는지 다같이 고민해 볼 일이다. 또한 그것이 바람직하고 올바른 방향으로, 즉 사회적 약자와 소외 계층에 대한 복지와 분배를 염두에 둔 민주주의인가 하는 문제는 중요하다.

하나의 이데올로기로서 민주주의를 바라보던 관점을 벗어난지 오래다. 이제는 미래의 한국사회에 걸맞는 이념과 정책의 방향들이 정치권 뿐만 아니라 일반 국민들에게서도 고민의 깊이와 방향들이 제시되어야 한다. 하지만 “인간의 개인적, 지적 능력과 상상력은 매우 크지만, 이를 실현할 수 있는 인간의 집단적 능력은 매우 낮다는 것 또한 인간의 한계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현실정치에 대한 나의 기대수준은 매우 낮니다.(P. 44)”는 말에 동의할 수 밖에 없는 현실을 어떻게 변화시킬 것인가가 더 큰 문제다. 우수한 개인의 능력들이 왜 집단적 능력으로 발휘되지 幣求째? 정치가 아닌 철학의 문제인가.

활발하고 꾸준한 논의와 공론의 장이 마련되는 것도 매우 의미있는 일이지만 무엇보다도 내 삶의 근본적인 변화를 이끌어 낼 수 있는 정치와 제도의 문제에 보다 더 관심을 가져야 한다. 그것은 대표성과 책임성 그리고 참여를 기본으로 하는 현대 민주주의의 기본적 성격은 바로 너와 나, 우리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060701-0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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