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청나게 시끄럽고 믿을 수 없게 가까운
조너선 사프란 포어 지음, 송은주 옮김 / 민음사 / 200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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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년 동안 출판된 소설 중에서 (아마도) 제일 아름다운 소설이랍니다.
둘이 읽다가 하나 죽어도 모를 소설을 가리켜서 page turner라고 하지요.
하지만 그건 잘못된 표현이지요. 정말 재미있는 소설은 자꾸 책장을 넘기게 만드는 소설이 아니라,
책장 넘기기를 거부하게 만드는 소설이지요. 뒷부분이 다가올수록 안타까움이 짙어지는 소설이에요.
이번 가을에 어떤 소설이 나온다고 하더라도 올해 단 한권의 추천소설은 바로 이 책이랍니다.

소설가 김연수의 블로그에 실린 ‘지금 당장 이 책을 사서 읽으세요’라는 글의 전문이다. 이 책은 바로 <엄청나게 시끄럽고 믿을 수 없게 가까운>이라는 소설이다. 이런 내용의 추천사를 읽고 이 소설을 사 읽지 않을 재주가 없어 그날로 주문해서 읽었다.

수많은 영화 가운데 기억나는 몇 편을 꼽으라면 그 중 하나로 <인생은 아름다워>를 꼽는다. 영화가 보여줄 수 있는 아름다움과 진실의 힘을 보여줬기 때문이라는 지극히 개인적인 감상 때문이다. 로베르토 베니니가 각본, 연출은 물론 주연까지 맡아 화제가 되었던 영화다. 주인공 귀도는 초등학교 교사인 도라를 본 순간 그녀를 자신의 운명으로 받아들인다. 순수하고 아름다운 사랑은 진심을 담아 도라를 감동시키고 그녀와 결혼한다. 아들 조슈아를 얻은 그들은 나치즘의 절정에서 포로수용소에 갇히게 되고 아들에게 1,000점 내기 게임이라고 속여 유태인 포로수용소 생활을 게임과 같은 환상으로 만들어 준다. 결국 귀도는 독일군에게 발각되어 사살당하지만 아들 조슈아는 나무 상자에서 마지막 숨바꼭질에 성공하고 꼬박 하루 동안 숨어 있다가 누가 1등을 했는지 궁금해서 눈부신 아침 햇살을 배경으로 밖으로 나와 지나가는 탱크를 물끄러미 바라본다. 귀도와 조슈아가 전해주는 감동은 전쟁의 참혹과 비정성으로 인해 더욱 돋보였으며 마지막 장면이 주는 인상은 오래도록 지워지지 않는다.

전쟁이 어린 영혼에게 주는 충격과 상처는 상상을 초월한다. 고전이 되어 버린 <안네의 일기>는 어른의 시선이 아니기 때문에 여전히 읽힌다. 아이의 시선으로 세상의 ‘폭력’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은 불가능할지도 모른다. 그것은 이해할 수 없는 비정상적인 현실들이기 때문이다. 왜 싸우는지 왜 죽이는지 알지 못한다. 비참한 현실만이 또다른 폭력으로 아이들에게 각인된다. 전쟁이라는 폭력은 어린 영혼에게 가해지는 가장 심각하고 무거운 정신적인 좌절과 혼란이 된다.

2001년 9월 11일 미국의 세계 무역 센터에 두 대의 비행기가 충돌한다. 침대에 누워 편안한 자세로 반복되는 화면을 보면서 너무나 비현실적인 장면이 너무나 먼 거리에서 벌어지고 있었다. 생각해 보면 아주 오래전 일인 것 같은데 아침밥을 먹으로 걸프전의 폭격장면을 시청했던 1991년만큼이나 황당했다. 세상밖의 현실처럼 여겨지는 이런 일들이 21세기에도 여전히 현실이 된다. 오늘도 이라크에 한국군이 주둔하고 있다. 전쟁은 계속된다. 인류가 지구를 떠나지 않는 한.

12살 소년 오스카 셀은 아버지 토마스 셀을 뉴욕의 세계 무역 센터에서 잃는다. 이후 소년의 상처가 치유되는 과정에 소설의 초점은 맞춰져 있다. 그렇다고 심리소설이나 성장소설로 보기에는 지나치게 화려하고 다채로운 이야기들이 얽혀있다. 소년의 할머니와 할아버지의 사랑 이야기가 그것이고 아버지와 어머니의 이야기는 물론 소년 자신의 이야기도 그렇다. 아버지가 남긴 열쇠 하나를 찾기 위해 뉴욕 시내를 헤매며 만나는 수많은 ‘블랙’씨들도 그렇다. 이 소설의 특별함은 작위적이지 않은 소년의 순수성을 표현할 줄 아는 작가의 힘에 있다. 아이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일을 어른이 대신 한다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일이지만 작가는 훌륭하게 해내고 있다. 작가 스스로가 꿈꾸고 상상하며 온몸으로 그것들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불가능한 일이다. ‘그것들’은 소설을 읽으며 독자가 찾아야 할 것이다.

<사랑의 역사>를 쓴 니콜 크라우스의 남편으로, 뛰어난 부부 작가로 주목받는 조너선 사프란 포어의 <엄청나게 시끄럽고 믿을 수 없게 가까운>은 2006년 가을에 찾아온 특별한 소설임에 틀림없다. 김연수의 추천사를 믿어도 좋다.

자칫 혼란스럽고 몰입을 방해하는 형식이 될 수 있는 다양한 인물들의 시점은 입체적인 소설로 일으켜 세운다. 일관된 시점과 동일한 방식으로 하나의 문제를 깊이 있게 천착하는 작품에 비해 다소 가볍고 경쾌한 흐름으로 독자들의 눈길을 사로잡고 있으며 ‘엄청나게 시끄럽고 믿을 수 없게 가까운’ 곳에 언제나 놓여 있는 ‘사랑’을 확인하기 위한 머나먼 여행으로 읽히기도 한다. 제목의 의미는 물론 독자가 찾아야 할 숨은 그림이다. 나도 모르겠다. 그것이 폭력에 대한 경고인지 사랑에 대?찬사인지. 하지만 확실한 것은 이 소설은 재미있다는 점이다.


061028-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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