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희망은 노동운동 우리시대의 논리 2
하종강 지음 / 후마니타스 / 200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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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7년 붉은 혁명이 성공하면서 사회주의는 현실이 되었다. 1991년 구소련이 붕괴될 때까지 74년간 지속된 인류의 또 하나의 실험은 실패로 돌아갔다. 그 충격은 한 국가의 패망과는 본질적으로 다른 문제였다. 노동자와 농민을 위한 국가 건설이 실패로 끝났다는 사실은 실망을 넘어 사회주의 진영을 공황에 빠뜨렸다. 60년대는 물론 70년대와 80년대라는 질곡의 시대를 지나왔지만 90년대의 전망은 불투명하기만 했고 21세기에 들어서도 미래에 대한 낙관적 전망은 요원하기만 하다.

특히, 노동 운동에 관한 한 대한민국의 특수성을 전제로 하더라도 상식이 통하지 않는다. 노동자나 노동조합 같은 말은 곧바로 빨갱이를 연상시켰던 야만의 시대를 지나왔다고 생각하지만 뿌리깊은 부정적 뉘앙스와 잘못된 인식의 틀은 쉽게 사라지거나 바뀌지 않고 있다. 세계화와 신자유주의가 낳은 또 하나의 비극이 비정규직의 확대라고 말한다면 지나친 확대해석일까. 여전히 우리는 상식이 통하지 않는 많은 사람들과 살아가고 있다. 아니 서로 다른 상식을 소유한 채 살아가고 있다.

이런 시대를 걸어가면서 <그래도 희망은 노동운동>이라고 말할 수 있는 하종강은 행복한 사람이다. 자신의 생각과 행동을 일치시키는 몇 안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것이 개인의 가족주의적 행복과 경제적 이기주의에 바탕을 두지 않은 채 더 많은 사람들과 함께 나누고자 하는 노력이라는 데 하종강이 지니는 의미의 본질이 있다. 한 개인이 시대를 대표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고 외치며 분실 자살한 전태일 열사는 노동 운동의 기폭제가 되었고 단병호로 대표되는 민주노총은 이제 당당히 국회에 진출했다. 현실적 한계와 역량에 대해 많은 논의가 있을 수 있으나 역사는 늘 현재 진행형으로 발전한다고 믿어야 한다. 그것이 희망의 다른 모습들이므로.

한울노동문제연구소장 하종강은 1년에 300회가 넘는 강연을 하며 항상 현장에서 투쟁하는 노동자들을 만나는 일을 한다. 그러니 그의 강연과 글은 이론적 틀이 아니라 살아있는 현장감이 무기가 된다. 그래서 어렵지 않은 말로 한 줄 한 줄 써내려간 그의 글들은 읽는 사람의 손을 잡아 버린다. 이성적 판단과 이념의 진정성을 넘어 날것 그대로 따뜻한 피부처럼 온몸으로 안겨온다. 합리적이고 논리적인 설득의 글보다 더 큰 힘을 발휘하는 감성에 기대는 그의 글쓰기는 그래서 더 무섭다. 이 감성이 유치한 감상과는 본질적으로 다르기 때문이다.

이 책에는 노동조합 투쟁의 현장과 비정규직 문제뿐만 아니라 노동자와 노종조합이 왜 우리의 삶과 직접 연관되어 있는지 확인시켜 주는 이야기들로 가득하다. 아직도 억압과 고통속에 살아가는 수많은 노동현장의 울부짖음과 차라리 경건하기까지 한 노동자들의 삶의 모습들이 고스란히 녹아있는 하종강의 <그래도 희망은 노동운동>은 이 시대를 살아가는 모든 노동자들의 필독서다. 자신이 노동자인 줄도 모른 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더 권해주고 싶은 책이라는 표현이 정확할 것이다.

하종강의 토막글들을 커다란 주제로 묶어 일관된 흐름을 가지고 읽을 수 있도록 거칠게 편집된 책이지만 글의 길이와 주제와 상관없이 전달되는 감동은 단순히 내가 노동문제에 대해 관심이 있고 없고를 떠나 노동운동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전해 줄 것이다. 오랫동안 현장에 서 활동하지 못하고 야만의 시절에 겪었던 개인적인 경험들을 하종강은 ‘부채감’이라고 표현한다. 이 부채감이 20년이 넘도록 그를 지탱하게 해 주 힘이라고 스스로 말한다. 우리 모두는 이 부채감에서 자유로울 수 없고 자유로워도 안 된다고 외치는 그의 목소리는 날선 칼날이 아니라 촉촉한 부드러움이라서 더 큰 울림을 준다.

책을 읽는 동안 몇 번이나 목울대가 울컥거리고 눈시울이 뜨거워져서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난감했다. 가슴이 먹먹해지고 한참동안 허공을 올려다보며 긴 한숨을 내뱉는다고 당장 세상이 뒤바뀌지는 않는다. 책을 읽는 사람들이 가장 큰 위험이 이러한 문제들과의 거리감이다. 노동조합에 가입하고 노동운동을 해야 읽은 것을 실천한다고 착각하는 것은 더 위험하다. 지하철노조의 파업으로 내가 당장 불편하더라도, 1억이 넘는 연봉을 받는 조종사들이 파업을 해서 내가 당장 비행기를 못 타더라도 문제의 본질을 다시 생각해 보는 것이 출발점이다. 더 많은 사람들이 다 같이 행복해질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해 보는 것이 중요하다. 하종강은 이 책에서 그렇게 얘기하는 것이다. 그 방법은 다름 아닌 ‘노동운동’이라고, 그것이 희망이라고.


060706-0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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