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 이야기 살림지식총서 89
김성윤 지음 / 살림 / 200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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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명한 유리잔에 커피를 마신다. 인스턴트 커피로 ‘테이스터스 초이스 부드러운 블랙 오리지날’이다. 이제 커피믹스는 대부분의 한국 사람이 즐기는 음료가 되었다. 이 커피믹스는 커피와 설탕과 크림의 혼합비가 1 : 3 : 2로 소위 다방커피라 불린다. 커피가 전 국민의 기호식품이 되는데 기여한 일등공신은 당연히 커피믹스다. 동서식품에서 세계 최초로 개발한 커피믹스는 불과 40여 년 만에 전 국민을 커피잔에 빠뜨렸다고해도 과언이 아니다. 커피는 그만큼 우리 생활의 일부가 되어버린 중요한 필수 기호 식품이 되어버렸다.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커피에 중독된 사람들은 하루 한 잔으로는 택도 없다. 커피를 마시는 이유는 담배를 피우는 이유처럼 다양하다. 맛 때문에, 혹은 분위기에 맞추어, 혹은 특별한 대안 음료가 없어서…… 그러나 가장 큰 이유중의 하나는 카페인 성분 때문이다. 담배의 니코틴 성분만큼 중독성이 강하지는 않지만 각성 효과를 주기 때문에 머리가 맑아지고 기분이 상쾌해지는 느낌을 주기도 한다. 그래서 일찍이 이슬람문화권에서 시작된 커피는 본래 약재로 쓰였다. 만병통치약처럼 영험한 효과가 있다고 믿었던 것이다. 이후 유럽과 인도네시아, 남미로 확산되면서 세계인의 음료가 되었다. 이제 커피는 단순한 기호식품이 아니라 세계 여러 나라의 문화와 고유한 생활방식과 결합되어 독특한 맛과 향을 발하고 있다.

우리가 마시는 커피는 보통 로부스타라고 하는 싼 커피로 맛과 향에서 질이 낮다. 맛과 향이 좋지 않다는 것은 커피 원두인 체리가 잘 익지 않았거나 건조과정과 볶는 과정인 로스터 과정에서 구별되기도 한다. 아라비카라고 하는 고급 커피는 당연히 맛과 향이 뛰어나다. 고추를 말리는 방식과 유사한 건식법이 아니라 12.5%의 적정 수분을 유지하고 커피 원두를 상하지 않도록 습식법으로 건조시켜 풍부한 맛과 다양한 향을 만들어낸다. 커피의 귀족으로 불리우는 아라비카는 고산지대에서 적당한 온도와 햇볕을 받고 자란 연약한 커피를 말한다. 우리가 흔히 즐기는 로부스타 커피와는 태생부터 다른 것이다. 자메이카의 블루마운틴이 대표적인 커피다.

1999년 스타벅스 이대점이 오픈하면서 바야흐로 제 2의 커피 전성시대가 도래했다. 대학시절 한끼 식사를 해결할 수 있었던 자장면과 라면의 가격을 훌쩍 뛰어넘는 에스프레소 커피 한 통씩을 손에 들고 다니며 마시는 장면을 어렵지 않게 마주하게 된 것이다. 에스프레소는 이탈리아말로 빠르다는 뜻으로 뜨겁고 강한 압축기에 의해 커피 원두를 순간적으로 걸러낸다. 물론 여기에 우유를 섞고 휘핑크림을 얹거나 캐러맬을 혼합한 커피를 대부분의 사람들 선호한다. 테이크 아웃 커피 위주인 스타벅스는 우리나라에서 매장에서 마시고 갈 수 있는 분위가 더 선호된다.

차와 커피는 대화를 이끌어주기도 하고 한가로움을 같이하는 친구가 되기도 한다. 하나의 문화현상이자 실생활에서 빼놓을 수 없는 커피가 주는 즐거움은 조금씩 다른 방식으로 이해할 것이다. 하지만 커피에 대한 지식이 맛을 배가시키지는 않는다. 하지만 깊은 이해는 깊은 애정을 낳는다. 특히 계절과도 깊은 상관관계가 있는 것이 모든 음식의 특징이 아닐까 싶다. 비오는 날은 커피의 향이 특히 진하고 강하게 느껴진다. 처마 밑에서 비를 피하며 연인과 마셨던 자판기 커피 한 잔의 추억은 강렬한 미감으로 남겨지는 것이다.

커피 탄생의 간략한 역사와 제조 과정 그리고 각 나라의 커피 문화를 간략하게 소개하고 있는 책이지만 매일 마시던 커피에 대해 궁금한 독자라면 왼손에 <커피 이야기>를 오른손에 커피 한 잔을 들고 읽을 만한 책이다. 다만,

커피의 맛뿐만 아니라 커피를 재배하는 사람들의 땀, 커피 생산을 위해 희생되는 환경에 대해서도 한 모금쯤 음미해 보는 것이 어떨까. - P. 85

는 말은 전 세계적으로 확산되고 있는 공정거래 커피에 대한 의미를 돌아보게 한다. 커피 1잔당 4원이라는 잔인한 가격은 커피 재배 노동자들의 땀을 착취하고 있다. 대규모 중간 거래상과 다국적 로스터들이 대부분의 수익을 거둬가는 자본의 논리는 커피에도 여지없이 적용된다. 노동자들의 최저 생계비를 지불하고 구입했음을 인증해주는 공정거래 커피가 널리 확산되길 바랄 뿐이다. 자본주의는 결국 소비자의 손에 의해 좌우되는 구조일 수밖에 없다. 올바른 소비자 운동과 더불어 커피의 맛을 잃지 않길 바란다. 물론 차가 아니라 커피를 고집하는 사람들에게 적용되는 말이겠지만.


060714-0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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