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는 한 번도 나를 비껴가지 않았다 - 비전향 장기수 허영철의 말과 삶
허영철 지음 / 보리 / 200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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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10 고배율 쌍안경으로 건너다보는 북녘의 하늘은 고즈넉하다. 겨울에는 남녘을 향해 초소 옆에 앉아 한가롭게 담배를 피우는 모습이나 초소 넘어 보급소에서 작업을 하는 모습도 자주 관측된다. 아침 저녁으로 유행가처럼 울려 퍼지는 대남 방송이 친근하기까지 해진다. 비무장지대(DMZ) 안에 무기를 반입하고 초소를 설치해서 경계 근무를 하는 것은 분명한 정전 협정 위반이다. 수색중대 GP장으로 두 개의 GP에서 적 관측 및 경계 근무를 수행했던 기억의 저편이 떠오른다. 누구나 한 번쯤 경험하는 군대라는 통과의례를 혹독하게 경험했다고 생각했던 순간들이 먼저 떠올랐다. 자신의 지식과 경험을 넘어선 해석은 불가능한 것이므로. 1953년 7월 27일 정전협정이 체결된 이후 52년째 휴전 상태인 지구상의 유일무이한 나라 대한민국에서 살아가는 일은 어떤 것인가?

비전향 장기수 허영철이 자신의 삶을 구술하고 기록한 <역사는 한 번도 나를 비껴가지 않았다>를 읽다가 여러 번 흐르는 눈물을 애써 감췄다. 주변 상황 때문에 책장을 넘기다 눈물을 흘리는 일도 쉽지 않은 경험이었다. 1955년에 수감되어 1991년에 석방될 때까지 무려 36년간 세상에서 배제된 한 인간의 삶은 시간의 무게만으로도, 그것이 동시대인이라는 사실만으로도 가슴을 먹먹하게 했다. 만 36년의 세월동안 그가 지켜온 것은 무엇일까? 꼭 내가 살아온 인생만큼 한 평 남짓한 독방에서 홀로 지켜온 그의 신념은 오히려 궁금하지 않았다. 슬라보예 지젝의 말처럼 그것은 ‘이데올로기라는 숭고한 대상’이었을까?

1920년생인 허영철의 삶을 들여다보는 것은 우리 민족의 근대사를 또 다른 방식으로 조망해 보는 일이다. 한 개인을 통해 우리가 겪었던 시간의 무게를 덜어보려는 것은 부질없어 보이지만 전형적 개인이 아닌 한 인간의 삶이 우리의 근현대사를 반증하고 있다. 온몸으로 고스란히 일제와 해방, 한국전쟁과 21세기를 살아내고 있는 한 인간의 삶은 나를 숙연하게 한다.

파란만장하고 굴곡진 인생은 많다. 내 인생이 소설 한 권쯤 된다고 말하지 못할 사람이 어디에 있을까마는 허영철의 삶은 소설이 아니라 그대로 ‘역사’가 된다. 해방 공간의 이념 대립과 혼란을 수습하지 못한 채 분단 된 현실을 살아가는 우리들의 무감각한 역사 인식을 반성하자는 상투적인 의미와는 사뭇 다른 가슴 한구석의 결림으로 다가오는 이 책은 참으로 사람을 불편하게 하는 책이다. 그래서 누구에게나 꼭 한 번은 권해줄 만한 책이다.

사람이 산다는 것은 무엇인가 그리웁다는 말 한마디 때문인지도 모른다. 전북 부안이 고향인 허영철은 2000년에 송환된 비전향 장기수보다 불행한 것일까? 통틀어 6개월도 함께 살아보지 못한 아내와의 40년만의 만남은 어떤 것일까? 이제는 정년을 앞두었을 고등학교 교사인 아들과 미국으로 건너간 딸이 보고 싶지 않았을까? 가족들의 설득은 그 어떤 모진 고문보다 고통스러웠을 것이다. 다분히 인간적인 면에서 형이하학적인 욕망을 떨쳐 낼 수 있었던 한 인간의 신념과 생애는 ‘혁명’에 바쳐지고 있었다.

그가 이루지 못한 ‘혁명’은 언제 이루어질 것인가. ‘공화국’이 있었기 때문에 견뎌낼 수 있었다고 말하는 그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이성적이고 공식적인, 혹은 논리적이고 분석적인 태도로 그의 삶을 들여다보는 일은 부질없다. 항상 ‘인간’을 중심에 두고 세상과 사회에 눈 뜰 무렵의 한 혁명가가 변하지 않고 늘 푸른 소나무처럼 지켜낼 수 있었던 신념을 이야기하는 것도 무의미하다. 내가 숙연해진 것은 오로지 시간이다. 36년을 견뎌낼 수 있었던 무기를 우리는 무엇이라 이름 붙일 수 없을 것이다. 이념도 사상도 이데올로기도 광기도 집착도 아닌 그 무엇을 읽어내는 것은 쉽지 않다. 80대 노인의 목소리는 덤덤하고 차분하다. 소리 높혀 자신의 주장을 펼치지도 않는다. 그가 살아온 세월과 쌓아온 시간들을 풀어놓는다. 이것이 우리가 겪었던 삶이었다고.

“국가란 한 계급이 다른 계급을 착취, 억압하고 지배하기 위한 독재기구다.” - P. 172

북의 체제를 비판하거나 결과론적 입장에서 소련과 동구권의 붕괴를 이야기하며 허영철의 삶을 단정짓거나 평가하는 것은 미친 짓이다. 체제의 우월성을 이야기하는 것도 그에게는 우습다. 자유 민주주의라고 말하는 이 땅의 민중들의 삶을 보라. 그리고 아직도 꿈꾸고 그 꿈을 실현하고 싶을 한 혁명가의 생각의 언저리를 반추해 보는 것이 이 책을 읽는 목적이다. 국가에 대한 허영철의 젊은 날의 발언은 아나키스트의 목소리로 들린다. 당과 공화국은 그에게 국가가 아닌 이상향이었다. 그의 말이 틀렸다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는 세상에 우리는 살고 있을까?

아내와 두 자식이 담장 너머에 살고 있는 남쪽 출신의 炷徨?장기수. 때때로 면회와 편지를 통해 그들의 고통스런 삶을 지켜보아야하는 허영철의 가슴 속엔 무엇이 들어 있었나. 자신의 선택과 판단을 단 한 번도 의심하지 않았을까? 끊임없이 쏟아지는 의문과 불편함은 이 책을 읽는 내내 지속될 것이다. 문제는 그가 짊어지고 감내한 세월 속에 켜켜이 묻어 있는 고민들이 어쩌면 아직도 지속되고 있다는데 있다. 자본주의 이후의 문제 말이다. 단순히 이상향을 꿈꾸던 몽상가의 허망한 말로쯤으로 여길 수 없는 분명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김산과 님웨일즈의 <아리랑>을 통해 그리고 조정래의 <인간연습>으로 인상 깊었던 실존 인물의 이 막막한 한 생애를 우리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 것인가? 온몸으로 역사의 소용돌이 한 복판에 서 있었던 그의 삶이 지금 현재도 이어지고 있다는 데 그 고민의 핵심이 묻어난다. 불꽃처럼 살다가 산화한 체 게바라의 극적인 삶이 ‘20세기의 가장 완벽한 인간’이라는 다소 거북한 사르트르의 평가로 대표된다면 이 땅에서 ‘역사는 한 번도 나를 비껴가지 않았다’고 스스로 고백하는 허영철의 삶에 대한 평가는 우리들의 몫이 아니다. 근현대사를 위한 어떤 훌륭한 텍스트보다도 우선 이 책을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다.

이제는 사상 문제가 아니고 양심의 문제이지.(1990. 1. 8 친지 허종규, 허춘과의 면회) - P. 311


060810-0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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