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의 문화사 살림지식총서 224
박철수 지음 / 살림 / 200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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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사는 곳이 당신을 말해 줍니다’

엽기적인 건설 회사의 광고 카피다. 아파트라고 하는 공통 주택의 형태는 엽기다. 차단된 공간 속에서 한 줄로 앉아 볼일을 보고 한 줄로 누워 잠을 잔다. 아파트 밖에서 위 아래로 훑어보며 생각해 보면 닭장 속의 닭처럼, 성냥갑 속의 성냥들처럼 동일한 공간과 환경 속에서 생활하는 박제된 사람들의 생활이 재밌고 우습다. 이것이 내가 처음 아파트에 거주하면서 느낀 점이다. 80년대 후반 처음 아파트로 이사가게 되었을 때 생활의 편리보다는 아파트라는 폐쇄적인 공간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가족들이 대부분 반대했던 기억이 떠오른다. 어머니의 주장대로 이사를 감행했고, 또 그런대로 아파트의 편리함에 익숙해져 갔다. 이후 한 번도 아파트를 벗어나지 못하고 살고 있다. 아마 많은 사람들의 삶의 형태도 비슷할 것이다. 이제 아파트는 가장 보편적인 주거 형태로 자리 잡았다.

우연히 박철수의 <아파트의 문화사>라는 책을 보고 호기심이 발동한다. 한국의 아파트는 어떻게 시작되었으며 어떤 진화 과정을 거쳤는지 궁금했다. 짧은 책이지만 현대사의 산 증인이라는 표현이 어울릴 정도로 아파트는 개발 독재 시대의 유산으로 출발해서 양극화의 첨병으로 자리 잡고 있다. 대중 소설을 통해 아파트의 이미지를 소개하는 부분은 신선했고, 우리의 아파트가 지닌 문제점을 건축가의 입장에서 지적하는 대목들은 공감할 수 있었다. 원래 아파트는 그런 것이라고 생각했던 고정관념들이 개선해야 할 많은 문제점들 중의 하나라는 사실에 공감하게 되었다. 현재의 아파트를 ‘자폐증과 우울증’을 앓고 있다고 비유한 대목을 이해하게 된 것이 가장 큰 수확이었다.

오래 전부터 하늘과 산과 강을 그리워하며 자연과 어우러진 삶을 그리워했던 이유들도 어렴풋이 파악할 수 있었다. 피상적인 꿈으로서 전원 생활이 아니라 콘크리트 숲이 주는 건조함과 사막함의 원인은 공간적 이기주의와 폐쇄성에 기인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무엇인가 숨 막히는 공간을 벗어나고 싶다는 본능들이 스멀스멀 피어올랐는지도 모른다. 아파트의 편리함과 환금성을 대체할 만한 것이 없다는 것이 대안이 없다는 것과 같은 말은 아닐 것이다. 아파트도 기본적으로는 우리들 삶의 가장 기본적인 단위이며 살아 숨쉬는 공간이다.

단지식 아파트로 현재와 같은 형태로 지어진 최초의 아파트는 1962년에 완공된 마포 아파트다. 이후 아파트의 높은 담장과 철저한 보안 시스템은 첨단을 달리고 있다. 결국 아파트의 진화는 단지별 위화감의 조성과 단지 밖에서 아파트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동경과 선망으로 바뀌었다. 평수와 가격으로 수량화, 박제화 되어 버리고 있는 우리들 아파트의 현주소는 설명하기 힘든 서글픔으로 다가온다.

결국 대한민국 자본주의 총아는 아파트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평생 집 한 칸을 마련하기 위해 삶을 저당 잡히고 살아가는 서민들의 모습은 하루 이틀이 아니었지만, 지금처럼 토지와 주택에 대한 개념이 변함없이 유지된다면 우리들의 삶은 더욱 피폐해질 것이다. 단순하게 생각해 보자. 원시시대에도 모두가 함께 지혜를 모아 해결했던 의식주라는 가장 기본적인 인간의 생존 환경들을 위해 살아야 하는걸까?

박철수의 말처럼 ‘자폐증과 우울증’이라는 병리현상으로 밖에 파악할 수 없는 아파트의 현주소는 바뀌어야 한다. 자본주의의 이기적 욕망들을 버리고 모두 함께 잘살자는 이상주의를 펼치는 것은 아니다. 다만 동과 동사이 개별 호와 호 사이에 최소한 소통의 공간과 함께 호흡할 수 있는 문화를 만들어 가자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경쟁과 비교 우위의 강박 속에서는 불가능한 삶의 모습들이다. 물론 모두가 살벌하게 살아가는 것은 아닐 테지만 집단 이기주의의 속성은 첨예한 대립양상으로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다. 단지와 단지 사이의 통행 제한이나 학군 조정 문제 도로 개통 문제에 이르기까지 언론을 통해 확인할 수 있는 것들만으로도 아파트의 우울한 현주소는 쉽게 확인된다.

각종 외국어를 이용한 아파트 브랜드의 차별화 전략은 명품에 환장하는 천박한 자본주의의 전형을 이용하고 있다.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대한민국의 각 가정에는 ‘당신이 사는 곳이 당신을 말해준다’는 광고가 흘러 나온다. 내가 사는 곳과 내가 사는 아파트가 나를 말해 준다면 우리는 인간이 아니다. 그것이 자본주의의 속성이라면 할 말은 없다. 아파트의 ‘오만과 편견’은 우리들 삶의 모습까지 일그러지게 한다.

효율성과 집적 능력의 결정판으로 주거 형태에 혁명을 가져온 아파트에 대한 새로운 시각고 접근 방법은 개별 거주자들의 노력은 물론이겠지만, 주택과 토지에 대한 국가적 개념 설정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 대다수 국민들?삶의 질을 향상 시키기 위해 아파트라는 주택 형태는 변함없이 계속될 것이다. 매년 새로 지어지는 주택의 80%가 아파트라면 아파트의 기능과 공간의 개념을 변화시켜 나가는 것이 시급하다. 그래야 아파트의 ‘자폐증과 우울증’을 치료할 수 있는 길이 생길 것이다.


060818-0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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