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계의 금기를 찾아서 살림지식총서 136
강성민 지음 / 살림 / 200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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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후면 동생이 먼 나라로 떠난다. 내가 보내는 것이 아니라 본인의 선택이지만 마음이 착잡하다. 본인은 새로운 기회와 도전에 고무되어 있지만 갑갑해 보인다. 그 갑갑함의 원인은 물론 복합적이다. 뉴욕대 박사 과정을 위해 떠나는 동생에게 해 줄 말이 떠오르지 않는다. 영어를 미국에서 공부하겠다는데 말릴 수는 없는 노릇이다. 돌아오지 말라는 조언을 했다. 미국에 비전이 있어서가 아니라 우리나라의 교육환경과 풍토를 감안한다면 앞이 보이지 않는다. 교육 관련 일을 하고 싶다는 말을 한 것도 아닌데 답답함이 가슴을 짓누른다. 비관적인 현실 인식은 정신 건강에 좋지 않지만 개인들의 노력과 뜻있는 사람들의 점진적인 의지가 모아진다고 해도 쉽게 해결되지 않는 현실의 모순은 고개를 돌릴 수 없을 정도로 많다.

중등 교육은 물론이려니와 대학에서 벌어지는 교수 임용문제와 전공과 관련된 밥그릇 문제, 학문 자체 내의 건전한 비판과 질적인 발전 측면은 거론 자체가 금기시 되어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내부 고발자나 비판자는 이 땅에서 학문과 생활을 접을 각오를 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 대표적인 예가 이명원이다. 최근 서울디지털 대학에서 교수 재임용에 탈락한 이명원 교수는 비판적 지성인이 이 땅에서 어떻게 살아갈 수밖에 없는가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가 되었다. 대학은 비판적 지성의 무덤이다.

이러한 문제점들을 지적하고 비판하는 일에 솔선수범해서 나설 수 있는 용기를 가진 사람은 외부인이 적합하다. 아니 어쩌면 외부인은 용기가 없어도 그것이 가능할 지도 모른다. 눈에 보이는 실험과 결과에서도 황우석 사태와 같은 일들이 벌어지는데, 인문학 분야는 능히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다. 교수 신문사의 강성민이 쓴 <학계의 금기를 찾아서>는 내용과 분량면에서 아쉬움이 많이 남는 책이다. 살림지식총서로 발간되기에는 내용의 깊이와 범위의 한계가 느껴진다. 굵직한 단행본으로 본격적이고 심층적으로 다루어져야 할 내용들이라는 개인적인 생각이다. 하나하나의 주제를 걸핥기 식으로 소개에만 그치고 있기 때문에 본격적인 논의들이 진행되지 못해 아쉬움이 많다.

스승을 비판과 전공 불가침의 법칙, 논문 형식의 실험에 이르기까지 대학 내에서 관습화된 여러 가지 문제점들이 소개된 것은 저자의 말처럼 이미 모두 알고 있는 사실들에 대한 확인 작업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러한 문제가 있다고 분명하게 밝히고 그것들에 대한 현상을 밝히는 일은 현실에 대한 반성적 태도로 매우 중요한 일이다. 알고 있지만 쉽게 고쳐지지 않는 사실들이 더 큰 문제가 아닐까 싶다. 단순하게 대학의 교수와 제자들 사이의 문제 뿐만 아니라 학계의 오랜 관습과 형식의 틀이 제공하는 고집들을 짚어 보는 일은 미래를 위해 당연히 거쳐야 할 비판이다.

생존 인물에 대한 탐구와 진보와 보수의 문제, 김우창의 학제성, 문화와 비평에 대한 비판에 관한 글들은 새롭다기보다 지루하지만 ‘금기’에 관련된 문제이기 때문에 하나로 묶어보는데도 의미가 있다고 본다. 최근들어 글쓰기에 대한 관심은 지나칠 정도로 고조되어 있다. 그만큼 글쓰기는 대중적인 것이 되어 버렸다. 이것에 대한 허구성을 지적하는 저자의 지적 또한 적절하지만 지식 대중화에 대한 간략한 소개글 정도로 끝나 버려 아쉬움이 남는다. 마지막으로 근대성 콤플렉스에 관한 글은 아직도 해결되지 않은 문제이기 때문에 지속적으로 검토되어야 한다. 근대를 넘어 탈근대도 여전히 논의되고 있는 있다. 하나로 규정될 수 없는 문제들에 대해 다양성과 폭넓은 시야를 가질 수 있는 관점에서 바라보아야 하지 않을까 싶다. 어쨌든 우리 사회의 ‘금기’에 관한 이야기들이 이제는 더 이상 금기가 아닌 시대가 되어 버렸다.

그들만의 리그와 침묵의 카르텔이 유지되는 사회는 결코 발전하지 못한다. 모든 사람들에게 열린 기회와 합리와 이성이 지배하는 공론의 장이라는 열린 공간만이 대학을 대학답게 만들어 줄 것이다. 사회의 모든 분야에 이론적 틀과 미래의 아젠다를 제공해야 하는 학문의 전당에서 경직된 사고와 봉건적 인습들이 아직도 존재하고 있다면, 그것들을 눈감고 모른척 하고 있다면 미래는 암울하다. 서울대 미대 김민수 교수의 6년간의 복직 투쟁 과정은 눈물겨웠다. 서울대에 미대를 설치한 장발 박사의 친일 행적을 비판했다는 학자적 양심이 그가 대학 교수로서 결격 사유가 되어야 하는가? 그것도 국립대에서 말이다. 이것이 현실이다.

다 아는 거짓말과 모두가 인정하는 모순을 어떻게 할 것인가? 현실적 대안과 기본적인 틀거리에 대한 고민들은 대안이 쉽지 않지만 반드시 풀어나가야 할 문제이다. 이 책이 지적하는 학계에 대한 금기뿐만 아니라 사회 전반에 숨어 있는 ‘금기’에 대한 모든 ‘해금’이 이루어져야 한다. 합리적이고 자유로운 사회는 저절로 우리들 손에 쥐어 진 적이 없다. 피와 땀과 눈물들의 결과물이다. 무임승차는 역사에 대한 반역이다. 스스로 모두가 주체가 되어야 한다. 아무리 작고 하찮은 일이라도 기득권과 이기적 욕망의 노예로부터 자유로워야 한다. 쉽지 않은 일이지만 그렇게 해야 한다.


060822-0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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