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인생을 이모작하라 - 생물학자가 진단하는 2020년 초고령 사회 SERI 연구에세이 18
최재천 지음 / 삼성경제연구소 / 2005년 3월
평점 :
절판


휴가지에서 얻은 책 한 권. 청풍의 어느 콘도 TV대 밑에서 굴러 다니는 책을 가져 온 건 제목 때문이었다. 최재천의 <당신의 인생을 이모작하라>는 책의 제목은 흥미를 갖게 하기에 충분하다. ‘생물학자가 진단하는 2020년 초고령 사회’라는 부제가 붙은 이 책은 인생의 이모작에 관한 이야기라기보다 퇴직 이후에 대비하라는 얘기다. 평균 수명은 점점 늘어나고 있으며 출산율은 점점 낮아지고 있다. 노인이 많은 사회가 되어 가고 있으니 대비하라?

저자는 이 책에서 나이 50을 기준으로 인생을 이모작하라고 이야기한다. 생물학적 기준으로 보아 번식 전기와 후기로 나누어 번식 후기를 잘 준비해야 앞으로 다가올 고령 사회를 대비할 수 있다는 말이다. 인간만이 유일하게 종족 번식이 불가능해진 상태에서의 생명이 연장된다. 특별한 종이 되어버렸지만 자살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러자면 이 기나긴 인생을 현재의 정년 개념으로 살아내기는 힘들다는 이야기에 공감할 수밖에 없다.

평범한 대한민국 사람들의 일생을 생각해보면 서글프다. 여기서 평범의 기준이 모호하기는 하지만 비율로 대다수의 사람들을 살펴보면 그렇다는 말이다. 정년에 대한 두려움은 직업의 안정성에 대한 열망과 뒤얽혀 삶의 중요한 지표이자 변수가 되어 버린지 오래다. 철밥그릇으로 불리는 공무원에 대한 선호도가 높아지는 것은 아이러니하다. 오로지 정년 보장과 연금이라는 매력이 인생 전체를 지배하는 현실은 오히려 무섭게 느껴지기도 하다. 생각해보면 아무렇지도 않은 듯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의 미래에 대한 불안감과 이기적 욕망들은 놀랄만하다. 이런 세상에 발표되는 각종 통계 지표들은 미래를 더욱 암울하게 한다.

2020년이 되면 젊은이 4명이서 노인 하나를 먹여살릴 정도가 된다니. 현재 출산율이 1. 17명이라는 보도를 접한 사람들은 이 책을 읽으며 좀 섬뜩할 것 같다. 고령화 사회를 넘어 고령 사회로 곧 초고령 사회로 진입이 멀지 않다는 경고는 경고에만 그칠 문제는 아닌 것 같다. 더욱이 문제가 되는 것은 대한민국의 ‘빨리빨리’ 문화에 있다. 엄청난 속도로 급속하게 고령화 사회가 되었으며 앞으로도 진행될 예정이다.

그러나 대안은 쉽지 않다. 생각해 보면 한심스럽다. 아이를 낳으라고 강요하는 사회. 아니 그 이전에 산아 제한을 했던 시절을 돌이켜 보면 격세지감을 느낀다. 어린 시절 ‘둘만 나아 잘 기르자’는 표어가 아직도 눈에 선하다. 국가가 정책적으로 인구의 증가를 막았던 시절이 그립기만 할 것이다. 각종 출산율 증가 대책을 마련해보지만 쉽게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기는 힘들다. 사회 구조적 문제를 단순히 출산율 감소에 대한 대책과 연결시킬 수는 없다. 육아에서부터 사교육비 대입 제도와 경제 문제에 이르기까지 원인을 찾자면 끝이 없다. 대책은 쉽지 않다. 단순화시키면 출산율 증가만이 고령 사회의 사회적 대책이 될 것 같지만 어불성설이다. 노인들의 복지와 삶의 질이 출산율 증가로 해결되진 않는다. 더구나 아직도 지구에는 너무 많은 인간들이 자연을 해치며 살고 있다. 민족과 국가주의를 넘어선 대책이 필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고 볼 수 있다.

이민을 확대하고 국경을 허물면 된다. 단순하지 않은 문제라고? 세계 평화를 가져올 수 있는 궁극적인 방법은 무엇인가에 대한 고민도 병행해야 하지 않겠는가. 물론 코앞에 닥친, 초고속으로 진행되는 고령 사회에 대한 대책이 시급하겠지만 다양한 논의 속에 포함되어야 할 필수 요소중에 하나라고 생각된다.

50대 후반에 정년 퇴직을 하고 나머지 인생을 준비하지 않는 것은 비참하다. 그러나 특별한 대책이 있는 것도 아니다. 예전의 개념으로 열심히 일한 당신 쉬라고 말할 수는 없다. 시대가 변하고 상황이 달라지면 인간은 적응하게 마련이다. 다만 보다 먼 안목으로 현실성 있는 대책을 세워나가야 한다. 정부 정책만의 문제도 아니고 개인에게 모든 책임을 미룰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모두 함께 머리를 맞댈 일이 어디 한 두가지랴. 인디언 보호구역에서 아이들에게 오늘은 정말 어려운 시험 문제를 낼 것이라고 하자. 아이들이 모두 빙 둘러 모여 앉았다는 이야기가 있다. 어리둥절한 교사에게 어렵고 힘든 일이 생기거든 함께 모여 문제를 해결하라는 어른들의 말을 그대로 실천하고 있는 아이이들을 보며 교사는 할 말을 잃었다고 한다. 경쟁과 갈등의 이기적 현실 속에서 모두 함께 다같이 잘 살아 보자고 하면, 성장이냐 분배냐 오른쪽이냐 왼쪽이냐부터 별의별 분열과 의혹이 싹튼다. 보다 단순한 논리로 살아가기는 정말 힘겨운 듯싶다.

국가 차원에서 국민의 건강과 고령 사회에 대한 대책은 국민들의 합의를 얻어내지 못하는 정책으로는 성고하기 어렵다. 정부의 역할은 단지 국민들의 뜻을 모으고 어렵고 힘든 중재자의 역할에 머무를 수 있을 뿐이다. 저자는 조혼예찬, 열린 이민제도, 대학의 재교육, 여성 인력의 활용 등을 대안으로 제시하며 발상의 대전환이 필요하다고 역설하고 있다. 일견 옳은 말이지만 사회 구조적 모순들을 지적하고 근본 원인의 제거를 주장하는 데 까지 논의를 진전시키지 못하고 있다. 피상적이고 원론적인 분석과 당연한 주장들이 무리없이 전개되고 있어 많이 아쉽다.


060823-0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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