색의 유혹 살림지식총서 132
오수연 지음 / 살림 / 200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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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가장 좋아하는 색은 ‘한없이 투명에 가까운 블루’다. 무라카미 류의 소설 제목으로 안재찬이 번역했다. 류시화라는 필명을 사용하기 전에 사용하던 본명이니 지금 안재찬을 기억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어쨌든 24세의 나이에 군상 신인상과 아쿠타가와상을 수상했지만 번역 즉시 판금 당했던 책이다. 마약과 섹스와 광란의 음악을 보여줬던 소설을 기억하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책을 읽는 동안에도 읽고 나서도 ‘한없이 투명에 가까운 블루’의 이미지만을 상상했던 기억이 떠오른다. 책을 통해 그 세계를 만나고 싶은 욕망보다 상상속의 이미지가 훨씬 더 강렬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끝까지 포기할 수 없는 감각은 당연히 시각일 것이다. 처음부터 안보였다면 상황이 다르겠지만 나중에 시력을 잃어버린 사람들의 고통을 생각해보면 솔직히 상상조차 되지 않는다. 어느 날 갑자기 앞이 보이지 않는 상상을 하는 것은 타인의 고통과 불행에 대한 걱정과 연민 때문만은 아니다. 세상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우리가 얼마나 행복해질 수 있는지 생각해본다. 우리가 바라보는 세상은 흑백도 아니고 컬러다. 초등학교 아니면 중학교 때 처음 컬러 TV를 봤을 때의 그 환희를 기억한다. 사람의 눈은 몇 만 화소쯤 될까? 세상이 흑백으로 보이는 개라고 불행하란 법은 없지만 총천연색 칼라 화면의 경이로움은 무엇으로도 바꿀 수가 없는 황홀경이다. 하늘을 배경으로 흔들리는 나뭇잎의 아름다움에 눈물이 날 때가 있다. 살아 숨쉬고 있는 모든 순간들이, 그 섬세한 감각 하나하나가 소중하게 느껴질 때가 있다. 눈으로 보는 즐거움은 단순한 이미지의 재현이 아니라 상상력의 출발이고 근원이다. 생각의 시작이고 감각의 총착역이 눈으로 볼 수 있는 모든 색이다. 보라색 옷을 입은 여자의 하늘하늘한 치맛자락과 감색 수트를 입은 남자의 넓은 어깨 사이에는 문명화된 인간의 복장에 대한 격식 이전에 색이 말해주는 무엇이 존재한다. 이와 같은 색에 대한 감각과 느낌은 당연하게도 학습과 사회화 과정 속에서 형성된다. 원형적 상징으로서 각각의 색은 우리들에게 다양한 대화를 시도한다. 때때로 대화가 아니라 강요와 습관을 형성하기도 한다. 자본주의는 색도 판다. 마케팅의 마술봉으로 사람들을 유혹하고 환상을 심어주기 위해서 색이 차지하는 중요성은 점차 높아지고 있다. 텍스트보다 훨씬 강렬한 인상을 줄 수 있는 것은 이미지가 전부가 아니다. 그것이 적당한 색과 결합되면 우리는 무의식적으로 혹은 맹목적으로 상품이나 제품들을 수용하게 된다. 코카콜라는 빨강을 위해 목숨을 건다. 비수기인 겨울에 콜라를 팔기위해 현재와 같은 전형적인 산타클로스의 모습을 보급시켰다는 대목에서는 감탄보다는 공포를 느낀다. 그 어떤 종교보다도 우리는 전도력이 강한 ‘자본’이라는 종교를 믿으며 살아가고 있다. 모든 기업의 상품 판매와 기업 이미지 제고를 위한 BI나 CI 작업에서 핵심이 되는 것은 디자인과 이미지가 아니라 색이다. 반복적인 노출과 광고는 소비자에게 제품이나 기업을 각인시킨다. 판단할 필요도 없고 고민할 것도 없다. 광고와 이미지가 만들어 준대로 선택을 하고 비슷한 패턴을 반복한다. 단순히 색을 부정적인 이미지와 연결시키거나 자본에 복무하는 그릇된 대상으로 치부할 수는 없다. 하지만 오수연의 <색의 유혹>은 마케팅의 원리에 적용되는 색의 이미지와 느낌들을 설명하고 성공한 기업이나 제품을 위주로 예를 들어 내용을 확인 시켜 준다. ‘색채 심리와 컬러 마케팅’이라는 부제에 걸맞는 내용이다. 색에 관련된 심리학적 접근이나 사회 문화적 맥락을 이해하는 데는 무용한 책이다. 상식 수준의 이야기들을 대표적인 색을 통해 이야기하고 있기 때문에 도식적이고 단편적인 내용들이 반복된다. 늘 생각하지만 한 권의 책에서 많은 것을, 혹은 완전한 것을 기대하지는 않지만 적어도 한가지 정도는 건지고 싶은 본전 심리는 변하지 않는다. 이 책은 짧고 싼 책이지만 본전 생각이 났다. 이 철저한 자본주의적 평가 방식이 오히려 인간적일 수 있다. 상품과 색의 이미지에 대한 상관성에 대해 기초적인 지식과 관심을 가진 사람에게 좋은 흥밋거리가 될 수는 있을 것 같다. 수백 권의 살림지식 총서가 모두 고른 수준과 내용을 갖추기를 기대하는 것 자체가 욕심일 수 있다. 촌철살인의 잘 벼린 칼날 같은 시리즈로 이어지길 바랄 뿐이다. 그래도 화려한 제목 앞에서 맥을 못 추겠지만. 060927-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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