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경화하는 神의 나라 - 일본 지배세력의 정신세계
노 다니엘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6년 9월
평점 :
품절


스포츠 경기에 대한 강렬한 기억 두 가지. 먼저 1982년 세계 야구 선수권대회 결승전을 기억한다. 흑백 TV였고 김재박의 번트에 이어 한대화의 쓰리런 홈런이 터질 때 내 심장도 터지는 줄 알았다. 초등학생이었던 나는 한일전이었기 때문이었는지 결승전이었기 때문인지 단순한 야구에 대한 관심이었는지는 아직도 애매하지만 그 순간의 짜릿한 기억만큼은 지워지지 않는다. 그리고 98년 프랑스 월드컵 아시아 최종 예선이 열렸던 97년 9월 일본에서 벌어진 일본과의 경기에서 이민성 센터 써클 좌측에서 그야말로 미사일같은 왼발슛을 날린다. 일본의 골대 좌측이 출렁하는 순간 내 심장도 출렁거리며 높지 않은 아파트 천정을 뚫고 올라갈 뻔했다. 그 경기가 한일전이었기 때문이었을까?

일본은 ‘가깝고도 먼 나라’라는 아주 단순한 수식어가 어울린다. 지리적으로 어느 나라 보다도 가깝지만 역사적으로 정서적으로 지구라는 행성에서 공존하기 어려울 것 같은 나라가 또한 일본이다. 그러나 우리는 일본이라는 나라에 대해 잘 모른다. 대부분 일제 식민지 시절에 대한 감상적 반감만을 가지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아니 어쩌면 우리는 일본 제국주의의 식민지 정책보다 ‘민족의 죄인’으로 손가락질하는 친일 한국인을 더 싫어하는 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일본은 우리와 멀다. 그렇다면 일본은 대한민국을 어떻게 생각할까?

노 다니엘의 <우경화하는 신의 나라>에서 우리는 일본인들의 한국에 대한 인식을 읽어낼 수 있다. ‘일본 지배세력의 정신세계’라는 부제처럼 이 책은 설문조사에 의한 자료도 아니고 일본인 대다수의 의식을 반영하는 것도 아니다. 일본의 지배세력이라 할 만한 정치인과 대학교수 등 우익인사들을 중심으로 그들의 발언 내용과 인터뷰 내용 우익 잡지에 실린 글에 대한 분석과 연설 등이 상세하게 기록되어 있다.

일본과 일본인데 대한 수많은 책들 속에서 이 책이 의미를 지니는 것은 나름의 객관성을 확보하고 있다는 것이다. 저자가 밝히고 있듯이 완전히 주관성을 배제할 수는 없으나 최대한 우익 세력에 대한 정보와 자료들을 정리하고 제시하는 것에 1차적인 목적을 두고 있다. 물론 이러한 내용을 통한 그들의 정신세계를 읽어내는 것은 독자들이 몫이다. 그러나 어렵지 않게 저자의 의도도 읽어낼 수 있다.

‘우경화’는 오른쪽으로 기울어지는 변화를 말한다. 흔히 보수 세력이라고 일컬어지는 일본의 우익인사들의 치밀하고 조직적인 활동은 ‘새역모’를 통해 우리에게도 잘 알려져 있다. 단순한 역사 왜곡 집단이 아니라 정치와 재계는 물론 학계 인사들이 총망라된 일본 우익의 총본산에 해당하는 ‘일본회의’의 중추 회원들이 구성원으로 되어있다. 뿐만 아니라 독도와 위안부 문제를 포함해서 일본과의 가장 큰 쟁점이 되고 있는 문제들 뒤에는 이들의 숨은 노력(?)과 일치된 힘이 조직적으로 작용하고 있다.

이 책에서 자주 인용되고 있는 아베 신조는 예상대로 고이즈미에 이어 일본의 새로운 수상이 되었다.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사실 정치권을 중심으로 한 일본의 헌법 개정 움직임이다. 과거 역사에 대한 패배주의를 걷어내고 교육을 통해 후세들에게 일본 정신 즉 천황을 중심으로 ‘좋은 나라 깨끗한 나라 세계에 하나 뿐인 신의 나라(전전 일본 국민학교 수신교과서)’라는 의식을 부활하는 데 그 목적을 두고 있다.

민족주의와 선민의식을 단순한 자국민에 대한 긍지와 자부심으로 치부할 수 없는 이유는 그들의 세계인식 때문이다. 동아시아에 대한 패권의식과 과거 영광에 대한 부활 한국과 중국을 중심으로 한 아시아 국가들에 대한 우월감과 미국을 등에 업은 군국주의에 대한 향수는 세계 평화의 가장 위협적인 요소가 될 수 있다. 쿠바와 북한 이란과 이라크가 아니라 일본과 미국이 세계 평화를 위협하는 악의 축이다.

‘지일知日이 극일克日’이라는 가장 단순한 논리가 통용되는 책이라서 추천할만하다. 감정적이고 분노에 찬 목소리로 일본을 비난하거나 우리 국민의 애국심에 호소하는 단편적인 논리가 아니라 일본이 치밀하게 준비하는 그들의 미래가 우익 세력의 말대로 실현될지는 알 수 없으나 정치권을 중심으로 국민의 상당수와 정치인의 대다수가 우경화한다는 것은 결코 바람직하지 못하다. 일본이기 때문에 바람직하지 못한 것이 아니라 앞서 지적한대로 그들의 주장과 지향점은 수많은 역사적 왜곡과 과장된 몸짓 그리고 허위의식으로 가득하기 때문이다. 사실을 객관적으로 바라보지 못한 채 현실을 올바로 인식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일본의 우익세력이 범하고 있는 우가 반면교사가 되었으면 좋겠다.

우리의 태도와 대응방법은 일본의 현재 모습을 통해 자연스럽게 드러날 것이다. 동북공정에 의한 고구려 역사 왜곡?착수한 중국도 마찬가지지만 이대로 남의 나라 일로만 여길 문제는 아니라는 사실을 다시 한 번 확인하게 된다. 잊을만하면 한 번씩 튀어나오는 일본 정치인들의 망언이 개인의 실수와 자질 부족이 아니라 수많은 우익들의 사상을 기초로 한 돌출행동일 뿐이라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또한 일본 수상 고이즈미는 나까소네에 이어 개인자격이 아닌 수상의 자격으로 8월 15일에 신사를 참배했다. 일본 국민들의 표정은 미묘하다. 더 놀라운 사실은 A급 전범이 합사된 신사에 천황이 참배하는 것이 그들의 궁극적인 목표라는 데 있다.

북한의 핵실험은 일본 우익에게는 더할 수 없는 호기로 작용할 것이다. 주변국과의 관계와 일본의 정치는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특히 미국이나 중국, 한국과 북한의 정치 상황과 대응전략에 따라 일본의 미래는, 아니 아시아와 세계의 미래는 심각한 상황을 맞이할 수도 있다. ‘인류에게 있어 가장 큰 비극은 지나간 역사에서 아무런 교훈도 얻지 못한다는 데 있다.’는 아놀도 토인비의 말은 일본의 우경화는 물론 우리의 자화상을 비춰보는 가장 좋은 거울이 될 것이다.


061015-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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