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보여주는 손가락
김치샐러드 지음 / 학고재 / 2006년 8월
평점 :
품절


블로그blog는 웹web과 로그log의 합성어로 21세기 주류 문화 현상중의 하나다. 집단 중심의 문화에서 개인이 중심이 되는 인터넷 문화의 중추로 자리 잡았다. 블로그는 여러 가지 형태로 나눌 수 있겠지만 소통을 위한 것과 개방형과 기록물의 저장소와 같은 칩거형으로 나눌 수 있겠다. 거칠게 두 가지로 나눴지만 혼합된 형태가 대부분이며 목적과 내용에 따라서 여러 가지로 분류할 수도 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블로그의 전제 조건이다. 블로그는 웹을 기반으로 하기 때문에 가장 큰 특징은 쌍방향성이다. 책이나 다른 언론 매체와 달리 상호 작용이 가능하며 즉각적인 피드백이 실시간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매력적이다. 또한 블로그는 일정한 형식과 틀의 제한을 받지 않기 때문에 자유롭고 유연하다. 시간과 공간의 제약이 없기 때문에 이전과 전혀다른 형태의 의사소통 구조가 형성된다. 그러나 개성을 앞세운 블로그의 양적 팽창은 단순한 시간의 소모와 현대사회의 인간 소외와도 무관하지 않다. 공동체와 자본으로부터의 소외가 나타나기도 하고 유행과 익명성의 폭력은 무시할 수 없는 현상으로 가상 공간이 아닌 현실적인 문제가 되기도 한다.

이처럼 블로그를 운영하는 사람들의 다양한 목적과 욕구를 감안해서 자신과 맞는 코드와 선별적인 소통능력을 기른다면 상상을 초월하는 정보와 효용을 얻을 수도 있다. 단점과 약점을 최소화하고 강점과 장점을 극대화시키려는 노력은 자연스럽게 진행되고 있다. 변화와 발전의 과정을 거치면서 시행착오를 극복한다면 우리는 즐겁고 행복한 사이버 세상에서 또다른 만남을 가질 수도 있다.

김치샐러드의 <그림 보여주는 손가락>이란 책은 사이버 공간의 블로그를 책의 형태로 옮겨 놓았다. 어렵고 딱딱한 그림을 블로거의 안목과 적절한 설명 그리고 재치있는 말솜씨로 아주 쉽고 재미있게 풀어 놓았다. 스크롤을 아래로 내려야하는 수고를 책장을 넘기는 것으로 대신했다. 과연 수직적 시선의 이동을 수평적으로 옮겨놓은 것만이 이 책이 지니는 의미일까?

벤야민은 ‘기술 복제 시대의 예술 작품’에서 ‘아우라aura’의 개념을 통해 사진이나 영화 예술에 대한 우려와 비판을 시작했다. 아우라는 예술작품의 원본이 지니는 시간과 공간에서의 유일한 현존성이 있어야 한다. 그런 면에서 아우라가 없는 예술은 예술이라고 말할 수 없다고 생각한 것이 20세기 초 기술 복제 시대에 진입한 발터 벤야민의 논리이다. 21세기에 들어서 사진과 영화 그리고 만화를 예술이 아니라고 주저없이 말할 수 있는 용기를 지닌 사람은 많지 않다. 시대는 변했고 예술의 개념도 달라졌다. 우리가 살아가는 이 시대의 예술이란 무엇인가?

숨어 있는 명화들을 화면으로 불러내고 말풍선을 달아 친절한 설명을 붙이고 개인적인 감정을 투사한 해설은 수많은 블로거들의 공감을 불러 일으키기에 충분하다. 네트워크 시대의 특성을 감안하면 수많은 스크랩과 이슈를 만들어내는 포탈 사이트의 홍보에 힘입어 순식간에 유명해질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것 뿐이다. 깊이와 넓이를 닮아내지 못하는 단순한 여가 활용 수준의 사이버 갤러리 역할은 인터넷이라는 가상의 공간에서만 차별성과 본래의 의미를 획득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실제 화가들의 그림들을 사이버 갤러리에서 만날 수 있게 된 것은 기술 복제 시대의 장점이지만 아우라가 없는 복제된 그림의 해설은 실제 그림의 감상이 뒷받침되지 않는다면 무의미한 일이다. 감상자와의 상호 의사소통과 예술의 개념을 달리 받아들이게 하는 의도가 담긴 작품이 아니라면 원본이 지니는 아우라를 전달할 수는 없다. 그림은 시처럼 이해되기 전에 전달되는 예술 장르라고 믿기 때문이다. 아는만큼 보인다는 자명한 진리처럼 여겨지는 금언속에는 타인의 견해와 해설을 작품 이해의 전부라고 믿는 오류가 숨어 있다.

책은 나무로 만들어진다. 자연을 훼손하며 인간은 책을 만든다. 사람들은 지금까지 인류가 쌓아온 지혜의 전달과 저장과 보관을 위해 가장 유용한 수단이 책이라고 믿어왔다. 앞으로 달라질지도 모르겠지만 자연의 일부인 인간이 자연의 일부를 파괴하면서 만들어가는 책은 나무에 대한 예의를 지켜야 한다. 김치 샐러드의 <그림 보여주는 손가락>은 그런 면에서 예의가 없는 책이다.

재밌고 즐거운 사이버 공간에서 이웃 블로거로 만났다면 사소한 슬픔과 기쁨에 공감할 수도 있고 안부를 물을 수도 있다. 그러나 책의 형태로 나타난 <그림 보여주는 손가락>은 어떤 의사소통도 부재한 일방적인 의사전달 방식이 된다. 그렇다면 무슨 의미가 있는가? 그럴만한 이유도 내용도 없는 종이 낭비에 불과한 심심풀이 낙서장에 불과하다. 책의 내용과 의미를 묻기 전에 책이 지니는 효용과 전달방식을 먼저 생각해 볼 일이다. 과연 우??이런 책도 책이라고 읽어야 할까? 나무의 희생, 타인의 시간과 노력을 담보로하는 책은 만드는 데 좀 더 신중해져야 한다. 블로그는 블로그로 남겨두고 책은 책으로 남겨달라. 블로그의 목적이 이런 종류의 책이 아니라면.


060911-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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