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어떼가 나왔다 - 제10회 문학동네작가상 수상작
안보윤 지음 / 문학동네 / 200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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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청장의 아들이 마트에서 사라졌다. 배꼽에 악어 모양의 문신이 있다는 확실한 증거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전국의 모든 아이들의 배를 까볼 수는 없다. 사라진 아이 때문에 전국에는 미아 찾기 열풍이 불고 아이의 부모들은 미아 방지를 위해 아이 몸에 문신을 새겨 준다. 안보윤의 <악어떼가 나왔다>는 이렇게 코믹한 시트콤처럼 시작된다. 악어 문신은 사실 배꼽 옆에 난 점이라는 사실을 아무도 알지 못한다.

이 아이를 기점으로 순환적 알레고리가 형성되는 중편소설 <악어떼가 나왔다>는 10회 문학동네 작가상 수상작이다. 스물 다섯의 여성인 작가 안보윤의 ‘가능성’을 보고 선정했다는 성민엽의 말을 듣고 보니 가능성이 있어 보인다. 소설의 완성도보다 가능성을 보고 읽어 내는 것은 평론가의 몫이지 독자들이 감당할 몫은 아니다. 독자의 입장에서 소설은 일단 재미있고 감동적이거나 정수리에 찬물을 한 바가지 쏟아 부어줄 정도는 되어야 한다. 안보윤의 소설은 미지근한 물에 발을 담근 느낌이다.

코믹잔혹극이라는 장르가 존재하는지 알 수 없지만 그럴듯한 표현이라서 인용한다면 적절하게 어울릴만한 소설이다. 우리가 발 딛고 살아가는 현실 문제에 대한 날카로운 풍자와 해학은 전통적인 미의식의 반영이다. 그 전통을 고전문학에서 찾을 필요도 없지만 오래동안 우리에게 큰 즐거움은 웃음을 통한 카타르시스였다. 후련한 배설과 같은 감정의 정화 작용은 소설의 중요한 요소이기도 하다. 이 소설에는 아이들에 대한 과잉 보호, 미아에 대한 사회적 관심, 외모 지상주의, 자살과 살인에 대한 추억 등 다양한 요소들이 결합되면서 혼란스럽기도 하다. 중편 소설의 분량에 여러 가지 이야기들이 얽히다 보니 간결하고 깔끔한 맛은 없다.

하지만 잔혹한 살인 장면과 일상의 필연성을 뛰어넘는 도약적 상상력은 이 소설의 가장 큰 재미이다. 빠른 속도로 사건을 진행시키다가 인물의 심리를 간접적으로 서술하는 장면에서는 작가의 의도인지 미숙함인지 혼란스럽기도 하다. 이후의 작품들을 통해 그녀를 판단해 볼 일이다.

영화 <조용한 가족>이 주는 재미와 긴장을 비교한다면 적절할 것 같다. 비일상적이고 상식적으로 이해되지 않는 문제가 현실에서는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 그것을 소설과 비교해서 소설같은 현실이라고 말하거나 현실같은 소설이라고 말하는 것은 무의미하다. 소설은 이미 나름의 영역을 구축해야 한다. 특정한 분야나 역할을 한정시키는 일이 아니라 활자 책의 종언을 예고하는 시대에 더구나 소설이라는 장르가 가진 의미에 대해서 다시 한 번 생각해 볼 만한 기회가 될 수도 있겠다. 영화와 소설의 장르를 동종교배한다고 해서 슈퍼맨이 탄생하지는 않을 것이다. 이 소설은 특집극 분량 정도의 재미있는 에피소드들로 구성되어 있어 영화가 아니어도 영상물로 읽힌다.

다소 긴장과 극적인 재미가 떨어진다. 옴니버스식의 몇 가지 이야기들이 꼬리를 무는 형식으로 구성되어 있지만 ‘악어떼’가 말하는 진한 감동이나 충격은 쉽게 전달되지 않는다. 한강에서 무더기로 떠오르는 익사체가 ‘악어떼’인 것 같지만 현실에서 ‘악어’가 차지하는 역할과 비중이 실감나지 않는다. 그렇다고 꿈과 환상의 세계로 안내하는 마술적 리얼리즘과도 거리가 멀다.

새롭고 낯선 것을 나와야지 신인은 아니다. ‘가능성’만 믿고 나올 수도 없다. 나이가 무기가 될 수 없음은 물론이다. 박민규의 쓰잘데 없는 인터뷰도 작가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지는 않는다. 아직은 그녀의 보다 많은 작품들을 통해 독자들이 그녀를 알아가야 할 때가 아닌가 싶다. 문학의 위기(?)라고 불리워졌던 수많은 시대에 등장했던 작가들 중에 하나가 아니라 즐거운(?) 소설들을 독자에게 선보일 수 있는 작가가 되길 바란다. 독자가 기다리는 작가가 될 것인가의 여부는 그녀의 다음 작품이 말해줄 것이다.


060921-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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