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에 대한 수많은 질문들이 쏟아져도 우리가 쉽게 답을 찾는 것은 쉽지 않다. 철학은 실용적인 학문이어야 한다. 실생활에서 부딪히는 문제 상황들을 해결할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 삶의 목적과 가치를 생각해 보는 관념론이 아니라 생활 속에서 부딪히는 질문들에 대해 안내자와 길잡이 역할을 해야한다는 것이 개인적인 생각이다. 부단한 훈련과 노력은 개인의 몫으로 돌리더라도 생각하는 방식과 세상과 삶에 대한 기본적인 생각들은 우리 생활과 밀접하게 관계를 맺고 있다. 어렵지도 않고 비현실적이도 않은 철학은 불가능한가? 김용옥의 <논술과 철학강의 2>는 1권 논술편에 이어 ‘철학강의’로 구성되어 있다. 발에는 오른발과 왼발이 있지만 신발에는 없다. 왜 오른쪽과 왼쪽 신을 구분해서 신어야하는지에 대한 궁금증으로 도올의 어린 시절은 암담했다. 지극히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였던 무비판적으로 수용했던 것들에 대한 관찰과 생각으로부터 철학은 시작된다. 철학은 보편을 지향하지만 절대를 말하지는 않는다. 상식에 대한 반론으로 시작된 철학의 길은 정치와 종교에 대한 당연한 질문으로 연결된다. 철학으로 가는 길은 쉽고 간단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어렵고 복잡해서 현실과 분리되어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잘못이라고 도올은 말한다. 철학은 서양언어에서 비롯된 ‘지혜의 사랑’도 아니고 일본식 한자어인 ‘밝은 배움’도 아니다. 철학은 정의 자체가 불가능하다. 왜냐하면 철학을 정의하는 사람의 관심의 표현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절대적인 가치를 내세우는 것도 아니고 특별한 지식도 아닌 철학을 우리는 왜 잘못 이해하고 있는지 들려주는 것이 이 책의 목적이다. 중고생을 위한 논술과 철학을 위한 강의록이라는 명분으로 쓰여졌지만 누구나 한번쯤 스스로 ‘돌대가리’라고 선언하는 도올의 철학 이야기에 귀기울여 볼만하다. 근엄한 제목과 들어본적도 없는 용어들 사이에서 좌절했던 많은 사람들에게 새로운 방식으로 철학의 길을 제시해 준다. 우리의 삶이 텍스트이고 세상이 콘텍스트일 때 철학은 진정한 의미가 있다고 본다. 모든 가능성을 전제로 한 무전제의 전제가 철학이라면 알지도 못하는 사이에 우리들 마음속에 자리잡고 있는 모든 우상과 편견들을 깨뜨리는 일이 철학의 시작이라고 할 수 있다. 우선 내 마음의 우상을 깨뜨리고 개방적인 시선과 비판적인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데서 철학은 시작된다. 그것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당연하고도 다양한 전제 중의 하나이다. 서양철학은 플라톤에 대한 주석에 불과하다고 말한 화이트 헤드의 말은 수정되어야 한다. 현실과 이상을 분리해서 인식할 때 철학은 우주 밖으로 멀어진다. 존재하지도 않는 ‘이데아’에 대한 탐구와 믿음은 현실과 유리된 철학을 낳았다. 동양의 장자가 이야기한 우물한 개구리는 소견이 좁을 뿐 분리되어 있지는 않다. 큰 흐름속에 작은 흐름을 포함시켜 관견管見을 이야기할 뿐이다. 대롱으로 하늘을 보는 개구리도 결국 현실속에 존재하기 때문이다. 도올의 관점과 방식이 정답일 순 없다. 그가 이미 밝히고 있듯이 철학에는 절대가 없으므로. 이 책은 동서양의 철학의 차이를 통해 동양 철학의 우월성을 밝히는 데 목적을 두고 있는 책은 아니다. ‘철학은 문화사’라고 말할 정도로 문화적 토양과 삶의 방식에 뿌리를 둔 철학을 맹목적으로 따를 이유가 없다는 데에는 동의할 수 있다. 사용하는 언어가 다르다는 것은 언어의 차이와 생각의 차이를 낳고 결국 철학적 사유를 결정 짓는다. 우리가 발붙히고 살고 있는 이 땅에서 필요한 철학은 지금, 여기, 그리고 우리들의 삶을 이야기 해야 한다. 철학은 인간학이 되어야 한다는 도올의 말이 철학을 바라보는 여러 가지 방식중 하나라고 하더라도 공감할 수 있는 많은 부분이 남아 있다. 지금까지 도올이 보여준 삶의 이력들과 그가 말해온 많은 이야기들을 배경으로 읽는다면 도올을 이해하는 데도 도움이 될만한 책이다. 글은 곧 그 사람이기 때문이다. 한 사람을 이해하고 편견없이 그 사람의 생각을 들어보는 일은 독자가 판단할 일이지만 도올을 지우고 그의 주장만을 놓고 보더라도 크게 실망할 만한 책은 아니다. 다만 이 책을 ‘대학 입시를 위한 논술과 철학강의’로 읽는다면 조금 거리가 멀다. 실전과는 다소 거리가 있겠지만 결국 우리가 지향해야할 논술의 방향성을 제시하고 있다는 데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 뚜렷한 자신의 목소리와 나름의 독특한 해석으로 철학과 세상을 읽어내는 도올의 목소리는 내게 신선한 울림을 준다. 서양 철학자 하나를 붙잡고 목숨거는 철학 교수보다 그를 비교 우위에 두는 이유는 교수가 아니라 철학자라는 이름으로 이 책에서 보여주는 생각 때문이다. 도올에 대한 개인적인 평가를 떠나 그의 주장이 언제나 비판과 논쟁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이유도 지나친 확신과 소신에서 비롯된 뚜렷한 신념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그의 생각이 독선이나 아집과는 거리가 멀다. 철학에 대한 수많은 생각과 방법들 중의 하나로 도올의 말에 귀기울여 보는 것은 분명 의미 있는 일이다. 060925-1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