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을 원할 자유 - 현대의학에 빼앗긴 죽을 권리를 찾아서
케이티 버틀러 지음, 전미영 옮김 / 명랑한지성 / 2014년 8월
평점 :
절판


요즘 내가 겪은 모든 문제들에 대한 답은 수용이다. 내 마음이 불안해지는 것은 어떤 사람, 장소, 일 또는 상황(내 인생의 한 단면)을 내가 받아들일 수 없기 때문이다. 그 사람, 장소, 일 또는 상황은 그 순간에 정해진 방식대로 일어난 것이라는 사실을 수용해야만 평온을 찾을 수 있다. 어떤 일도, 신이 창조한 이 세상에서는 어떤 일도 결코 실수로 일어나지 않는다.

 

케이티 버틀러는 심박조율기를 달고 연명하는 아버지를 간호하는 어머니와 갈등을 겪는다. 남동생 조너선에게 전화를 걸어 험담을 늘어놓자 동생은 미국 알코올중독방지회에서 발행한 책자의 한 문단을 크게 읽어준다. 어떻게 나에게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 왜 나는 이런 생각을 할까, 라고 생각해도 자신이 겪어야 하는 일을 과거로 돌이킬 수 없다는 뜻이다. 그러나 수용은 아무나 도달할 수 있는 삶의 경지가 아니다. 부처님도 힘들다는 관용과 수용의 자세를 아무렇지도 않게 말하는 사람들은 실천하며 살고 있을까.

 

책장을 뒤적여 일단 죽음에 관한 책들을 뒤적인다. 직접 죽음을 다룬 책들이다.

 

1. 철학 : 죽음이란 무엇인가(셸리 케이건)

2. 철학 : 죽어가는 자의 고독(로베르트)

3. 의학 : 우리는 어떻게 죽고 싶은가(미하엘 데 리더)

4. 에세이 : 우리는 언젠가 죽는다(데이비드 실즈)

5. 문화 : 임사체험(다치바나 다카시)

6. 인문 : 죽음, 또 하나의 세계(최준식)

7. 인문 : 메멘토 모리, 죽음을 기억하라(김열규)

 

책 모임을 통해 읽게 될 책은,

 

1. 문학 : 이반 일리치의 죽음(레프 톨스토이)

2. 사회 : 자살론(에밀 뒤르켐)

3. 철학 : 죽음에 이르는 병(키에르케고르)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의 책을 한 권 더 읽어볼 생각이다.

 

미국은 세계적인 의료 선진국이다. ‘생명 연장의 꿈을 실현하기 위해 메치니코프요구르트를 마시는 대신 각종 첨단 의료기기에 기대 집중치료실에서 발버둥치는 생의 마지막 장면은 비참하다. 이 책은 아버지의가 뇌졸중으로 쓰러져 심박조절기에 의존한 후 치매에 걸려 여든 다섯에 심박조절기를 끌 때까지의 기록이다. 간병에 지쳐 어머니의 남은 생은 피폐해졌고 경제적으로도 무너졌다. 이 책의 저자인 딸 케이티 버틀러 또한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경제적으로 큰 어려움을 겪는다. 그렇다고 해서 가족을 위해 빠른 죽음을 선택하라고 주장하는 책은 절대 아니다. 현대 의학이 우리의 품위있는 죽음을 어떻게 방해하는지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무병장수의 꿈은 인류의 오랜 꿈이다. 그러나 아무리 의학이 발달해도 인간은 영원히 살 수 없다. 그것을 받아들이지 않는 순간, 죽어야 하는 사람도 그 가족과 친지도 함께 불행해진다. 죽음을 터부시하는 동양의 오랜 전통으로 인해 우리는 서양보다 더 큰 죽음에 대한 공포를 안고 살아간다. 그러나 죽음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거나 어떻게 죽을 것인가에 대해서는 생각하지는 않는다. 삶은 죽음을 전제로 시작된다. 어떻게 죽을 것인가는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훌륭한 안내자가 된다.

 

케이티의 아버지 제프리 어니스트 버틀러는 제2차 세계대전에서 한쪽 팔을 잃고 미국으로 이주한 후 웨슬리안 대학의 교수가 된다. 미국의 평범한 중산층이었지만 그가 죽음에 이르는 과정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종교와 문화에 따라 죽음을 대하는 태도와 방법이 다르다. ‘시작을 전제로 한다. 유한한 삶에 경배할 수 있어야 하루가 소중하다. 우리는 마지막이 언제인지 그 누구도 알 수 없다. 오늘은 어제 죽은 이가 그토록 바라던 내일이 아니라 내일은 우리가 그토록 바라는 미래다. 삶의 예측 불가능성이야말로 순간을 소중하게 사는 유일한 방법이 아닐까.

 

뇌종양 진단을 받은 마틴과 골수암 말기의 루디는 생의 마지막 여행을 떠난다. 한 번도 바다를 보지 못한 루디를 위해 어마어마한 돈이 실린 악당의 차인줄도 모르고 두 사람은 스포츠카를 훔쳐 타고 달린다. 어차피 미래가 없는 둘은 바다를 향해 질주하는 게 아니라 그야말로 천국을 노크(노킹 온 헤븐스 도어Knockin' On Heaven's Door, 1997)하러 떠난 게 아닐까.

 

현실 같은 영화보다, 영화 같은 현실은 매일 우리 눈앞에 펼쳐진다. 케이티 버틀러의 구구절절한 이야기와 부모와의 시시콜콜한 추억담까지 곁들여져 380여 페이지나 되지만 저자의 주장은 명료하다. 현대의학에게 빼앗긴 죽을 수 있는 권리를 돌려 달라, 좋은 죽음이 무엇인지 고민하라, 어떻게 죽을 것인지 준비하라.

 

살아있다는 걸 어떻게 증명할 수 있을까. 물론 의학적 관점에서가 아닌 방법으로. 소설가 김연수는 하루키처럼 달린다. 지지 않는다는 말은 그가 살아있다는 외침에 불과하다. 그가 누구든 사생활과 개인적인 취향에 관심이 없는 독서 취향상 이 책은 지루하다. 소설가의 경험과 사물을 낯설게 바라보는 방식, 사람을 대하는 태도, 살아가는 자세를 통해 배울 게 없다는 뜻이 아니다. 산문집은 자신의 경험을 일반화시켜야하는 이론서가 아니다. 하지만 주관적 감상과 판단이 궁금하지 않은 사람에겐 무용지물이다. 다만, 걷고 달리면서 자신이 살아있다는 걸 확인할 수 있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지지 않는다 말은 이겼다는 말과 다르다. 비교 대상이 없다면, 승부를 걸지 않는다면 질 수 없다. 지지 않는다는 말은 꼭 이겨야겠다는 말이 아니다. 성공이라늘 말과는 더욱 거리가 멀다. 김연수가 달리기를 통해 터득한 깨달음처럼 지지 않는다는 건 결승점까지 가면 내게 환호를 보낼 수많은 사람들이 있다는 걸 안다는 뜻이다. 아무도 이기지 않았건만, 나는 누구에게도 지지 않았다. 그 깨달음이 내 인생을 바꿨다.’ 환호하는 사람이 없어도 좋다. 인생은 이기고 지는 게임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는 데도 한참이 걸린다. 승자독식 시대, 성공에 대한 집착과 욕망, 자기계발에 대한 환상은 우리를 지치게 만들고 지게 만든다. 자기 속도에 맞춰 결승점이 아니라 지금 달리고 있는 이 순간에 내 뺨을 스치는 바람과 나뭇잎 사이로 비치는 눈부신 햇살을 한 번쯤 올려다 보면 세상이 아름답다고 느끼는 사람은 절대로 지지 않는다. 누구도 지지 않아야 한다. 아무도 지지 않았는데 어떻게 이기는 사람이 생기겠는가. 스스로 이겼다고 생각한 사람들이 사실은 졌다.

 

 

15-0104-001~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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