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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망해도 괜찮아 - 나와 세상을 바꾸는 유쾌한 탈선 프로젝트
김두식 지음 / 창비 / 2012년 5월
평점 :
정신분석학자 라캉은 이런 질문을 던졌습니다. “지금 당신이 욕망하는 것이 진정으로 당신이 욕망하는 것인가?” 그는 우리 욕망의 대부분이 자신의 욕망이라기보다 타자의 욕망이라고 냉정하게 진단했던 것입니다. - 강신주, 『상처받지 않을 권리』, 머리말
철학자 강신주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우리의 욕망을 분석하기 위해 라캉을 데려온다. 자신의 욕망이 무엇인지 한번도 진지하게 생각해 보지 않은 사람으로서는 당황스런 말이 아닐 수 없다. 내 욕망이 아니라 타인의 욕망을 욕망하고 있다는 말의 아이러니함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게다가 장 보드리야르는 『소비의 사회』를 통해 ‘기호’에 대한 욕망을 강조했다. 생산이 아니라 소비를 욕망하는 현대사회의 뒤틀린 욕망을 비판하고 있는 시선을 또다시 점검하자는 말은 아니다. 다만 우리 안의 숨은 욕망을 부정하는 이유와 그러한 욕망을 드러낸 타인을 바라보는 시선에 대해 생각해 보자. 그 음험한 시선과 들키고 싶지 않은 당신의 욕망에 대해.
누군가는 공자가 죽어야 나라가 산다고 말했고 또 누군가는 논어가 사람의 길을 열었다고 말한다. 유교적 질서는 그만큼 한국인의 삶에서 중요한 화두이면서 상반된 관점을 드러낸다. 우리 문화의 중요한 축을 이루면서 행동의 준거 기준이 되었지만 그 부당함과 문제점이 일시에 해결되지는 않고 있다. 개인적으로 그리고 사회적으로 아주 오랜 시간 동안 생각을 지배해 온 이데올로기가 바로 유교적 윤리다. 처음 만나면 나이부터 확인해서 스스로 서열을 결정하고 온 가족이 마치 가족인 것처럼 형, 누나, 동생으로 지칭하는 버릇이 그러하다. 가만히 있어도 시간은 흐르고 세월은 간다. 태어난 순서, 직장에서의 경력이 도대체 무엇을 말해줄 수 있을까. 개인의 노력과 능력 그리고 사유 방식이 아닌 것으로 관계를 설정하려는 불편한 방식을 나는 받아들일 수 없지만 어느 조직이든 그것부터 확인하려는 전근대적 태도를 일시에 바꿀 수는 없는 노릇이다. 하물며 욕망이라니!
『욕망해도 괜찮아』를 통해 꺼내기 조차 불온한 언어를 꺼내 든 김두식의 ‘용기’에 일단 찬사를 보낼 수밖에 없다. 색(色, 욕망)과 계(戒, 규범)을 키워드로 풀어내는 개인적 삶에 대한 고백은 누구든 할 수 있지만 아무나 할 수 없는 용기에 해당한다. 『불편해도 괜찮아』와 유사성을 떠올리도록 한 제목은 출판사의 상업주의라고 밖에는 볼 수 없다. 국가인권위에서 기획한 인권이야기가 담겨있는 『불편해도 괜찮아』의 판매고에 힘없어 책을 팔려는 의도 이외에 『욕망해도 괜찮아』는 『불편해도 괜찮아』와 전혀 무관한 책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욕망해도 괜찮아』가 『불편해도 괜찮아』에 못미치는 불편한 책은 아니다. 멘토 과잉의 시대, 자기 계발서 범람의 시대, 스펙 올인의 시대에 김두식의 고백은 오히려 불순한 현학적 자기 고백의 욕망에 충실한 책이다. ‘100퍼센트 장학금으로 스물일곱살에 미국에서 박사를 딴 후 서른한 살에 교수가 된 형이나 스물네살에 사법시험에 합격한’ 김두식은 우리 사회에서 성공한(?) 축에 드는 사람들이다. 경북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인 저자는 부부 교사였던 부모님의 경제적인 상황을 ‘사’자 가족의 ‘사자 가죽’으로 풀어냈지만 우리 사회의 99% 입장에서는 1%의 엄살로 비칠 뿐이다. 내 손톱 밑의 가시가 타인의 죽음보다 고통스럽다는 것은 당연한 인간의 한계다. 김두식의 사회적 계급과 경제적 계층을 고려하면 하품나는 자기 고백에 불과하다.
하지만 관점을 조금 달리해서 중산층 일반의 시선으로 이 책을 바라보면 그 어떤 책보다도 솔직하고 통쾌한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한다. 어쭙잖은 글을 쓰는 모든 사람의 욕망과 자본주의 사회에서 자본의 힘을 경멸하는 사람들이 겪어야 하는 불안한 욕망을 나이브하게 드러낸 김두식의 글은 읽는 사람의 손에서 책을 놓지 못하게 하는 힘을 가지고 있다. 모든 사람은 욕망과 규범의 갈림길에서 갈등한다. 그것을 색과 계로 읽어내며 영화 ‘색, 계’의 두 주인공의 관계로 풀어내고 있다. 양조위와 탕 웨이의 관계는 색과 계의 충돌이다. 하지만 결과는 위태롭고 불안하다. 그것을 조절하며 자신 있게 살아가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현실 세계에서도 마찬가지다. 그것은 선악의 문제가 아니라 태도의 문제이고 선택의 문제일 뿐이다. 그 어느쪽을 선택하든 가지 못한 길에 대한 아쉬움과 후회가 남는다. 인생은 그런 것이다. 굳이 프루스트의 ‘가지 않은 길’을 읽으며 고개를 끄덕이지 않더라도 말이다.
욕망을 인정하는 일로 시작하는 이 책은 학벌문제와 희생양, 신정아와 똥아저씨, 정신 승리의 비법, 중산층의 은밀한 욕망, 몸과 살의 소통 등 우리 사회에서 벌어지는 사례를 통해 때로는 김두식 자신의 욕망을 드러내며 ‘고백은 나의 힘’이라고 외치는 이 책은 새빨간 표지만큼 발칙하다. 그래서 단숨에 읽히며 읽고 나서도 한동안 쓴 웃음을 짓게 된다. 세상의 모든 뒷담화에 던지는 도발이며 드러내지 않은 음험한 욕망에 대한 냉소다.
자기를 계발하라고 부추기는 세상의 모든 책들, 모르는 것을 가르치겠다는 세상의 모든 멘토들, 내가 아니면 이 나라가 망할 거라고 믿는 세상의 모든 정치인들 그리고 그 모든 사람을 손가락질하는 세상의 장삼이사들이여 진정 용기 있다면 이 책을 읽고 김두식에게 손가락질을 하시기를. 나는 내 손이 부끄러워 슬며시 두 손을 주머니에 찌른다.
120606-05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