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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쓰는 한국 근현대사
한상철.이영복 지음 / 우리교육 / 2011년 3월
평점 :
2009 개정교육과정의 뚜렷한 변화 중 하나는 <근현대사> 과목의 폐지이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역사를 해석하고 평가하는 기준이 달라지는 것에 우리는 동의할 수 있을까. 수능 체제 개편과 함께 사라진 <근현대사>는 공부할 필요가 없는 과목이었을까.
몇 권의 한국 근현대사를 다시 읽다가 마음이 너무 무겁고 우울해졌다. 우리에게도 분명 행복하고 찬란했던 순간들이 있었을 텐데 근현대사는 어찌도 이렇게 잔인한 슬픔으로 가득하단 말인가. 19세기와 20세기의 200여 년간 우리에게는 어떤 일들이 벌어졌으며 그 결정적 시기를 왜 지혜롭게 극복하지 못했을까. 역사에는 가정법이 없다고 하지만 우리의 근현대사는 말할 수 없이 안타까운 순간들로 가득하다.
중국의 작가 루쉰은 처음부터 만들어진 길은 없고 한 사람 두 사람 걷다보니 길이 생겼다고 말한다. 인간의 생각과 판단에 따라 행동하고 삶을 영위하는 과정이 역사라고 한다면 백지 같은 시간과 공간에 그려진 역사는 우리들이 걸어온 길이며 또한 걸어갈 길의 목적과 방향을 예고해 준다. 서구 열강의 침략과 국제 정세의 변화에 적절하게 대응하지 못한 시점부터 일제 식민지는 예고된 것과 다름없다. 그러나 불행한 과거를 딛고 새로운 미래를 열지 못한 안타까움은 지금 현재 우리들의 삶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1948년 9월 ‘빈민족행위처벌법’을 만들었으나 친일 경찰들이 반민특위 사무실을 습격하고 특별경찰대원들을 체포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하지만 당시 대통령이었던 이승만은 내가 지시한 것이라고 옹호했고 반민법의 공소 시효를 1949년 8월 31일로 줄인 개정안이 통과되었다. 유대인 학살에 대한 독일인들의 반성과 나치 부역 언론을 청산한 프랑스의 사례와 비교하면 통탄할 노릇이다. 사회적 갈등과 현재의 불행은 과거청산이 이루어지지 않은 것에서도 그 원인을 찾을 수 있다.
역사교육은 청소년들에게 자신의 정체성을 확인시켜주는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다. 자신이 살고 있는 국가와 민족이 걸어온 길을 되돌아보고 현재의 나를 확인하며 미래를 꿈꿀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해 주기 때문이다. ‘네가 서 있는 곳을 파헤쳐라.’고 말한 스웨덴 역사가 스벤 린드크비스트의 말은 근현대사의 중요성을 다시 한 번 강조한다. 자신의 정체성을 확인하고 현재 내 삶의 근원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먼저 현실적인 문제와 관련된 일부터 알아야 한다. 우리가 근현대사를 꼼꼼하게 살펴보아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공식적인 기록, 민족주의적 관점, 자존심을 내세우는 역사가 아니라 사실 그대로의 기록을 확인하고 객관적인 정보를 통해 비판적인 판단 능력을 길러나가도록 하는 것이 우리가 역사교육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교훈이 아닌가 싶다.
한상철, 이영복의 『내가 쓴 한국 근현대사』는 어느 한 쪽으로 치우치지 않은 객관적 사실들이 잘 정리되어 있다. 정치사가 중심을 이루는 것은 당연하지만 경제사와 사회사 그리고 문화사도 빼놓지 않고 있으며 1800년부터 2000년 6. 15 남북 공동선언까지 폭넓고 다양한 역사적 사실들을 다루고 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역사적 사실들도 관점에 따라 180˚ 다르게 평가된다. 역사는 관점과 기준이 결정하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테러리즘에 반대하지만 이토 히로부미를 암살한 안중근은 ‘의사(義士)’라고 한다. 일본인들에게는 암살범에 불과하지만 누구의 관점으로 어떤 기준으로 보느냐에 따라 역사적 사실에 대한 해석과 평가는 달라지는 것이다. 민주주의적 관점에서 인권, 평등, 노동, 환경, 평화 등의 가치를 담아내려고 노력한 이 책은 한국 근현대사에서 벌어졌던 최소한의 이야기를 객관적으로 접근할 수 있는 장점을 가지고 있다. 아프고 고통스럽지만 우리가 확인하고 넘어가야할 역사의 한 장면들이 하나의 흐름으로 이어져 전체를 조망할 수 있는 균형 잡힌 역사책이다.
서중석의 『사진과 그림으로 보는 한국 현대사』는 해방 이후 1945년부터 2000년 남북 정상회담까지 현대사만을 집중적으로 조명하고 있다. 미국과 소련의 영향 아래 놓인 한반도의 운명은 남북 분단과 한국전쟁으로 이어졌고 이후 첨예한 이념 대립과 갈등으로 분열되었다. 그 고통과 상처로 인한 남과 북의 대립과 갈등은 우리 민족의 비극으로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그 과정에서 벌어진 참혹한 양민학살, 정치인들의 욕심, 군사 독재는 우리 역사의 아픔이고 그늘이었다. 그리고 그 역사는 오늘날 우리들의 삶으로 이어진다. 하지만 이런 진실은 학교에서 배운 역사, 널리 알려진 역사만으로는 파악하기 어렵다. 근현대사는 우리에게 조금 더 비판적인 시각으로 현실을 바라보고 그 원인을 고민할 것을 주문하고 있다.
‘전근대의 부정적 요소를 척결하는 시민혁명을 거치지 못한 현실에서 근대/전근대의 이분법적 도식은 우리 사회를 설명하는 데 별로 도움이 안 된다.’고 말하는 한홍구의 『대한민국史1~4』는 살아있는 현대사의 이면을 정확하고 재미있는 이야기로 풀어주는 책이다. 역사는 대체로 지루하고 따분하다는 편견을 깰 만큼 도발적인 글쓰기로 읽는 사람에게 신선한 자극을 준다. 혼란스런 해방 정국에서부터 친일파 청산, 고문치사, 좌우대립, 맥아더, 주한민군, 노무현 대통령 탄핵, 신영복, 유시민에 이르기까지 현재 우리들의 현실을 포함한 지금 이 순간의 역사를 다루고 있어 매우 현실적이다.
살아 숨 쉬는 역사는 누가 가르쳐 주는 것이 아니라 온몸으로 부대끼며 살아가는 오늘의 삶이다. 다양한 사회 문제와 내 삶의 조건이 과거 역사를 바탕으로 이루어진 결과라는 사실을 생각해 보면 우리들의 근현대사는 지금 우리들의 현실을 말해준다고 할 수 있다. 대한민국의 역사는 편견과 이념을 넘어 객관적 정보와 사실들을 인정하는 데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그것에 대한 평가와 판단은 차후의 문제이다. 선별적으로 역사적 사실을 전달하거나 왜곡된 정보를 전달하는 역사책은 쓰레기에 불과하다. 이성적이고 합리적으로 역사에 접근하고 비판적 관점으로 현실을 바라볼 수 있는 통찰력을 기르기 위해서는 내가 발 딛고 서 있는 ‘지금-여기’의 역사를 다시 한 번 꼼꼼하게 살펴볼 필요가 있다. 그것이 우리들 삶의 과정이며 그 과정이 역사가 된다는 사실을 기억하자.
120507-040~04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