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고 트릭 - ‘나’라는 환상, 혹은 속임수를 꿰뚫는 12가지 철학적 질문
줄리언 바지니 지음, 강혜정 옮김 / 미래인(미래M&B,미래엠앤비) / 2012년 4월
평점 :
품절


나 자신이라고 부르는 것 속으로 아주 깊이 파고들 때면,

늘 이런저런 지각, 이를테면 열기나 냉기,

빛과 그림자, 사랑과 증오, 고통과 쾌락, 색깔 혹은 소리 등과 마주친다.

나는 이런 특정 지각과 구분되는,

오롯한 나 자신을 결코 포착하지 못한다.

데이비드 흄, <인간 본성에 관한 논고>에서

 

로버트 드 니로가 열연했던 <숨바꼭질>이라는 영화를 보다가 시작한지 5분 만에 주인공의 실체를 짐작해 버린 경험이 있다. 해리성 인격장애를 겪는 주인공이 범인을 보이지 않는 존재를 추적하는 내용의 영화로 결말을 짐작했으니 영화를 보는 내내 긴장감 없이 지루하게 머릿속으로 결론을 끼워 맞추고 있었다. 영화의 소재로 자주 등장하지만 이 질병을 앓는 사람은 흔하지 않다. 그러나 우리가 다중인격에 대해 관심을 갖는 것은 자아에 대한 관심 때문이다. 흔히 정체성이라는 말을 즐겨 사용하지만 철학과 심리학 그리고 뇌과학의 관점에서 자아란 무엇인지 명쾌하게 설명하지 못한다. 도대체 자아란 무엇이며 나 자신은 어떤 존재인가.

 

영국의 철학자 줄리언 바지니는 전작 유쾌한 딜레마 여행으로 처음 만났다. 쉽고 재미있는 글이 인상적이었던 줄리언의 신작 자아 트릭은 그의 전공 분야에 해당한다. ‘개인적 정체성으로 학위를 받았으니 이 책은 그의 관심 분야이기도 할 터이고 그간 여러 권의 책을 쓰면서 쌓인 내공도 살펴볼 수 있는 책이다. 제목 그대로 우리가 알고 있는 자아는 수많은 트릭을 사용하고 있으며 우리는 자아라는 트릭 속에 갇혀 그것을 오해하고 있다. 막연한 개념으로만 존재하는 자아에 대해 한번쯤 깊이 고민해 보는 것은 어떤가. 때때로 타인이 아니라 바로 나 자신이 궁금하지 않은가.

 

자아란 무엇이며 자아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그리고 미래의 자아는 어떨까에 대한 고민을 풀어낸 이 책은 단순히 철학적 관점으로 인간의 사유 방식을 점검하고 분석하는 책이 아니라 실제 생활에서 접할 수 있는 사례를 중심으로 심리학과 신경과학을 동원하고 있어 다양하고 즐거운 뷔페를 즐길 수 있다. 우리가 책을 읽는 목적은 다양하다. 목적과 방법에 따라 한 권의 책은 전혀 다른 모습으로 내게 다가오고 그 결과 또한 천양지차다. 마치 사람을 대하는 목적과 방법에 따라 그 관계와 양상이 달라지는 것과 비슷하다. 실용적 목적으로 가볍게 접근할 수 있는 책과 달리 인문학 분야의 책들은 대부분 깊은 사유와 다양한 관점이 필요하다. 그것은 자신만의 빛깔과 향기로 다가와 내적 성숙을 이루어 또 다른 자아를 만들어 내기 때문이다.

 

그러한 과정을 통해 우리는 변화된 자아를 확인하고 때때로 나 자신에 대해 의문을 갖게 되며 그런 의문을 갖는 자신조차 예전의 자아와 달라졌음을 확인한다. 끊임없이 생성되고 소멸되는 체세포만큼이나 인간의 생각도 변화한다. 육체적 존재는 물론이고 영혼마저 과거의 와 다른 존재라면 나 자신은 무엇이며 어떻게 말할 수 있을까. 줄리언 바지니는 육체와 자아와의 관계 그리고 뇌와 자아의 관계를 통해 자아를 규명한다. 그것은 기억과 영혼의 문제로 귀결되지만 다중 자아, 사회적 자아로 나아가면 문제는 복잡해진다. 왜냐하면 자아는 끊임없이 속임수(트릭)를 쓰기 때문이다. 그래서 작가는 세 가지 명제를 제시한다. 첫째, 자아의 통일성은 심리적 속임수가 만든 결과물이다. 둘째, 우리는 물질에 불과하지만 단순한 물질 이상이다. 셋째, 속성 자체가 변하기에 정체성은 중요하지 않다.

 

결국 자아는 뚜렷한 실체도 정체도 알 수 없는 어떤 묶음, 가상의 덩어리에 불과하며 끊임없이 변하는 속성을 지닌다. 작가는 3부 미래의 자아에서 사후의 생이나 자아의 디스토피아아를 우려한다. 우리는 생각하는 생존기계에 불과한지도 모른다. 스스로 믿는 자유의지라는 것이 과연 어디에서 기인한 것인지 가만히 생각해 보자.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만 자아 정체성을 확인할 수밖에 없다는 자아 인식은 또 어떤가.

 

하이데거는 삶이 결국 죽음을 향해 달려가는 과정에 불과하다고 했지만 여전히 우리는 나 자신이 누구인지 묻고 있다. ‘자아라고 명명된 보이지 않는 실체에 대한 호기심은 나의 레종 데트르(Raison D’etre)에 대한 본질적인 질문이다. 삶의 목적과 방향이 흐릿할 때마다 나의 의지와 무관하게 관계가 틀어지고 생이 힘겨울 때마다 우리는 자신을 돌아본다. 그 오래된 질문들은 죽음을 향해 달려가는 내내 계속 될 것이다.

 

카를 마르크스(Karl Marx)의 말을 살짝 바꿔보자. 지금까지 철학자들은 자아를 해석만 해왔다. 이제 문제의 핵심은, 만약 한다고 하면, 과연 어떻게 자아를 변화시킬 것인가이다.(“지금까지 철학자들은 세계를 다양하게 해석하려고만 했다. 이제 중요한 것은 세계를 변화시키는 일이다.” 마르크스의 <포이어바흐에 대한 테제(Thesen uber Feuerbach)>에 나오는 구절이다.) - 299

 

 

120429-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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