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를 여는 역사 - 한중일이 함께 만든 동아시아 3국의 근현대사
한중일3국공동역사편찬위원회 지음 / 한겨레출판 / 2005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송신도 할머니는 열여덟 살 때 전장에 끌려가 위안부가 되었다. 몸과 마음에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안고 살아온 할머니는 일본 정부를 대상으로 소송을 제기했지만 기각된다. 1심과 2심은 물론 상고심에서도 패소한 후 결과보고회 자리에서 나의 마음은 지지 않았다고 외친다. 안해룡 감독의 다큐멘터리 <나의 마음은 지지 않았다>에는 현재 진행형인 한일 양국의 고통스런 과거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일본 대사관 건너편 인도에는 단정한 한복을 입은 무표정한 얼굴의 단발머리 소녀가 앉아 있다. 이 소녀는 수요일마다 열리는 정신대 항의 집회 1000회를 기리며 20111214일에 세운 위안부 평화비로 여전히 끝나지 않은 역사의 상처와 고통을 말해주고 있다. 송신도 할머니와 같은 피해자뿐만 아니라 가해자인 일본인들에게도 위안부 문제는 불편한 진실로 남아 있다.

 

역사를 인식하는 방법과 태도는 사람마다 다를 수 있으며 국가의 입장은 말할 필요도 없다. 자국의 이익을 위해서 전쟁을 일으키고 도저히 상상할 수도 없는 만행을 저지르기도 한다. 역사는 언제나 현재를 돌아보는 거울이며 미래를 살필 수 있는 바탕이 된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송신도 할머니가 일본에게 공식적인 사죄를 요구하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독도 문제를 비롯해 일본이 한국을 대하는 태도는 쉽게 변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우리 입장만 생각하고 일시적으로 흥분하거나 화를 낸다고 해서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이웃 국가들과 서로 밀접한 관계를 맺으며 살아왔고 앞으로도 그럴 수밖에 없는 현실을 생각하면 우리는 동아시아의 역사를 진지하고 깊이 있게 살펴봐야 한다. 일본뿐만 아니라 중국도 2002년부터 동북공정프로젝트를 통해 고구려와 발해를 자국의 역사로 편입하는 등 역사 왜곡을 시도하고 있어 문제는 동아시아 문제는 생각보다 복잡하게 얽혀있다.

 

그러나 현실은 조금 다른 모습이다. 최근 한류(韓流)’ 바람을 타고 한국 드라마와 가수들의 해외 진출이 활발해졌다. 일본에서는 혐한류(嫌韓流)’로 민족주의를 자극하는 시위가 벌어지는 등 주목할 만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오늘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정서와 태도에는 그만큼 역사를 바탕으로 한 뿌리 깊은 상처가 남아 있다는 뜻이다. 따라서 현재 우리의 모습을 확인하고 미래를 준비하기 위해서는 대한민국의 지정학적 위치와 역사를 알아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동아시아의 역사는 우리들의 과거이며 현재이고 우리가 만들어가야 할 미래이다.

 

동아시아 3국의 근현대사를 담은 미래를 여는 역사는 한중일의 역사가들이 함께 만들었다. 과거 세 나라의 역사가 모두 불행했던 것만은 아니다. 서로 교류하며 영향을 주고받았고 함께 발전해온 시간이 더 많았기 때문이다. 한중일 3국은 공동 역사편찬위원회를 만들어 서로 다른 역사가 아니라 공통된 역사를 자라나는 세대에게 가르치려는 목적으로 한 자리에 모인 것이다. 3국의 역사뿐만 아니라 각장마다 각국의 교과서를 비교해 놓은 것이 이 책의 특징이다. 또한 이 책은 19세기 중엽 이후 침략과 전쟁으로 얼룩진 역사를 반성함으로써 인권과 민주주의가 보장되는 평화로운 동아시아의 미래를 지향하기 위한 최초의 공동 역사 교재라는 의미가 있다. 이 책을 통해 서로 다른 역사적 사실에 대한 해석과 왜곡을 넘어 객관적인 사실을 확인하고 그것을 대하는 태도와 방법은 어떤 차이가 있는지 확인해 보자.

 

고등학교에 개설된 역사 교과 <동아시아사>는 주로 고대와 중세 역사에 집중되어 있다. 하지만 이 책은 근현대사를 중심으로 삼국의 관계를 살펴본다. 개항과 근대화, 일본 제국주의의 확장과 저항 그리고 침략전쟁과 민중의 피해, 2차 세계 대전 이후 근현대사까지 꼼꼼하게 살펴보고 있다. 지난 시간을 통해 교훈을 얻고 현실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역사가 우리에게 주는 가장 큰 선물을 잘 활용하는 방법이다. 아놀드 토인비는 과거의 역사에서 아무런 교훈도 얻지 못하는 인간의 어리석음을 지적한 바 있다. 결국 역사는 과거를 교훈삼아 보다 나은 미래를 만들기 위해 필요한 과정으로서 의미를 갖는다.

 

기억을 타자와 이야기하고 공유함으로써 비로소 잘못된 기억을 고치고 왜곡된 것을 바로잡아 역사를 계속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은 아닐까.’라는 아사히신문 전 편집국장의 말은 동아시아를 만든 열 가지 사건의 내용을 단적으로 드러낸다. 2005년 봄 한국과 중국에서 교과서, 위안부, 야스꾸니 문제로 대규모 반일시위가 벌어졌다. 당사국인 일본의 아시히신문사는 이 문제를 심층적으로 취재했다. 일본의 2090%가 전범재판이었던 토오꾜오 재판의 내용을 모른다라고 대답한 충격적인 여론조사 결과는 이 취재의 바탕이 되었다. 한국과 중국 그리고 대만을 오가며 일본인의 눈으로 살펴보는 동아시아는 어떨까. 아편전쟁과 메이지유신부터 중일전쟁, 한국전쟁과 베트남 전쟁, 국교정상화 등 동아시아의 역사를 이해할 수 있는 열 가지 사건을 중심으로 각국의 자료를 찾고 전문가를 직접 인터뷰한 내용들을 담아냈다. 이 책은 기사가 보여줄 수 있는 생동감과 현장감이 돋보여 살아 있는 현재의 관점으로 동아시아의 역사를 다양하게 조망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키워드로 읽는 동아시아는 역사학 교수, 언론인 등 동아시아에 관한 30여명의 전문가가 참여한 책이다. 동아시아에 대한 다양한 주제로 짧은 글들이 연속적으로 이어진다. 안중근, 소현, 한류, 무라카미 하루키, 매란방, 류사오보, 유니클로, 대지진, 이주노동자, 쌀국수, 두리안 등 한중일 3국의 이야기를 넘어 동남아시아에 대한 이야기가 균형을 이루고 있어 보다 다양한 관점에서 동아시아를 살펴 볼 수 있다. 단순한 역사를 넘어 현재 벌어지고 있는 문화 현상까지 들여다 볼 수 있기 때문에 가장 현실적인 느낌으로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책이다.

 

물리적으로 가장 가까운 나라 중국과 일본은 어쩌면 심리적으로 가장 먼 나라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우리는 그들 나라를 외면하고 살수 없다. 더불어 함께 사는 지혜는 사람과 사람 뿐만 아니라 국가간에도 적용되는 상생의 지혜이다. 멀고도 가까운 동아시아 각국의 역사가 곧 우리의 역사이며 내 삶의 미래를 고민하기 위한 수단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120423-035~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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