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일드 펀치 - 제5회 창비장편소설상 수상작
기준영 지음 / 창비 / 201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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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읽은 두 권의 소설이 머릿속에서 엉키는 이유가 무엇일까. 며칠 동안 곰곰이 생각해 보았지만 가족이라는 소재의 공통성을 찾는 것으로는 만족스럽지 않다. 5회 창비 장편소설상 수상작인 기준영의 와일드 펀치와 제5회 창비 청소년문학상 수상작인 김이윤의 두려움에게 인사하는 법은 비슷한 시기에 출간되어 순서대로 읽게 되었다. 읽는 순서와 시간에 따라서도 소설은 전혀 다른 느낌으로 다가오고 서로 다른 말을 건넨다. 성인 소설인 와일드 펀치와 청소년 소설인 두려움에게 인사하는 법은 서로 다른 목소리를 내면서도 중첩되는 부분도 있다.

 

가족은 단순한 혈연 공동체가 아니다. 말로는 설명하기 힘든 내밀한 관계를 의미하는 것이 전통적인 가족의 개념이다. 이 관계는 천륜(天倫)이라는 유교적 도덕적 실천 윤리를 의미하는 것이며 사회를 지탱하는 최소단위의 사회구성체를 지칭하는 말이다. 근대 이후 전통적인 대가족 제도가 해체되고 가족의 양상도 다양하게 변화했지만 부모와 자녀로 구성되는 기본 단위와 그 의미는 유지되고 있다. 비혼 가구가 급격히 증가하면서 미래 사회의 가족은 어떻게 달라질 수 있을지 주목할 필요가 있다. 뿐만 아니라 이혼, 사별 등의 이유로 한부모 가정이 증가하고 재혼이나 다문화 가정도 늘고 있다. 눈에 보이는 가족의 형태는 대가족에서 핵가족으로 그리고 1인 가구와 다양한 형태의 가족 형태로 그 변화양상이 뚜렷하다. 하지만 본질적인 가족의 의미는 달라지지 않는다. 도대체 가족이란 무엇이며 어떠해야 하는 것일까.

 

레몬과 설탕 등 다섯 가지 이상의 음료를 섞은 펀치라는 음료와 권투 선수의 한방을 떠올리는 펀치가 동시에 연상되는 기준영 소설의 제목은 와일드하다. 하지만 소설의 내용과 의미는 마일드하다. 강수와 현자의 집에 강수의 후배 태경과 현자의 의자매 미라가 들어온다. 정가족의 의미를 묻기 전에 삶의 형식을 고민하는 것이 소설의 본질이라면 이 소설의 인물들은 그 문법에 충실하다. 저마다 가진 과거의 상처가 현재의 삶을 삐걱이게 하며 서로의 관계를 통해 그것을 확인하고 위로하며 살아간다. 그러나 그러한 관계만으로 인간의 본질적인 솔리튜드solitude는 극복되지 않는다. 어떤 소설이든 마찬가지겠으나 그 관계의 양상을 들여다보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작가는 그 거리를 가늠하고 사람과 사람 사이에 건널 수 없는 강이 흐른다는 사실을 아프게 확인시켜 준다.

 

김이윤은 두려움에게 인사하는 법을 통해 상실의 아픔을 이야기하지 않는다. 아버지가 누구인지도 모른 채 자란 여여는 사진작가의 어머니가 암에 걸려 세상을 떠날 때까지 혼자 살게 된다. 아버지를 찾고 사랑에 빠지고 어머니의 삶을 들여다보는 동안 여여는 혼자라는 사실보다 더 지독한 삶의 비밀을 발견하게 된다. 어머니의 부재와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보다 본질적인 고독이 무엇인지 깨닫는 과정이 성장의 아픔이 아닌가. 드라마의 대본처럼 편안하게 읽히면서도 십대 소녀의 내면을 적확하게 묘사하고 있는 작가의 솜씨가 탁월한 소설이다. 이 책은 사랑하는 사람과의 이별이든 부모의 죽음이든 삶은 만남과 이별의 연속이라는 단순한 진리를 확인하는 평범하지만 독특한 소재를 다루고 있다.

 

두 작품은 표면적으로 가족의 의미를 묻고 있는 것 같다. 혈연관계가 아니어도 가족이 될 수 있고 더 내밀한 관계가 형성될 수 있지만 타인이 걸어온 길과 삶의 흔적들을 오롯이 이해할 수는 없다. 강수와 현자, 태경과 미라 그리고 우영이 그러하고 여여와 시리우스, 엄마와 서이사가 그러하다.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묶이느냐 그렇지 않느냐의 문제보다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타인에 대한 이해와 심리적 거리가 아닐까. 삶에 대한 진지한 성찰과 구체적인 방법에 대한 고민이 아닐까.

 

방문객

 

사람이 온다는 건

실은 어마어마한 일이다.

그는

그의 과거와

현재와

그리고

그의 미래와 함께 오기 때문이다.

한 사람의 일생이 오기 때문이다.

부서지기 쉬운

그래서 부서지기도 했을

마음이 오는 것이다---그 갈피를

아마 바람은 더듬어볼 수 있을

마음.

내 마음이 그런 바람을 흉내낸다면

필경 환대가 될 것이다.

- 정현종, 광휘의 속삭임(문학과지성사, 2008) 중에서

 

데블스 푸드 케이크를 정성스레 만들어 줄 가족이 있다는 건 얼마나 큰 행복인가. 하지만 오래 고민하고 준비해서 만든 음식을 5분 만에 먹어치운 가족들의 만족감과 달리 만든 사람의 말할 수 없는 아쉬움 같은 느낌을 떠올려 보자. 한 사람이 온다는 건 실은 어마어마한 일지만 그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까지도 잃어버릴 준비가 되어 있는지 스스로 묻지 않는다면 방문객은 잠시 머무를 뿐이다. 비극적인 세계 인식이 삶의 비의를 벗어나는 방법은 아니겠지만 어느 누구도 영원히 함께 할 수 없다는 전제를 받아들인다면 삶은 죽음을 향해 달려갈 뿐이라는 하이데거의 말에 공감할 수도 있지 않을까 싶다.

 

그 상실의 대상이 가족이든 아니든 타인에게 받는 상처를 극복하는 것은 또 다른 관계에서 오는 위로가 아니라 본질적으로 스스로에 대한 환대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 와일드하게 펀치를 날리는 인생에게 웃어주는 법과 두려움에게 인사하는 법을 알게 되는 것은 두 권의 소설을 통해서가 아니라 바로 내 곁에서 나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눈빛 속에서이다.

 

120422-033~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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