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ook] 일곱 개의 고양이 눈
최제훈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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짐승의 피를 묻힌 검을 얼음 위에 꽂아두고 기다리는 거예요. 피 냄새를 맡고 다가온 늑대가 칼날에 묻은 피를 핥아 먹습니다. 그러다가 제 혀를 베여 피를 흘리죠. 하지만 차가운 금속에 이미 혀의 감각이 마비된 늑대는 그 사실을 알지 못합니다. 칼날에 계속 묻어나는 자신의 피를 핥아 먹고, 그것을 핥느라 또 피를 흘리고, 또 핥아 먹고……그러다가 쓰러져 죽는 겁니다. 저도 빙판에 꽂힌 칼날 같은 기억 한 조각을 핥다가 제 피인 줄도 모르고 흐르는 피를 핥고 또 핥다가 마침내 쓰러졌습니다. - 113

 

술이 깰 만하면 다시 술을 마시고 담배를 피우고 마지막에 그 담배로 다음 담배에 불을 이어 붙이듯 책을 읽다보면 전혀 무관한 분야의 책에서 같은 책을 인용한 것을 발견하거나 유사한 이야기를 예로 드는 경우를 발견하는 놀라운 경험을 하게 된다. 에스키모의 늑대 사냥이 그랬다. 그 우연이 반복되고 미세한 차이가 발견되면 그것은 필연이 되거나 결정적인 운명이 되기도 한다.

 

예를 들어 리얼리스트가 아닌 시인은 시인이 아니다. 하지만 리얼리스트이기만 한 시인도 시인이 아니라고 말한 네루다의 이야기를 김용규의 철학카페에서 시읽기에서 읽고 얼마 후 이시영 시인의 강연에서 그 말을 인용하는 것을 듣게 되는 경우가 그러하다. 맥락에 따라 텍스트는 얼마든지 다르게 해석된다. 텍스트의 의미는 컨텍스트가 규정하는 법이니까. 하지만 서로 다른 상황의 유사한 텍스트들이 만들어내는 울림은 강렬하다.

 

최제훈의 일곱 개의 고양이 눈을 읽다가 말하자면 수없이 기시감에 시달렸다는 것이다. 그러나 유사성에 기초한 지루함과는 사뭇 다른 느낌이고 불안한 긴장감이라고 할 수도 없다. 미스테리 소설이 가진 두근거림과 불안정한 긴장이 뒤섞여 독특한 개성을 마음껏 드러낸다. 처음 읽는 최제훈의 소설이지만 주목할 만한 작가와의 만남이었다는 생각이 들기에 충분한 소설이다.

 

영화의 한 장면처럼 산장에 여섯 명의 인터넷 카페 회원들이 초대된다. 첫 만남이고 각양각색의 나이와 직업을 가지고 있지만 연쇄살인범에 대한 해박한 지식을 가진 이들의 만남은 평범하게 시작된다. 이들을 초대한 주인만 나타나지 않은 채.

 

해설을 쓴 정여울의 말대로 스포일러가 하나도 없는 서평을 쓸 수 있을까 싶은 생각이 떠오를 만한 소설이라는 사실을 인정한다. 최제훈도 마찬가지가 아니었을까. 종류만 다를 뿐 영원히 풀 수 없는 미스테리, 무한 반복되는 스토리를 만들고 싶었던 건 아니었을까. 아니면 세상에서 가장 완벽한 이야기를 욕망했을까.

 

집에 돌아와 문을 열었을 때

어둠 속에서 일곱 개의 고양이 눈을 보았네

내가 키우는 새끼 고양이는 세 마리뿐인데

하얀 고양이, 까만 고양이, 얼룩 고양이

나는 차마 불을 켜지 못했네

 

그 하나의 눈동자를 찾기 위한 소설을 읽는 재미를 스포일러 없이 말하기는 쉽지 않다. ‘여섯번째 꿈’, ‘복수의 공식’, ‘π’, ‘일곱 개의 고양이 눈등 네 편의 중편이면서 하나의 장편으로 구성된 소설이다. 각 중편들의 내용이 겹치고 스미고 가로질러 평면이 아닌 입체를 만들어 낸다. 각각의 중편으로 독립성을 유지하면서 서로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는 재미있는 소설이다. 최제훈이 무엇을 의도했던 각각의 중편이 어떤 내용이든 독자들에게는 신선한 즐거움을 준다. 마치 스릴러 영화를 본 후의 아쉬움이 다른 중편에서 아주 조금 해소되기도 하고 그 만족감은 또 다른 미스테리로 이어진다.

 

유사한 방식의 소설이 없는 것은 아니다. 소설 속의 소설가가 자신의 소설을 이야기하고 또 다시 소설이 이어지기도 하는 등 창조적 상상력이 얼마든지 발휘될 수 있는 문학의 매력은 다양할수록 좋은 일 아닌가. 전통적인 의미의 소설에서 벗어난 장르 소설들이 나름의 매니아들을 거느리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최제훈의 소설이 해리포터나 본격 미스테리를 표방한 소설과 구별되는 지점은 단순한 스토리 위주의 소설이 아니라는 데 있다. 탄탄한 구성은 말할 것도 없고 표현과 문장이 뛰어나다. 작가의 땀이 손에 잡히는 소설에 환호하지 않을 독자는 없다. 더구나 이 소설을 읽는 또 하나의 즐거움은 각 중편마다 QR코드가 붙어 있어 최정우의 음악을 들을 수 있다는 데 있다. 소설을 위해 작곡과 연주가 함께 하니 듣는 즐거움과 읽는 즐거움이 배가 된다.

 

폐쇄된 미로에 갇힌 사람은,

얼마나 헤매어야 그 미로가 폐쇄되어 있다는 걸 알게 될까? -179

 

출구를 위해 미로가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영원히 풀 수 없는 엉킨 실타래만큼 폐쇄된 미로는 끔찍하다. 그것이 우리 삶의 알레고리가 아닌 한 희망 고문은 희망이 없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절망만큼 고통스럽지는 않을 것이다. 작가는 자신의 이야기를 미로에 가두기보다 여러 군데의 출구를 마련해도 좋지 않을까. 완벽한 미스테리보다 다양하게 해석되는 텍스트가 매력적인 이유가 여기 있는 것이다. 영화 <메멘토><인셉션>처럼 기억할 수 없는 것과 꿈 속의 꿈 같은 현실은 보는 즐거움과 읽는 재미만으로 채워지지 않는다. 금 더 내밀한 고통과 깊은 한숨까지 품은 최제훈의 다음 작품을 기다려 본다.

 

120229-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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