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카페에서 시 읽기
김용규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1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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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 리쾨르가 갈파했듯이, 하나의 작품을 해석한다는 것은 그것을 통해 자신의 새로운 존재가능성을 찾는 일입니다. ‘텍스트 앞에서의 자기 이해를 얻는 것이지요. 그것은 텍스트를 향해 자신의 고유하고 한정된 이해 능력을 주입시키는 것이 아니라, 텍스트 앞에 겸허히 나서는 일입니다. 그럼으로써 텍스트에서 더 넓어진 자기를 얻는 것입니다. - 10

 

영화 <일 포스티노>를 본 적이 있는가. 햇빛에 반짝이는 감청색 바다와 수평선, 살아 숨 쉬는 사람들의 냄새가 물씬 풍기는 어촌, 밤바다의 별똥별과 부서지는 파도……. 영상매체가 주는 감동은 문자 언어와 사뭇 다르다. 세계적인 시인 파블로 네루다를 주인공으로 삼은 것이 아니라 그의 전용 우체부 마리오가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칠레 출신 작가의 소설 네루다의 우편배달부를 영화화 한 작품이지만 배우들의 연기와 아름다운 자연이 만들어내는 영상이 환상적이었다.

 

이 바닷가에 사는 청년 마리오는 시인을 만나 은유를 배우게 된다. 그리고 시를 가슴에 품게 되고 아름다운 여인과 사랑에 빠지게 된다. 시는 힘이 세다. 이 영화는 결국 네루다도 마리오도 아닌 가 주인공인 셈이다. 우리는 왜 시를 읽어야 하며 어떤 시를 읽어야 하는 것일까? 학창시절에 배운 밑줄 쫙~’이나 참고서의 깨알 같은 해석이 우리를 시에서 멀어지게 한 것은 아닐까. 시를 읽지 않고 도대체 무슨 책을 읽는다는 말인가.

 

라고 철학자 김용규는 말한다. 철학카페에서 문학읽기의 연작으로 보이는 제목의 철학카페에서 시읽기한국의 움베르토 에코라는 수식이 지나치지 않다는 생각을 갖게 한다. 읽어보지는 못했지만 알도와 떠도는 사원, 다니를 통해 그런 명성을 얻었다고 하지만 철학적 사유의 깊이를 전달하는 문학을 통해 독자들을 사로잡지 않더라도 설득의 논리학이나 영화관 옆 철학카페등으로 이미 대중과의 소통을 지속해 온 저자의 신작은 이름만으로도 믿고 읽을 만하다.

 

최근 거센 바람을 일으키는 강신주의 철학적 시읽기의 즐거움과 비교하며 읽는다면 또 다른 재미를 느낄 수 있는 책이다. 비교가 능사는 아니나 각각의 빛깔과 특징이 뚜렷한 철학자들의 대중과의 만남은 지속되어야 한다. 그리고 그 깊이와 넓이를 통해 다양한 방식의 문화읽기가 가능해진다고 믿는다. 철학은 할 일이 많고 나름의 영역을 확보한 철학자는 많지 않다. 게다가 글쓰기 능력을 겸비한, 대중적인 철학자와 동 시대를 살아간다는 것은 우리에게 행운이라고 말하고 싶다.

 

철학카페에서 시읽기는 두 가지 측면에서 재미있다. 하나는 저자의 스토리텔링 능력이다. 하나의 주제를 편안하게 풀어내고 소리 없이 밀고 나가는 힘은 자연스럽게 넘어가는 책장의 속도로 감지된다. 이유를 알 수 없이 재미있게 빠져들었다면 그 능력은 증명되는 셈이다. 또 하나는 시에 대한 애정과 시를 해석하는 깊이다. 철학적 관점에서 시를 읽는다는 것은 단순히 생각하면 이성과 논리를 바탕으로 분석주의 관점으로 이해하기 쉽다. 하지만 김용규는 가슴으로 받아들인 시를 친절하고도 애정어린 시선으로 바라본다. 철학과 시의 만남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어떤 철학자가 시를 어떻게 읽어내느냐가 문제다. 이 책은 그 질문에 답할 수 있는 책이다.

 

베아트리스를 온통 뒤흔들어 마리오를 사랑하게 만든 시의 기본적인 힘은 메타포(은유)’. 봄날, 서점에서 시집을 안 사면 뭘 사느냐고 묻는 김용규의 목소리에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는 이유는 이 책에 자세히 설명되어 있다. 편안한 마음으로 시의 즐거움을 맛보고 싶은 독자에게 맞춤한 이 책은 저자의 바람대로 젊은이여, 시를 읽자고 외치지 않았으면 좋겠다.

 

최승자의 청파동을 기억하는가에서부터 정호승의 외로우니까 사람이다를 거쳐 신경림의 을 지나 진은영의 ‘70년대과 오규원의 가끔은 주목받는 생이고 싶다에 이른다. 김수영을 비롯해 김혜순, 정현종, 강은교, 마종기의 시에 이르기까지 한국 현대시의 대표적인 시인들의 시를 통해 에리히 프롬부터 들뢰즈까지 수많은 철학자를 만나게 되는 책이다. 마치 화려한 백화점에 진열해 놓은 명품들만 모아 놓아 눈이 부실 정도다. 자칫 시적 허영(이런 말이 성립될지 모르겠으나)에 들뜬 사람들에게는 더 없는 성찬이 될 것이다. 기막힌 뷔페에서 여유있게 즐기는 만찬을 누가 마다하겠는가.

 

하지만 이 책은 수동적으로 남이 읽어주는 시를 즐기는 데 그쳐서는 안 된다. 궁극적으로 스스로 시를 읽는 즐거움을 맛볼 수 있어야 한다. 당연한 말이겠지만 평생 시심 가득한, 메타포를 가지고 놀 수 있는 삶이 된다면 저자가 이 책을 쓴 목적은 충분히 이루어졌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문학은 슬픔의 미학이다. 기쁘고 행복할 때 시집을 들고 눈물을 흘리는 사람은 없다. 슬프고 외로울 때 삶의 목적과 방향을 잃었을 때 수천 년간 고민해 온 철학자들의 고민만큼이나 시인은 우리에게 다양한 삶의 문제들을 풀어놓고 타인과의 관계, 사물의 본질, 사회의 모순을 이야기한다. 언어가 만들어내는 이미지의 세계, 리듬이 전해주는 보이지 않는 울림까지 읽고 느끼고 즐길 수 있는 독자가 되는 것은 우리들의 몫이다.

 

시는 우리의 삶과 세계를 새롭게 바꿔놓는 위대한 일을 수행합니다. - 53

 

120214-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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