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의 교실
오가와 히토시 지음, 안소현 옮김 / 파이카 / 2011년 4월
평점 :
절판


니콜 키드먼의 <래빗 홀>과 브래드 피트의 <트리 오브 라이프>를 보면서 말할 수 없는 생의 불가해함을 읽어내야 했던 것일까. 아니면 자식을 먼저 보낸 부모의 마음을 헤아려 봐야 하는 것일까. 그것도 아니면 기독교적 세계관으로도 해결하지 못하는 슬픔에 대한 분노와 허무를 생각해야 하는 것일까. 이창동의 <밀양>과 또 다른 관점에서 두 편의 영화를 들여다보면 사람마다 다른 생각을 하게 될 것 같다. <웰컴 투 마이 하트>는 그 슬픔에 대한 미국식 해법과 위로를 보여준다. 네 편의 영화는 단순히 자식을 먼저 보낸 부모의 관점이 아니라 죽음에 초점을 맞출 필요가 있다. 고대 그리스 철학자 플라톤은 철학은 죽음을 연습하는 행위라고 한 말을 기억한다면 누군가의 죽음은 철학의 시작이다. 그것이 생물학적 죽음이든 <자전거 탄 소년>의 시릴처럼 이별과 부재로 상징되는 존재론적 죽음이든 말이다.

 

오가와 히토시는 철학의 교실에서 죽은 철학자들을 교실로 호출한다. 고등학교 2학년 학생 3명과 30대 미혼 직장인 그리고 40대 초반 주부에게 철학을 이야기하는 철학자를 생각해 보자. 첫 시간에 등장하는 하이데거. ‘죽음을 통해 자신의 철학이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 그 핵심을 설명한다. 청중은 고교생과 직장인과 주부이기 때문에 일반적인 독자 수준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이런 형식을 갖춘 책이라면 난이도와 깊이가 충분히 이해가 될 것이다. 아주 쉽고 간단하게 중요한 철학자들의 사상을 접할 수 있다. 마지막 열 네 번째 시간에는 저자인 오가와 선생인 등장한다. 전체 열 네 개의 강좌로 이루어진 이 책에는 헤겔, 칸트, 퐁티, 레비나스, 아렌트, 롤스, 플라톤, 알랭, 푸코, 마르크스, 사르트르, 니체가 등장한다.

 

이들이 무작위로 호출당한 것은 아니다. 철학은 현실과 동떨어진 곳에 홀로 존재하지 않는다. 철학자들은 철학교실에서 을 이야기하고 사회를 설명하며 타인과의 관계를 말한다. 영화 <웰컴 투 마이 하트>에서 말로리는 더그에게 전화를 걸어 우리에게 아직 희망이 있는 거냐고 묻는다. 그것은 질문이 아니라 스스로에 대한 다짐이다. 하이데거는 첫 시간에 마지막 순간까지 희망을 놓지 않는 것, 그것이 삶입니다.’라고 말한다. 삶은 죽음에 대한 정확한 인식에서 시작된다. ‘을 이야기하는 헤겔, ‘이성과 욕망을 이야기하는 칸트, ‘고민을 이야기하는 메를로 퐁티……. 한 시간에 하나의 주제에 집중하며 그들의 주장을 간략하게 도식화 시켜놓은 메모는 독자의 이해를 도울 뿐만 아니라 관념적일 수 있는 철학을 명쾌하게 제시한다. 복잡하고 다양한 사유의 흔적들을 몇마디 개념어와 화살표로 정리하는 것이 자칫 위험할 수도 있지만 철학이 막연하게 어렵거나 두렵다고 느끼는 독자에겐 친절한 안내서가 될 수 있겠다.

 

그렇다고 해서 살을 발라내고 뼈대만 세운 핵심 요약집은 아니다. 간략한 분량이지만 핵심적인 내용과 개념들을 정확하고 명쾌하게 설명하고 있다. 개인적으로 한 권도 읽지 못한 철학자도 있지만 책을 몇 권 읽은 철학자의 강의는 알기 쉽고 간명하게 이야기하고 있다는 사실을 어렵지 않게 확인할 수 있다. 헤겔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개인이 자유를 누리지 못하는 세상이라면, 국가가 제 역할을 못 하고 있는 것이겠죠. 그래서 국가는 늘 국민이 이상을 실현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 55

 

이 책이 장점 중 하나는 저자의 목소리가 배제된 채 철학자들의 이야기를 직접 듣는 형식을 취하고 있다는 점이다. 가상공간이지만 교실에 둘러앉아 철학자의 이야기를 직접 듣는 느낌이다. 딱딱한 교실이 아니라 철학 카페로 설정했다면 조금 더 분위기가 부드러워졌겠지만 어쨌든 일방적인 강의가 아니라 중간 중간 등장인물들과의 대화가 이어진다. 고교생 다운 질문과 영화를 좋아하는 이사무의 이야기가 생기를 불어넣는다. 일장적인 강의가 아니라 편안한 대화로 진행되기 때문에 그 자리에 앉아 토론 수업을 하는 기분이 든다.

 

평범한 일상에서 우리는 문득문득 라는 질문을 한다. 반복되는 생활, 지루한 업무, 하기 싫은 일들 속에서 우리는 의미를 찾기도 한다. 차 한 잔을 앞에 두고 그런지 질문하고, ‘의미를 생각해 볼 수 있게 배려한 저자의 노력이 돋보인다. 플라톤이 들려주는 연애이야기, 니체의 인생이야기를 통해 우리들의 삶을 조금 더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그래서 매일 반복되는 노동의 차이를 생각해 볼 수 있고 다른 내일을 기대할 수 있지 않을까.

 

노동은 살아가기 위한 자연적인 활동과 관련이 있습니다. 즉 음식을 만들거나 빨래를 하거나 이른바 생계에 필요한 것을 만들어내는 활동입니다. 이에 비해 일은 비자연적인 활동을 가리킵니다. 일을 통해 만들어내는 것은 도구나 건축물 같은 공작물입니다. - 159

 

그리하여 다람쥐처럼 맹목적으로 쳇바퀴를 굴리는 것이 아니라 언제나 탈주를 꿈꿀 수 있는, 두근거리는 삶을 살아야하지 않을까. 철학자들에게 우리가 배울 수 있는 것은 지식이나 개념이 아니라 바로 이러한 삶의 태도와 구체적인 방법이 아닐까. 러셀이 말했듯이 정답을 찾는 대신 끝없이 질문을 던지면 되지 않을까.

 

프랑스의 현대 사상가 들뢰즈는 탈주를 이야기했습니다. ‘탈주는 기존 질서에 의문을 던지고 그곳에서 일탈해서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는 행위입니다. - 164

 

 

120130-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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