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어떻게 죽고 싶은가? - 첨단 의학 시대에 우리가 알아야 할 죽음의 문화
미하엘 데 리더 지음, 이수영 옮김 / 학고재 / 201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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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과 끝

 

모든 에는 시작이 있을까. 생명의 기원, 우주의 근원, 세상의 시작은 언제 어디에서부터일까. 눈에 보이지도 손에 잡히지도 않는 연속적인 흐름을 분절시켜 놓은 인간의 시간 단위. 만남은 이별을 전제로 하듯 탄생은 죽음을 예비하고 시작은 끝을 맞이한다. 어느덧 시작과 끝이 아니라 끝과 시작이 맞닿는 시간이 되었다. 길이 끝난 곳에서 길은 다시 시작된다. 인위적인 인간의 시간이든 편리에 의한 단위이든 한해는 저물고 새해는 밝는다.

 

무한 반복되는 시간과 달리 생명을 가진 것들은 탄생, 성장, 소멸을 반복한다. 개체는 계통발생을 반복하며 다음 세대에게 유전자를 남긴다. 식물이든 동물이든 그 흔적들이 시간을 견디고 또 변화하며 이전의 흔적들을 지운다. 인간도 마찬가지다. 하루에도 수많은 세포들이 죽고 머리카락이 빠지고 손발톱이 자란다. 말하자면 한 우리의 존재 자체도 매일 매일 사라지고 다시 태어나는 일을 반복하다가 완전히 소멸하게 된다.

 

인간이 만든 모든 사물과 제도도 마찬가지다. 만들어지고 사라지고. 그렇게 이룩한 문명은 세월을 견디고 인류의 문화가 되고 지식으로 축적되고 세상을 변화시킨다. 그 목적과 방향에 대한 무수한 철학적 고민과 무관하게 우리는 오늘을 살고 세계는 존재한다. 시작과 끝은 매 순간 반복되며 그 모든 의 시작은 알 수 없으나 그 은 예정되어 있는 것만 같다. 그러한 무지(無知)의 지()를 얻기 위해 인간은 종교와 철학을 만들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그 모든 세계와 무관하게 한 인간의 탄생은 죽음과 더불어 모든 것을 소멸케 한다. 주체적인 를 확인하고 세계는 인식하는 순간부터 존재하게 된다. 그러므로 세계는 내가 존재하는 순간에만 존재한다는 좁은 의미의 존재론이 가능하다. 이전의 시작과 끝은 무의미하며 내 죽음과 함께 모든 세계는 점등된다.

 

죽음, 존재의 소멸과 또 하나의 세계

 

인간의 죽음은 시대와 문화에 따라 다양한 방식으로 받아들여졌다. 우리는 죽음에 대한 태도와 인식방법, 장례절차와 죽음 이후의 세계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지 않은가. 동양문화에서는 죽음을 터부시하는 오랜 전통에 따라 여전히 삶이 끝나는 순간 죽음이 시작된다는 불연속적 세계관을 가지고 있다. 삶과 죽음이 하나이며 삶의 그림자가 곧 죽음이라는 연속적 세계관을 가진 문화와는 차이가 있기 때문에 우리에게 죽음은 통곡의 대상이며 건너고 싶지 않은 두려움의 강이다.

 

김열규는 메멘토 모리, 죽음을 기억하라에서 한국인에게 죽음은 너무 먼 곳에 있다는 사실을 역사와 문화적 전통을 통해 확인시켜 준다. 또한 최준식의 죽음, 또 하나의 세계한국죽음학회창립 이후 근사체험을 통해 삶과 다른 영역으로서의 죽음에 대해 문화와 종교적 측면에서 접근하고 있다. 다치바나 다카시의 임사체험 (), ()은 세계 각국의 임사 체험자를 면담하여 동서양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통해 사후세계에 대해 실증적으로 접근하고 있다. 이에 비해 독일인 의사 미하엘 데 리더의 우리는 어떻게 죽고 싶은가?는 매우 현실적으로 읽힌다. 앞서 언급한 책들이 시대와 문화 혹은 임사체험자들을 통해 죽음 자체에 대해 성찰하고 있다면 이 책은 살아 있는 사람들이 맞이해야할 죽음에 대해 다루고 있다.

 

생명을 아주 짧은 시간 연장할 수 있다 해도, 1퍼센트의 가능성만 있어도 치료를 하려 드는 것이 의료계의 일상적인 형태다. 그러나 때로는 실낱같은 가능성이라는 미명 아래 엄청난 불행을 안겨준다. - 25

 

30년간 응급의료 전문가로 일하면서 죽음을 맞이하는 방법과 태도에 대해 깊이 고민한 저자의 생각을 들여다 볼 수 있는 문장이며 이 책의 화두가 되는 생각이다. 생명 연장의 꿈은 인간의 본능이다. 살고 싶다는 기본적인 욕망에서 출발하는 의학은 우리에게 좀 더 긴 삶의 시간을 선물한다. 그러나 끝까지 버틸 수 있을 때까지 생명을 연장하는 것만이 옳은 일인가.

 

우리에게는 인간답게 죽을 권리, 고귀한 삶의 연장선에서 품위 있게 죽음을 맞이할 권리가 있는 것이 아닐까. 첨단의학 시대에 살면서 인간의 생명은 그 어느 시대보다도 연장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어떻게죽고 싶은가의 문제는 우리에게 깊은 고민을 남겨 놓았다. 넓은 의미에서는 안락사의 문제까지도 언급되고 있는 이 책은 소극적 안락사에 대한 고민과 일부를 공유한다.

 

정확한 기준을 마련할 수 없으나 소생 불가능한 뇌사, 고통만이 남아있는 치유 불가능한 질병 등 세상에는 오로지 죽음만을 기다리는 수많은 사람들이 있다. 그들이 원하는 것에 대해 귀 기울여야 하는 것은 아닐까. 히포크라테스 선서를 한 의사들이 단 하나의 목적이 생명 연장에만 있는 것은 아니라고 말하는 저자는 우리 사회에서도 충분히 논의해야할 문제들을 제기한다.

 

죽음이란 무엇인가. 의학적으로 심장사와 뇌사의 의미를 살펴보고 우리가 죽음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이 무엇인가에 대해 먼저 숙고해보자. 임종을 앞둔 환자에 대한, 자신의 의사를 표현하지 못하는 환자에 대한 죽음에 대해서도 고민해야 한다. 간병을 받으면서도 비참한 죽음을 맞는 사람들, 통증 치료와 죽음의 문제, 완화의학의 경계 등 죽음에 이르는 과정과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애매한 경계와 논쟁들이 독일 사회를 배경으로 진지하게 설명되어 있는 이 책은 의료복지가 제대로 갖추어진 선진국 의사의 배부른 투정으로 볼 수는 없다. 기초의약품이 없어 하루에도 수백 명씩 죽음을 맞이하는 아프리카의 현실과 동떨어진 이 책은 또 다른 측면에서 우리에게 생각거리를 제공한다.

 

기본적으로 사람들은 인간답게 살다가 품위 있게 죽고 싶어 한다. 하지만 가족의 태도, 의사의 결정, 사회적 제도에 따라 죽음을 앞둔 사람에게 선택권이 없을 수도 있다. 환자와 가족, 의사만 합의한다고 해서 해결될 문제도 아니다. 이 책에서는 풍부한 사례들을 중심으로 다양한 측면에서 사람답게 죽는 방법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고 그것을 해결하기 위한 대책에 대해서도 고민하고 있다. 죽음을 받아들이고 죽음 가꾸고 죽음과 함께 살아가는 태도는 건강한 우리들의 삶을 위해서 더욱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게 하는 책이다.

 

 

20111230-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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