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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과 삶이 만나는 글, 누드 글쓰기
고미숙 외 지음 / 북드라망 / 2011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습관이란 몸이 지닌 리듬과 탄성, 혹은 강밀도다. 거꾸로 말하면 과거부터 이어져 온 욕망과 훈련의 결정체, 그것이 곧 나의 몸이다. - 12쪽
펜과 칼 그리고 혀
The pen is mighter than the sword. 기억도 가물가물한 영문법 책의 예문으로 추측한다. 펜은 칼보다 강하다는 격언은 인간이라는 존재를 육체와 영혼으로 나누어 생각한다는 전제가 깔려있다. 때로는 육체적 고통보다 정신적인 고통을 견딜 수 없다는 말이기도 하다. 영혼을 지배하는 말과 글은 인간이 사용하는 두 가지 종류의 언어다. 그러면 말과 글은 어떻게 다른가. 아니, 어떤 것이 더 치명적인 상처를 낼 수 있을까. 세 치 혀를 함부로 놀리는 일을 경계하고 그 두려움을 아는 사람은 흔치 않다. 그것은 사실과 진실을 구별하지 못하고 팩트와 소문을 분간하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이야기를 즐기는 인간의 본능적 욕구 때문인지도 모른다.
말과 글의 가장 큰 차이는 기록과 상대의 유무일 것이다. 일회적으로 흘러가는 말과 달리 영원히 기록되며 반드시 다른 사람이 있어야 가능한 말과 달리 글은 혼자서도 쓸 수 있다. 그래서 글쓰기는 자신과의 대면을 의미하며 반성과 성찰의 시간이고 자기 고백의 수단이다. 기본적으로 글을 쓰는 동안 내면의 나를 돌아보게 된다. 나의 생각은 무엇이며 내 삶은 어떠했는지 그리고 고통스러웠던 삶의 순간들을 떠올리게 된다. 그것이 글쓰기의 가장 근본적인 목적이 아닐까 싶다.
고미숙과 그의 친구들(?)이 함께 쓴 『누드 글쓰기』는 ‘몸, 삶, 글’이라는 <감이당>의 모토가 그대로 반영된 책이다. ‘수유+너머’에서 독립하여 인문의역학 공부모임이라는 <감이당>의 결과물들이 책으로 나오기 시작했다. 이 책은 사주명리학과 글쓰기의 만남이다. 이름하여 누드 글쓰기라. 알몸을 드러내는 일은 누구에게나 부끄러운 일이다. 그것보다 더 힘든 일은 자신의 내면을 드러내는 일이다. 고미숙, 김동철, 류시운, 손영달, 수경, 안도균은 사주팔자를 들여다본다. 사람이 태어난 연월일시는 음양오행과 더불어 인간의 몸과 기질의 특성을 결정짓는다. 미래를 점치는 일도 아니고 미신이라 할 수도 없는 사주팔자. 과연 믿을 만한 것인가. 그리고 그것은 얼마나 우리들의 삶에 영향을 미치는가. 그리고 그것을 들여다보는데 글쓰기는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는가.
새삼스러운 말이지만, 독서의 최종목표는 글쓰기다. 책을 읽는 건 삶의 길을 찾는 탐색이다. 그 ‘길찾기’는 반드시 자신의 언어로 표현되어야 한다. 그런 점에서 글쓰기란 존재의 가장 기본적인 표현형식에 속한다. 읽기와 쓰기가 하나로 이어져 있는 이 순환의 사이클이 바로 ‘책의 매트릭스’인 것. - 23쪽
사주팔자와 글쓰기
자신이 태어난 연월일시가 네 개의 기둥이며 그에 해당하는 여덟 글자. 그 중에서도 일(日)에 해당하는 간지 중에서 천간에 해당하는 글자가 주인이다. 심심풀이로라도 운세나 토정비결을 본 적이 없었지만 이 책을 보면서 내 사주를 확인해 보았다. 중심글자는 신辛. 음양오행에 따르면 신辛은 음陰에 해당하는 금金이다.
신금辛金(陰)
날카롭고 예리한 금속이나 보석을 상징한다. 침착하고 예리한 판단력과 논리적인 언어능력을 가지고 있으며 일을 깔끔하고 명확하게 마무리한다. 그러나 그런 만큼 예민하고 자기중심적이며 냉소적인 면이 있다. 타인은 물론 자기 자신에 대해서도 실수를 용납 못할 정도로 엄격한 내면의 잣대가 있다.
여기까지 찾아보다가 덮고 말았다. 아직 누드 글쓰기를 할 준비가 되지 않았기 때문인가 보다. 하지만 손영달, 김동철, 수경, 류시성은 사주팔자를 풀어놓고 자신의 삶을 ‘쓴다’ 고미숙이 누드 글쓰기의 존재론에 대해 이야기하고 안도균이 사주명리학의 개요를 설명한 후 각각 ‘비겁, 관성, 식상, 재성’이 강한 네 사람이 자신의 삶을 이야기하는 형식으로 엮인 이 책은 위험하다.
우리가 통상적으로 ‘책’이라고 했을 때 요구하는 내용과 기대하는 방식에서 벗어나 있기 때문이다. 고미숙과 안도균의 글을 제외하고 실제 자신의 삶을 사주명리학으로 풀어내는 누드 글쓰기를 들여다보는 일은 한 편의 소설을 보는 것처럼 흥미롭기도 하지만 타인의 생을 들여다보는 불편한 일이기도 하다. 사주명리학을 풀어내는 예문으로 적절할지 모르겠지만 그것을 통해 자신과의 대면을 시도하는 일이 얼마나 가능할 것인지는 의문이다. 읽는 사람에 따라 제각기 다른 반응을 보일 것 같은 독특함만은 인정해 줄만하다.
글쓰기는 시인이나 소설가만의 전유물이 아니다. 몸과 삶이 만나는 글이라는 누드 글쓰기가 왜 필요한지 어떻게 하는 것인지 시작해 보는 것은 어떨지 모르겠다. 치유하는 글쓰기는 우리 모두에게 필요하다. 입 속의 검은 혀가 아니라 온몸으로 누드로 글쓰기를 시작하라는 저자들의 이야기는 독자들 각자가 판단할 일이다. 자신의 의지대로 살아갈 수 있다고 믿거나 운명 따위와는 무관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 그리고 영원히 살 것처럼 사는 사람들에게 성찰과 겸손을 선물하는 책이 되었으면 좋겠다.
인생의 순환은 단선 레일 위를 유유히 달리는 것이 아니라, 주체와 조건이 만나는 틈새로 새로운 복수(複數)의 길을 여는 과정이다. 인생은 그렇게 주체와 조건이 중층으로 얽혀 있는 다차원의 세계다. 넓고 평평한 도로와 비포장도로가 섞여서 나타나기도 하고, 막다른 골목과 틈새의 길이 동시에 주어지기도 하며, 갈림길인가 하면 어느새 길이 모이기도 한다. 그렇기 때문에 삶이란 알다가도 모르고 잡힐 것 같으면서도 종잡을 수 없는 것. 그러므로 눈을 뜨면 역설이요, 감으면 모순인 인생의 길들은 그 자체로 지극히 정상적인 순환의 논리 안에 들어와 있는 셈이다. 따라서 자신의 삶을 보고자 한다면 뫼비우스의 띠 같은 이 모순과 역설의 논리를 익혀야 한다. - 35쪽
20111227-1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