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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의사 박경철의 자기혁명 - 시대의 지성, 청춘의 멘토 박경철의 독설충고
박경철 지음 / 리더스북 / 2011년 9월
평점 :
그가 지상에서 살고 있는 동안에는
네가 무슨 일을 하든 금하지 않겠노라.
인간은 노력하는 한 방황하는 법이니라.
- 15쪽(괴테(Johann Wolfgang Von Goethe)의 『파우스트(faust)』 중에서)
안철수, 박원순, 박경철의 공통점
사람들의 관심을 한 몸에 받으며 새로운 시대의 리더로 자리 잡은 세 사람의 공통점은 책에 미친 사람들이다. 큰 평수가 논란이 된 서울 시장 후보 박원순의 거실은 책을 버리지 못해 도서관에서나 볼 수 있는 개가형 서고처럼 꾸며져 있다. 어린시절부터 책벌레였던 안철수와 박경철은 ‘청춘 콘서트’를 통해 이 시대 젊은이들의 멘토로 자리잡았다.
진행하던 라디로 프로그램을 접고 마지막 ‘청춘 콘서트’를 마치고 안동에 내려 간 뒤 얼마 후에 박경철은 『자기혁명』을 내놓았다. 책을 많이 읽은 사람들이 빠지기 쉬운 오류 중에서 현학적인 취향과 계몽적 태도는 그 피해가 심각할 수 있다. 지식이 자기 것으로 온전히 소화되지 못하거나 일방적인 시선으로 세상을 재단할 경우 자신의 앎의 범위를 세계의 전부로 착각할 수 있기 때문이다. 선무당이 사람 잡는다는 속담이 있듯이 얄팍한 독서와 편협한 사고는 ‘단무지’보다 무서울 수 있다. 하지만 오래 숙성된 포도주처럼 독하지 않고 진한 향기를 내는 사유의 깊이는 주변 사람을 물들이고 저절로 고개를 숙이게 한다.
여름에 ‘청춘콘서트’에 갔다가 김제동의 이야기를 듣고 콧날이 시큰했다. 웃음을 주려는 노력 때문이 아니라 우스운 것이 많은 세상 이야기 때문이었다. 진지한 고민과 우울한 현실이 김제동에게 얼마나 큰 코미디로 느껴지는지 말하는 순간 청중들은 자신이 왜 웃을 수 없었는지 깨닫게 되었다. 안철수와 박경철의 대담은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사회, 경제, 정치적 ‘상식’을 되돌아보게 했다. 이 책은 박경철이 프롤로그에서 말하고 있듯이 ‘당신은 지금 당신 삶의 주인인가!’에 대한 끝없는 질문이다. 홍세화의 『생각의 좌표』에서 묻고 있는 것과 그 맥락이 닿아 있다. 생각의 주인이 자신이 아닌 사람들과 삶의 좌표를 잃어버린 이 시대의 청춘들에게 전하는 박경철의 진심어린 조언이 가슴 아프다.
‘청춘’, 어떻게 할 것인가?
통상적으로 20대를 지칭하는 이 말은 사회에 첫 발조차 내딛지 못한 취업 준비생을 비롯해서 이제 갓 대학에 입학한 대학생에 이르기까지 삶의 좌표를 설정하지 못한 사람들이다. 그러나 ‘청춘’은 나이가 아니라 살아있는 정신을 지칭한 말이어야 한다. 열린 가슴과 변화 가능성이 없는 청춘은 청춘이 아니다.
괴테의 말처럼 인간은 노력하는 한 방황하는 법이기 때문에 실수와 좌절을 두려워하지 말고 수많은 방황과 시행착오를 통해 먼저 자아를 찾아야 한다. 나는 누구이며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고민 없이 타인의 욕망을 욕망하는 천민 자본주의에 매몰된다면 자기 삶의 주인이 될 수 없다. ‘돈’ 없이 살 수도 없지만 오로지 ‘돈’을 위해 뛴다고 모든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는다.
뚜렷한 사회인식과 자신의 위치를 점검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자기 삶의 주인이 될 수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적절한 시간 활용이 중요하고 책읽기와 글쓰기도 필요하다. 저자는 이런 과정을 통해 ‘자기혁명’이 가능하다고 말하고 있다. 진정한 자기 혁명은 점진적 변화와 다른 사람과 똑같은 목표를 얻기 위한 노력과는 구별된다.
성급하게 서두르지 않아도 좋다. 한 걸음씩 그러나 치열하게 고뇌하고 방항하며 시행착오를 통해 스스로의 질문들에 답을 해나가야 한다. 세상을 어떻게 읽어야 할 것인가, 지금 여기에서 내 삶의 주인이 되는 방법은 무엇인가, 그러기 위해서는 어떤 노력을 해야 하는가. 수백회의 강연과 탄탄한 인문학적 독서는 이 책의 내용과 구성을 탄탄하게 다져준다. 시골의사, 경제전문가 박경철이 아니라 청춘들의 친근한 멘토 박경철의 진지한 목소리가 담겨 있는 이 책이 베스트셀러에 오른 이유가 충분히 짐작되고도 남음이 있다.
변화와 실천
지금까지 철학자들은 세계를 ‘해석’하는데 주목했다면 이제는 ‘변화’와 ‘실천’을 이야기할 시점이다. 박경철은 그것은 사회적 소용돌이와 정치적 불안이 아니라 내부로부터의 ‘혁명’이라고 이야기한다. 무엇을 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 이전에 도대체 세상은 어떻게 돌아가는가를 알아야 한다. 내가 살아갈 사회, 정치, 경제, 문화를 이해하는 것은 ‘자기혁명’의 기본 전제가 아닐까.
서점에 차고 넘치는 ‘자기계발서’, 마약 같은 ‘행복론’, 점수올리는 비법을 전하는 ‘공부법’ 등은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거시적인 안목을 주지 못한다. 하지만 박경철의 『자기혁명』은 깊이와 넓이를 담보하고 있다. 한 권의 책이 인생을 변화시켜주기도 한다. 그 책이 전하는 감동이나 저자의 생각에 동의할 때 그렇다. 달콤한 감언이설도 없고 실천 매뉴얼도 없는 책이지만 오래오래 삶의 지표로 삼을 만한 이야기가 담긴 책이어서 누구에게나 추천할 만하다.
그것은 저자의 말대로 청춘에 대한 동정(sympathy)이 아니라 공감(empathy)으로 가득하기 때문이다. 시혜와 계몽의 수직적 태도가 아니라 배려와 공감의 수평적 ‘애티튜드(attitude)’ 때문이다. 근거 없는 수다와 소문이 아니라 사실과 경험에 근거한 저자의 진심어린 충고가 ‘청춘’들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치게 되는 나머지는 이 책을 읽는 청춘들의 몫이다.
111023-09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