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앞에 없는 사람 문학과지성 시인선 397
심보선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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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여, 너는 내게 단 한 번 물었는데
나는 네게 영원히 답하고 있구나.

- 시인의 말



심심하여 시인의 말을 패러디.
 
사랑이여, 너는 내게 단 한 번 물었는데
나는 네게 영원히 답하고 있구나.

세상이여, 너는 내게 단 한 번 물었는데
나는 네게 영원히 답하고 있구나.

시집을 들추니 ‘Mundi에게’가 눈길을 끈다. 라틴어로 세계, 세상이라는 의미의 ‘Mundi’. 현존재인 ‘나’의 시점으로 존재자인 대상을 통찰하는 것은 시인의 의무가 mundi를 거쳐야 하는 모든 사람들의 권리이다. 다만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해석할 것인가의 문제가 남는데 심보선은 그것을 ‘들’과 ‘둘’로 나누었다. 거칠게 ‘들’은 ‘野’, 즉 사회를 말할 것이고 ‘둘’은 ‘人’ 즉 기대고 선 두 사람의 관계 혹은 사랑을 의미한다. 한 권의 의미망을 형성하고 싶은 시인의 욕망과 무관하게 이 시집은 이 시대를 바라보는 또 하나의 프리즘의 역할을 한다. 
 

좋은 일들 


내가 오늘 한 일 중 좋은 일 하나는

매미 한 마리가 땅바닥에 배를 뒤집은 채

느리게 죽어가는 것을 지켜봐준 일

죽은 매미를 손에 쥐고 나무에 기대 맴맴 울며

잠깐 그것의 후생이 되어준 일

눈물을 흘리고 싶었지만 눈물이 흐르진 않았다

그것 또한 좋은 일 중의 하나

태양으로부터 드리워진 부드러운 빛의 붓질이

내 눈동자를 어루만질 때

외곽에 펼쳐진 해안의 윤곽이 또렷해진다

그때 나는 좋았던 일들만을 짐짓 기억하며

두터운 밤공기와 단단한 대지의 틈새로

해진 구두코를 슬쩍 들이미는 것이다

오늘의 좋은 일들에 비추어볼 때

어쩌면 나는 생각보다 조금 위대한 사람

나의 심장이 구석구석의 실정맥 속으로

갸륵한 용기들을 알알이 흘려보내는 것 같은 착란

그러나 이 지상에 명료한 그림자는 없으니

나는 이제 나를 고백하는 일에 보다 절제하련다

발아래서 퀼트처럼 알록달록 조각조작

교차하며 이어지는 상념의 나날들

언제나 인생은 설명할 수 없는 일들투성이

언젠가 운명이 흰수염고래처럼 흘러오겠지



언어[言]로 지은 집[寺]. 시(詩)의 한자어는 문학의 성격을 가장 간결하게 표현한다. 말은 수많은 형태와 빛깔을 지닌 건축물을 만들고 사람들은 말없이 그 안에서 숨을 쉰다. ‘나’와 ‘너’ 그리고 세계를 떠나 생각할 수 없지만 때때로 암흑처럼 어두운 세상은 침묵한다.



텅 빈 우정



당신이 텅 빈 공기와 다름없다는 사실.

나는 말하지 않을 것입니다.

대신 당신의 손으로 쓰게 할 것입니다.

당신은 자신의 투명한 손이 무한정 떨리는 것을

견뎌야 할 것입니다.



나는 주사위를 던지듯

당신을 향해 미소를 짓습니다.

나는 주사위를 던지듯

당신을 향해 발걸음을 옮깁니다.



그 우연에 대하여

먼 훗날 더 먼 훗날을 문득 떠올리게 될 것처럼

나는 대체로 무관심하답니다.



당신이 텅 빈 공기와 다름없다는 사실.

나는 고백하지 않을 것입니다.

대신 당신의 입으로 말하게 할 것입니다.



당신은 자신의 투명한 입술이 하염없이 떨리는 것을

견뎌야 할 것입니다.



오늘은 신비로운 일이 하나도 일어나지 않는 날.

내일은 진동과 집중이 한꺼번에 멈추는 날.

그다음 날은 침묵이 마침내 신이 되는 날.



당신과 내가 원하기만 한다면

동시에 함께 웃을 수 있는 것처럼.



당신과 내가 원하기만 한다면

모든 것이 동시에 끝날 것입니다.




‘당신’은 2인칭에 머물지 않고 3인칭 극존칭으로 존재한다. 거울 속의 ‘나’를 향한 독백이어도 좋고 마주앉은 ‘너’여도 좋다. 부재하는 제3자이면 어떤가. 연시(戀詩)에 기대어 사람을 바라보고 세상을 관찰하는 것은 오래된 방법이다. 주관적 경험의 객관화가 이루어지는 순간 말[言]은 나름의 기능[寺]을 획득하고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게 된다. 그리하여 존재하는 모든 것은 당신이 된다. 그것이 ‘낙화’할 때까지.



낙화



어느 지상에 가을이 임하고 있다.

처음 보는 낯선 빛이 만인(萬人)의 발을

지그시 누르고 있다

낙화의 순간

누군가 무언가를 향해 나아간다

누군가 넘어지고

무언가 잘못된다

아직은 인간인 고아(孤兒)가

가족과 이웃

좋은 이와 나쁜 이를

구별할 수 없어 모두가 그리웁다

떨어지는 꽃이여

찰나의 귓바퀴를 맴도는 시간의 방랑이여

누군가 급히 거둬들인 시선이여

무언가 슬피 가리키는 손가락이여

지상의 어느 문에도 맞지 않아

허공에서 영원히 헛돌고 있는

고단한 열쇠여


그 고단한 열쇠는 세상의 모든 ‘처음’을 기나리고 그러다, 그러다가 ‘첫 줄’을 기다린다. 세상의 모든 첫 줄은 다음 줄로 인도할 뿐이다. 첫 줄은 존재하지 않았던 세상을 안내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사라진 과거와 현재에 대한 슬픈 조문(弔文)에 불과하다. 그것이 불이 되어 활활 타오를 수 있다는 순진한 믿음이 우리를 늘 미래로 인도한다. 그리하여 이 별에는 ‘이별’이 존재한다.



이 별의 일



너와의 이별은 도무지 이 별의 일이 아닌 것 같다.

멸망을 기다리고 있다.

그다음에 이별하자.

어디쯤 왔는가, 멸망이여.


멸망이 이별을 안내하는 것이 아니라 이별을 위해 멸망을 열망한다. 멸망이 쉽지 않다면 이별은 더더욱 어려워진다. 이 별에서 일어날 것 같지 않은 이별은 그러나 너무 쉽다. 제2부 ‘둘’의 서시는 이렇게 이별보다 멸망을 두려워하며 시작된다.



노스탤지어



유물론자들은 일찍 죽는다

그들은 모순을 설파하지

자기 영혼에 불꽃을 던진 방화범

판관은 고민한다

후회는 양심의 증거인가

죄의 증거인가

法은 만졌을 때 더 차가운 것을

좋은 물증으로 택하지

그러나 음유시인은 노래한다

감미로운 이끼가 풍미하는 절벽

하품과 하품 사이에서 나고 죽는

산양의 일생

평생 되새김질할 만큼

뱃속에 가득한 無

기억의 치외법권에서 들려오는

영원한 헛구역질 소리

뒤돌아보지 않으리

이 삶은 내가 살고도

내가 살지 않았으니


여기까지 옮기고 나니 동갑내기 시인 진은영의 해설, “하이데거는 ‘눈앞에 있음’(Vorhandensein, 현전하는 존재)과 ‘손 안에 있음’(Zuhandensein, 도구적 존재)을 구별하면서 한 사물이 도구적 용도 속에서 파악되는 한, 그 사물은 눈앞에 드러나지 않는다고 규정했다.”는 부분이 떠올랐다. 결국 눈앞에 사람이 없다는 것은 공기가 사라져버렸을 때의 답답함을 통해 공기의 소중함과 고마움을 확인하는 것과 같은 원리라는 것이다. 즉, 존재는 부재를 통해 자신을 증명한다. 그래서, 문학과지성사 시인선의 시인들은 언제나 뒤표지에 실린 시인의 글을 통해 자신을 드러내려는 것일까. 미래의 모든 부재를 예언하는 세상의 존재들이여.

사랑은 인간이 신에게서 빌려온 유일한 단어예요. 그러니 사랑 때문에, 우리는 할 수 없는 것을 하고, 말할 수 없는 것을 말하고, 쓸 수 없는 것을 쓰는 것이죠.


나는 말하죠. 오늘 밤, 당신은 나와 너무 닮아 낯설군요.

당신은 말하죠. 아니, 당신은 너무 낯설어 나를 닮았어요.


그런가요, 그래요, 그럼, 잘 자요, 당신, 내 사랑.




111021-0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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