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기완을 만났다
조해진 지음 / 창비 / 2011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삶은 지루하고 피곤한 일상의 연속이다. 때때로 그로테스크한 형상을 만들어내고 또 그 위에 희망을 덧칠한다. 하지만 그것이 아름다운 한 폭의 그림이 될 것이라는 생각은 애초부터 하지 않는 것이 좋다. 어쩌면 모든 사람은 비루하고 누추한 세상을 견뎌내는 힘겨운 투쟁을 매일 견뎌내고 있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단 한번뿐인 인생이 어디로 어떻게 흘러가는지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수많은 자기계발서와 확고부동한 인생의 목표조차도 ‘왜’라는 질문 앞에서는 맥없이 무너지기 쉽다. 삶은 쓸쓸하고 외로운 법이다.

한 인간의 섬세한 삶의 결을 들여다보는 일은 불가능하다. 그 관음의 욕망을 채우기 위해 우리는 소설을 읽는다. 현실 세계의 일상을 벗어나고 싶은 욕망과 말할 수 없는 슬픔을 소설 속의 주인공과 치환시키려는 노력은 모든 독자들의 음험함이다. 새로운 세계에 대한 호기심과 알지 못하는 사람에 대한 관심은 드라마, 영화, 소설 등 수많은 서사를 통해 안도의 한숨을 이끌어낸다.

다른 사람들의 삶과 조금 특별한 인생에 대해, 개성적인 인물들의 생각과 행동에 대해 우리는 식지 않는 열광과 냉소를 분출한다. 조해진의 소설 『로기완을 만났다』는 바로 그러한 욕망의 이름으로 읽힌다. 벨기에 브뤼쎌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탈출 청년의 발자취를 따라가는 서술자의 욕망과 내면 풍경은 우리들의 그것과 멀지 않다. 그것이 소설이든 일상이든 무슨 차이가 있겠는가.

로기완은 이 소설의 보이지 않는 주인공이다. 한 번도 주인공이 등장하지 않는 이상한 소설. 작가는 서술자의 눈과 귀와 생각을 통해서만 로기완을 형상화한다. 잡지에 난 기사를 보고 문득 로기완을 찾아 떠나는 방송작가가 이 소설의 서술자다. 그녀의 주변인물은 이 소설에서 벨기에로 떠나기 위한 장치일 뿐이다.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묶어두기에 애매한 PD와 방송 취재중 알게 된 신경섬유종을 앓고 있는 윤주. 두 사람은 현실을 벗어나기 위한 핑계일 뿐. 로기완이나 그녀의 소설쓰기와 무관해 보인다.

그래서 이 소설의 주인공은 159센티미터 47킬로그램의 스무살 탈북청년 로기완이다. 벨기에 브뤼쎌에 도착해서 떠날 때까지 그의 행적을 뒤쫓는 것이 이 소설의 목적일까. 누군가의 삶을 추적하는 일은 불가능해 보인다. 다만 그것은 한 인간의 내면을 들여다보려는 독자들의 욕망이며 그 삶을 통해 나를 돌아보려는 반성적 고찰에 불과하다. 일상이 평화로운 자, 죄의식도 없이 고민하지 않는 자, 삶의 의미와 세상의 보이지 않는 그림자가 궁금하지 않는 자는 이 소설이 지루하고 무의미할 것이다.

물론 특정한 사람에게 재미없고 따분한 소설이 무슨 대단한 의미를 담고 있다는 뜻은 아니다. 소설 읽기의 출발과 마지막이 결국 ‘지금-여기’를 돌아보기 위한 수단에 불과하다는 말도 아니다. 다만 이 소설은 유목민에 불과한 우리 모두의 발자취에 대해 고민해 보는 기회를 제공할 수 있다는 말이다. 서술자가 아니라 바로 로기완이 되어 이 소설을 읽어보자. 누군가의 시선으로 추측하고 읽어낸 것들과 로기완이 경험하고 생각했던 일들 사이의 간극을 메우는 일이 모든 인간관계의 전제가 아닌가. 우리는 모든 것을 아는 척 하지만 아무것도 모른다. 타인에 대해 쉽게 말할 수 없는 지점은 바로 거기에 있다.

우리의 삶과 정체성을 증명할 수 있는 단서들이란 어쩌면 생각보다 지나치게 허술하거나 혹은 실재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 9쪽

작가의 말대로 허술한 것, 실재하지 않는 것들에 매달리는 일은 우리들의 일상에서도 매일 반복된다. 어쩌면 나와 너, 나와 세계의 관계는 영원히 허상에서 벗어날 수 없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것을 견뎌내기 위한 마취제로 사용되는 사랑, 우정, 배려 등의 정서적 교감이나 정의는 세상을 지탱하기 위한 최소한의 조건일지도 모른다.

로기완은 결국 세상에 이방인이 되었다. 부모도 국적도 갖지 못한 채 이국에서 남은 생을 살아야 하는 유목민. 우리는 이 소설을 통해 그의 존재를 증거하는 작은 단서에도 민감하게 반응할 것이다. 하지만 그의 쓸쓸한 뒷모습과 대면하는 순간 그는 로기완이 아니라 바로 우리 자신이 되는 것이다. 로기완이 관심을 가졌던 노래 ‘노킹 온 헤븐스 도어’는 천국을 꿈꾸는 인간의 영원한 간절함이기 이전에 도달할 수 없는 것을 꿈꾸는 비극을 말해준다.

사랑하는 사람, 종교의 절대자, 불같은 신념, 도달하고 싶은 권력, 갖고 싶은 물건 등 인간이 의지하고 노크하는 수많은 대상들은 나를 완성하는 도구가 아니라 쓸쓸한 인생을 위무하는 삐에로에 불과한 것은 아닐까. 그래서 작가는 이 소설의 마지막 문장을 독자가 아닌 로기완에게 바치고 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아무말도 듣고 싶어하지 않을 것 같은 무표정한 로의 얼굴을 떠올려 본다.

로, 이것이 바로 내가 들려주고 싶은 나의 이야기이다. - 189쪽


110605-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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