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할 권리 - 욕망과 좌절사이에서 비틀거리는 21세기적 삶
마이클 폴리 지음, 김병화 옮김 / 어크로스 / 2011년 4월
평점 :
절판


아리스토텔레스은 고통이 없는 상태를 행복이라고 했다. 모든 것이 만족스러운 상태를 행복이라고 볼 수는 없다는 말이다. 행복의 최소 기준을 제시한 것처럼 보이지만 손에 잡히지 않는 모호한 말이다. 고통이 없는 상태라면 개인마다 느낌이 다르고 고통이라고 생각하는 감정의 기준을 제시할 수도 없다.

그런데도 우리는 늘 인생의 목적을 ‘행복’에 두고 있다. 행복한 인생은 무엇이며 어떻게 가능할까. 수많은 철학자들이 인생의 목적과 삶의 지향점에 대해 이야기하지만 그것은 지극히 개인적인 판단과 기준에 따라 달라질 수밖에 없다. 우리가 생각하는 행복은 언제나 늘 그 자리에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행복은 스스로 만들어가는 거라는 뻔한 말이 아니라 목적과 지향점이 될 수 없다는 말이다. 가만히 서서 맞는 바람이 아니라 산을 오르고 땀이 배어날 무렵 등 뒤에서 부는 바람을 우리는 행복이라 부른다.

인간이 행복할 권리 따위는 없다는 말을 받아들이기 힘들다면 ‘행복할 권리’도 말할 수 없다. 없다. 마이클 폴리의 『행복할 권리』는 ‘행복’을 사기치지 않는다. 행복해지는 비법이나 행복해지기 위한 자기계발서가 아니다. 인생은 부조리하며 행복할 권리는 누구에게도 없다고 비꼰다. 맞는 말이 아닌가. 헌법에 보호된 권리는 ‘행복할 권리’가 아니라 ‘행복을 추구할 권리’이다. 말장난인 듯 싶지만 그 의미는 깊이 새겨볼 만하다.

저자는 이 책에서 행복은 직접 추구의 대상이 될 수 없다고 말한다. 그것에 대한 집착을 끊고 다른 일에 몰두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얻어지는 무엇이라는 것이다. 미하이칙센트 미하이는 『몰입의 즐거움』에서 하루 중 탈아(脫我)의 시간이 길수록, 몰입하는 만큼 행복한 사람이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마이클 폴리가 말한 것도 그 시간이 가져올 결과물이 아니라 과정에서 얻어지는 부산물이 바로 행복이라고 말하고 있다.

행복한 상태란 어쩐 지점이 아니라 하나의 범위, 맨 밑바닥에는 만족감이 있고 맨 위에는 고양감이 있는 범위이다. 달리 말하면, 행복은 하나의 상태가 아니라 과정이고, 계속 노력하는 것이다. - 13쪽

우리는 행복의 부조리에 대해 생각하지 않는다. 삶의 목적이 될 수 없는 행복. 그러나 끊임없이 행복을 추구하는 우리는 조금 다른 시각에서 행복을 바라보아야하지 않을까 싶다. 혼란스런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가 추구해야 할 행복은 타인으로부터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자명한 논리부터 인정해야 한다. 그렇다면 우리의 행복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저자는 이 책에서 ‘당신이 찾는 행복은 없다’는 말로 시작한다. 14개의 챕터에서 다양한 인문학적 교양서와 저자의 깊은 성찰을 통해 행복에 대해 설명하고 궁구하고 고민한다. 마찬가지로 독자들도 저자의 뛰어난 통찰을 통해 행복이란 무엇인가 결론을 얻어낼 수 없다. 책을 읽는 과정에서 각자 행복에 이르는 길을 따라 걸어볼 뿐이다. 누군가 무엇인가 주어지는 행복은 순간의 찰나에 불과하다. 지속한 가능한 행복은 스스로 찾아가는 먼 여행과도 같은 것이다.

한 평생을 살면서 분노와 좌절은 자주 경험하지만 허무와 무기력을 경험하기는 쉽지 않다. 우울과 자살에 이르는 지름길이다. 죽을 힘으로 살아보라는 무책임한 말을 하는 사람들은 그만한 고통을 경험해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해 침묵할 수밖에 없는 답답함이나 견딜 수 없는 모멸감, 자신도 모르는 사실들이 목을 조여올 때 행복은커녕 죽음을 생각하게 된다.

'매시간은 마지막 시간일 수 있다면 그것은 최초의 시간만큼 아름다울 것이다.' - 349쪽

이제 매시간 마지막 삶이라고 생각하며 여유를 가질 시간인가 보다. 행복은 치열한 삶과 열정 그리고 삶의 성취와 결과물이 주는 선물이 아니기 때문이다. 세상은 믿는 대로 보이고 인간은 경험한 만큼 성숙해진다. 우리는 매시간 성장하며 고통 받고 그 고통을 통해 실낱같은 생의 희망을 건져올리기도 한다. 그러나 때때로 그 모든 것이 아무것도 아닐 때도 있는 법이다. 마치 바로 곁에 놓여 있는 보이지 않는 공포처럼.


110601-44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