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타는 왜 사막으로 갔을까 - 살아남은 동물들의 비밀
최형선 지음 / 부키 / 201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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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다른 동물과 어떤 차이점이 있을까. 우리가 아는 것처럼 고도의 발달된 언어의 사용과 소통 능력, 직립보행과 도구의 사용 등 문명을 이룩한 원동력은 생각보다 작은 차이에서 출발한다. 다른 동물들도 수준의 차이가 있을 뿐 인간과 크게 다르지 않은 습성과 능력들을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지속가능한 삶을 위해서 우리는 조금 더 지혜로워질 필요가 있다. 환경과 조화를 이루는 삶이 선택이 아니라 필수적인 조건이 된 현대 사회에서 생태학적 상상력은 가장 중요한 능력이 되었다. 자연과 더불어 살아야 한다는 자명한 사실을 다시 거론할 필요가 있을까. 그 자연 속에는 다른 동물들도 포함되어 있다. 하늘과 나무와 숲과 강과 맑은 공기뿐만 아니라 그 안에 생태계를 유지하며 살아가는 수많은 동물들의 진화과정은 인간의 진화과정과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인다.

최형선의 『낙타는 왜 사막으로 갔을까』는 새겨 읽을 만한 책이다. 단순히 동물들의 생태를 쫓아 그 습성과 특징을 관찰한 결과를 기록한 글이 아니다. 인간과 마찬가지로 동물들이 하나의 숭고한 생명체로 태어나 성장하고 죽음에 이르는 과정이 진지한 자세로 기술되어 있다. 필자가 이 책을 독자들에게 어떤 의미로 서술했는지 느낄 수 있는 대목들이 많다. 동양철학의 관점에서 인간의 본성에 빗대기도 하고 인간 삶의 조건들과 대조하기도 하는 부분들은 이 책 곳곳에서 발견되다.

깊은 성찰과 철학적 관점으로 동물들의 생태를 관찰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들의 습성에서 인간의 삶을 반성하는 것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일이다. 우리가 발견할 수 있는 다른 동물들의 신체적 특징과 속성은 바로 인간을 돌아보는 거울이기 때문이다. 자연속에서 자연스럽게 환경에 맞게 진화하고 살아남은 동물들의 모습은 오래된 시간의 역사를 보여준다. 상상하기도 어려운 중생대와 고생대로 거슬러 올라가 동물들의 조상을 상상해 보면 지금 우리의 모습은 기억조차 할 수 없는 순간의 삶을 살아가고 있는 듯하다. 겨우 백 년도 안되지 않은가.

다른 동물도 마찬가지기는 하다. 짧은 생을 마감하기 직전까지 오로지 살아남기 위한 처절한 생존경쟁과 죽음의 그림자를 벗어나기 위한 노력이 눈물겹다. 살기 위해 먹어야 하고 다른 동물을 먹잇감으로 삼아야 하는 연쇄 작용은 본질적으로 비극적인 삶을 상징하는 것 같다. 치타의 사냥법, 줄기러기의 이동, 낙타의 사막행, 일본원숭이의 배려, 박쥐의 기회주의, 캥거루의 지나친 모성, 코끼리의 여유, 바다로 간 고래 등 이 책에서는 익숙하면서도 쉽게 접할 수 없는 야생 동물들의 생태를 상세하게 다루고 있다.

저자는 이 책을 통해 현재까지 살아남은 대표적인 동물의 비밀을 밝히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오랜 시간을 견뎌내고 생존 경쟁에서 살아남은 동물들은 나름의 비법을 가지고 있다. 어떤 인간의 드라마틱한 삶보다도 더 극적인 적응력과 자연선택을 통해 살아남은 동물들의 슬픔을 읽어낸 것은 나만의 독법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결국 모든 인간이 짊어진 고독이라는 운명처럼 우리는 다른 동물들의 숙명을 이해하는 시간을 가져 볼 필요가 있겠다. 그 큰 덩치를 이끌고 생존 경쟁에서 ‘인내’ 하나만을 미덕으로 삼아 사막으로 걸어 들어가는 낙타의 당당함을 보라. 포유동물이면서 당황스런 상상력으로 바다로 뛰어든 고래는 또 어떤가. 우리는 삶의 불가해함을 말하곤 한다. 하지만 어느 동물인들 그렇지 않은가. 대자연 속의 인간은 그저 한없이 초라해 보일 뿐이다.

험한 환경 속에서 고통을 이겨 내면 삶의 자세가 진중해진다. 낙타는 자신을 드러내려고 설치는 짓을 하지 않는다. 늘 심오하고 조신해 보인다. - 79쪽

이 책의 제목처럼 낙타가 왜 사막으로 갔는지 궁금해 할 필요는 없다. 사실 생태적, 환경적 차원에서 접근하는 뻔한 답보다도 조금 더 상상력을 동원한다면 인간의 삶이 보인다. 우리는 왜 때때로 낙타나 고래 혹은 줄기러기와 박쥐와 코끼리와 치타처럼 행동하는지 돌아보자. 왜 그런가?

동물의 생태를 관찰하고 타산지석으로 삼으려는 것이 이 책의 목적은 아니다. 얄팍한 지혜를 얻기 위해 다른 동물을 관찰하고 실험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지닌 본질적인 호기심과 다른 종의 삶에 대한 관심과 애정을 갖는 것이 이 책을 읽는 미덕이 아닐까 싶다.

동물생태학 책으로 재미있게 읽었던 『하이에나는 우유배달부!』처럼 가볍고 즐겁게 읽을 수 있는 책에서 너무 심각하게 밑줄을 그은 건 아닌가 싶기도 하다. 하지만 결국 모든 책과 지식과 정보는 내 삶에 대해 화두를 던질 뿐이다. 그런 면에서 이 책을 읽는 내내 우리는 타인에 삶을 통해 나의 존재 의미를 확인하듯이 다른 종을 통해 인간의 생을 성찰할 수 있게 된다.

데스몬드 모리스의 말처럼 인간은 『털없는 원숭이』에 불과한 지도 모른다. 살아남은 인간들의 슬픔을 다른 동물들을 통해서 확인할 수 있다면 이 책은 충분히 가치가 있다. 오늘도 내일도 치열한 생존 경쟁에서 살아남아야 하는 모든 종(種)들을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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