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 너의 사회과학 - 우리 삶과 세상을 읽기 위한 사회과학 방법론 강의
우석훈 지음 / 김영사 / 2011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나, 너 그리고 우리. 자아의 확장 과정은 곧 타인과의 관계망을 형성하는 과정이다. 나와 너를 구별하고 우리라는 공동체를 형성하는 과정이 인류의 역사다. 그 과정에서 인간의 이성은 조금씩 발달해 왔다. 나와 너를 넘어 우리가 어떤 존재인지 확인하는 과정이 바로 사회과학이 아닌가. 사회와 과학이라는 어색한 개념의 만남을 통해 우리는 조금 더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방식으로 자신의 모습을 확인하고 싶은 것은 아닐까.

우리 시대의 코드를 읽어내는 다양한 방식 중 가장 강력한 무기는 역시 경제다. 불합리한 인간의 경제 행위, 수많은 생각의 오류, 비이성적인 사회 현상을 우리는 끊임없이 분석하고 논쟁한다. 각자의 관점이 다르고 해법도 여러 가지다. 그러면서 우리는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현재의 모든 순간을 통해 미래를 향해 나아간다. 그곳에 뭐가 있기 때문이 아니라 순전히 과거와 현재의 결과로서.

『88만원 세대』로 촉발된 세대 논쟁을 넘어 이제는 현실적인 삶의 질과 희망의 문제가 심각해 지고 있다. 열심히 노력하면 잘 살 수 있다는 생각이 가능했던 시절은 얼마나 낭만적이었나. 신자유주의에 대한 극렬한 논쟁과 장하준의 당돌한 비판적 담론이 아니더라도 우리는 온몸으로 이 시대를 체감한다. 살인적인 등록금을 비롯한 비정규직과 양극화의 문제는 주택 구입, 사교육 심화, 직업의 안정성, 조세 형평성, 사회 안전망 등 무엇 하나 조금씩 더 나아지고 있다는 생각을 할 겨를이 없이 우리의 목을 조른다. 우리는 훌륭한 국가에서 잘 살아가고 있는 걸까.

우석훈의 신간을 망설이다 손에 들었다. 『나와 너의 사회과학』은 우석훈의 스타일대로 써 놓은 비체계적 인문서에 가깝다. 사회과학의 필요성을 주장하고 있으며 철학과 역사를 경제학으로 버무려 놓은 느낌이다. 처음부터 차근차근 단계별로 사회과학의 중요성을 말하고 사회과학이 필요한 이유를 설명하고 그것의 방법론을 펼치는 것이 아니라 역동적이고 복합적인 방식으로 다양한 이야기가 충돌하면서 융합된다.

따라서 우석훈의 강의를 들으며 소통할 수 없는 사람들이 책을 통해 저자의 생각과 의미를 읽어내기에는 조금 난삽하다. 방법론적인 측면에서 사회과학의 구체적 사례와 현장의 목소리를 담아낸 책이 아니라 이론서에 가까운 책이기 때문에 공감과 울림이 적다. 지금까지 우석훈이 보여준 다른 책들과 비교해서 아쉬움이 남는 대목이다. 강의 자료와 수강생들과의 소통 과정이 드러난 것처럼 보이지만 그것이 책에 담겨 전해질 때는 한계가 있는 법이다. 이 책은 그 점을 간과했다.

그렇다면 내용은 어떤가. 각 장에서 정리된 내용이나 쟁점들 하나하나는 버릴 것이 없다. 하나하나의 주제를 가지고 함께 토론하고 공부하고 생각해 볼 문제들이 곳곳에 숨어 있다. 게다가 짤막한 글쓰기 연습을 통해 다음 장과 연결시키는 부분은 무엇보다도 이 책에서 시도한 장점이다. 읽기와 글쓰기가 한데 어우러진 책은 글쓰기 책이 아니면 찾아보기 쉽지 않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속적인 흐름에서 이야기의 맥을 짚고 통일성 있게 전개시키지 못한 아쉬움은 기존의 이론서에 익숙한 탓일지도 모르겠다.

사회과학은 결국 ‘현실’을 다루는 과학이다. 가설은 가능하지만 실험은 불가능한 사회과학은 다른 학문과 성격이 다르다. 예측 가능성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다양성에 대한 변명일지도 모른다. 수많은 인간들의 생각과 행동과 역동적인 변화 과정을 담아낼 수 있는 이론은 가능하지 않아 보인다. 저자는 이 책을 통해 그러한 사회과학이 왜 필요한 것인지 수많은 이야기를 통해 독자 스스로에게 묻고 있는 듯하다.

명쾌하고 분명한 현상과 이론적 잣대가 아니라 우리들 삶의 불가해함에 대한 과학적 접근방법이 있기는 한 것인지 모르겠다. 인류가 축적해 온 수많은 지식과 과학적 탐구 방법이 우리 사회의 어떤 부분을 밝혀주지는 못한다. 다만 과거를 통해 현재를 반성하는 정도가 아닐까. 망각의 동물인 인간에게 그것마저 허락되지 않는다면 우리는 여전히 정글을 탐험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어쨌든 이 책은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문제를 접근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생각의 틀을 제공하고 사회과학적 접근 방식에 대한 고민을 풀어 놓은 책이다. 대면 상황에서 강의를 듣고 토론을 하지 않고 책을 읽는 독자 입장에서 저자의 이야기가 스토리 텔링으로 구체화되기는 어려워 보인다. 다만, 저자 특유의 맛깔스럽고 담백한 전달 방식과 분명한 목소리는 여전히 매력적이어서 계속 그의 책을 기다리게 된다는 단점이 있다.


110429-033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