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리고 행복하라
비노바 바베 지음, 사티쉬 쿠마르 엮음, 김문호 옮김 / 산해 / 2003년 10월
평점 :
절판


진정한 교사는 가르치지 않는다. 다만 누군가 그의 곁에서 스스로 배울 뿐이다. 태양은 누구에게도 자기 빛을 주지 않는다. 다만 만물이 그 빛을 받아 스스로 자라갈 뿐이다. - P. 31

한 문장에 꽂혀 책을 찾아 있는 경우가 많다. 고미숙의 『돈의 달인, 호모 코뮤니타스』을 읽다가 한참 동안 멍하게 들여다보았던 문장이다. 늘 생각하고 있는 것에 대해 분명한 문장으로 만났을 때의 기이한 느낌을 경험해 보지 않은 사람은 잘 모른다. 가르치지 않는 교사란 있을 수 없다. 하지만 이 말은 지식이 아니라 온몸으로 삶을 가르치는 교사를 이르는 말일 것이다. 교과서 밖의 삶에 대해 함께 이야기할 수 있고 그것을 행동에 옮겨 실천하는 교사가 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무엇이 옳고 그른가를 몰라서 학교에 오는 아이는 없다. 객관적 사실을 판단하지 못해서가 아니라 그 뒤에 숨은 진실을 깨닫고 스스로 생각하며 판단할 수 있는 힘을 기르는 과정이 교육이다. 태양은 스스로 빛난다. 만물이 그 빛을 받아 스스로 자라는 것처럼 잠재적 교육과정을 통해 가르치지 않아도 배우는 학생들이 있어 교사는 늘 그들을 두려운 법이다.

인도의 마하트마 간디를 만나 비폭력 사회 변혁 운동에 뛰어든 비노바 바베의 『버리고, 행복하라』는 오늘 하루를 경건함으로 가득 채워주었다. 그것은 내 삶에 대한 엄숙함이었고 일반적이고 익숙한 것들에 대한 경고의 메시지였다.

영적인 지도자로 추앙받는 저자의 이야기를 담아 사티쉬 쿠마르가 엮은 이 책은 ‘교육, 권력, 정의, 평화, 자아’의 다섯 개 주제로 이루어져 있다. 얄팍한 한 권의 책이 아니라 영혼의 찬물을 끼얹는 울림이 있는 책이다. 사람들은 보통 종교에 기대어 산다. 불안한 미래와 현실적 고통, 사후 세계에 대한 공포가 만들어낸 안식처가 될 수도 있겠지만 현실적 존재인 인간에게 영혼이란 무엇인지 쉽게 가늠하기 어렵다. 욕망에 충실한 존재가 아니라 영혼의 안식과 평화를 가져다주는 삶을 고민해 본적이 있다면 버리자, 그러면 행복해질 것이다. 평범한 사람들에게 불가능한 삶을 요구하는 것은 아니다. 이 책은 21세기 대한민국 사람들에게 구체적인 실천 항목을 제시할 수는 없다. 다만 한 인간의 삶을 통해, 그리고 그의 목소리를 통해 나의 모습을 돌아 볼 수는 있다.

보편타당한 삶의 원칙과 태도는 시공을 초월해서 깊은 울림을 준다. 그것은 종교를 초월하며 인종과 민족의 범위를 넘어선 자리에서도 빛을 발한다. 비노바 바베는 종교를 앞세우지 않는다. 절대자의 말씀이나 권위를 빌리지 않고 온몸으로 실천하고 자신의 행동으로 말하기 때문에 더욱 경건해 보인다. 토지헌납운동을 통해 우리의 삶이 과연 올바른 것인지 성찰하게 한다. 누군가의 소유가 될 수 없는 것들을 우리는 소유하고 있다. 비노바 바베는 묻는다. 그것이 가능한 삶인가.

특히 많은 부분을 할애하고 있는 교육 분야는 구름처럼 허망한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 교육의 현주소를 돌아보게 한다. 현실 적용 문제를 떠나서 가르치고 배우는 것이 지극히 당연한 공교육의 현실이다. 우리는 무엇을 가르치고 무엇을 배우기 위해 그리 오랜 시간동안 학교에 다니는 것일까. 근본적인 질문을 통해 우리의 삶을 성찰해 보자. 사람들은 많이 가지고 싶어하며 경쟁에서 이기길 원한다. 피할 수 없는 고통은 즐기라는 섬뜩한 문구를 아무렇지도 않게 책상위에 붙여놓은 아이들을 바라볼 때마다 부끄럽다. 우리는 무엇을 어떻게 가르쳐야 하는 것일까.

이 땅의 교사와 학부모들이 새겨들어야 할 만한 잠언들이 곳곳에 숨어있는 이 책은 거시적인 안목으로 현실 너머의 세상을 바라보게 한다. 우리의 지향점이 어디인지 고민해 볼 수 있는 책이다. 비노바 바베 혹은 그 어떤 영혼의 안내자의 말이라도 실천하지 않는다면 책은 아이들에게 독이 될지도 모른다는 무서운 경고에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삶을 위한 교육이 아니라면, 내 생의 변화를 이루어낼 수 있는 책이 아니라면 독서를 권할 이유가 없다. 창밖에 멀리 시선이 가는 날, 하늘을 자주 올려다보게 되는 날 비노바 바베의 말에 귀 기울여 보자.

우리는 아이가 독서를 통해서 지식을 얻는다는 것을 결코 의심하지 않는다. 그리고 사실상 독서는 지식에 이르는 지름길이다. 그러나 천만의 말씀이다. 오히려 독서는 우리를 현실세계와 갈라놓는 장막과도 같은 것이다. - P. 39


11032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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