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발로 글목을 돌다 - 2011년 제35회 이상문학상 작품집
공지영 외 지음 / 문학사상사 / 201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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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 어스름 골목길을 돌아 친구의 집을 찾아 간 적이 있다. 익숙하지 않은데다 담에 막혀 다음 골목의 모양과 방향이 알 수 없어 답답했던 기억이 난다. 사람들은 살아가면서 그렇게 방향을 바꿔야 할 때마다 고민한다. 그 끝을 알 수 없고 목적지가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의 인생도 마찬가지다. 과정과 결과를 예측할 수 없고 가끔은 상상하지도 않았던 운명에게 허를 찔린다.

인류의 역사는 피의 역사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가장 잔혹한 동물로 평가받을 수밖에 없는 증거는 너무 많다. 잔혹한 종교와 이념 전쟁, 세계대전과 아우슈비츠로 대표되는 대량 학살 등이 그것이다. 프레모 레비의 『이것이 인간인가』가 아니더라도 우리는 인류의 악을 증명할 수 있는 방법을 너무나 잘 알고 있다. 한나 아렌트의 ‘악의 평범성’이 아니어도, 80년 광주 정도면 충분하지 않은가. 잔인한 폭력 앞에서 수많은 예술가들은 ‘인간’의 존재를 성찰한다. 우리는 누구이며 어떤 존재인가.

35회 이상문학상 작품집 『맨발로 글목을 돌다』는 공지영을 주인공으로 내세웠다. 지난한 세월을 견뎌낸 작가에게 각종 문학상은 걸어온 길에 대한 평가이고 걸어갈 길에 대한 채찍이다. 그렇다면 공지영의 수상은 전자일까 후자일까. 아마도 전자쪽에 무게를 둔 것이 아닌가 싶다. 블라인드 테스트로 수상작을 결정할 수는 없는 노릇이니 지난 1년간 발표된 소설 중 가장 탁월한 성취를 이뤘다고 보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언제부터였을까. 『더 이상 아름다운 방황은 없다』,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인간에 대한 예의』를 읽으면서 부터였는지 한참 후에 『별들의 들판』,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 『도가니』를 읽고부터였는지 모르겠지만 공지영 소설은 불편하다. 그 불편함은 공감할 수 없는 부분에 대한 불편이나 외면하고 싶은 진실에 대한 불편이 아니라 감당할 수 없는 감정의 과잉 때문이다. 후일담이나 사소설에 가깝기 때문이 아니라 말하고 싶지 않은 부분까지 드러내려는 섬세함 때문이다. 그것은 소설적 평가 이전의 문제일수도 있다. 지극히 개인적인 판단이지만 재미있다, 감동적이다의 차원을 넘어 숨김과 거리의 차원을 말하는 것이다.

어쩌면 그것이 대중적 감응력과 조우하는 것인지도 모르지만 해부실 불빛에 드러난 장기처럼 낱낱의 것들을 고스란히 드러내려는 것 같은 문장은 아름답기보다 불편하다. 이상문학상을 수상하기에 충분한 역량과 활동을 보여온 공지영에게 갈채를 보낼 수는 있으나 그의 소설을 이 시대 최고의 소설이라고 인정하기 싫은 이유를 나도 알 수가 없다.

수상작에 대한 찬사와 기대 다양한 해석은 ‘글목’에 모아진다. 치열한 개인적 삶은 결국 세계와 대결을 의미한다. 소설은 이것이 보여주는 다양한 양상을 드러낼 뿐이다. 작가마다 독특한 시선과 개성적인 방법을 사용하고 우리는 그 찬란한 스펙트럼을 즐긴다. 켜켜이 먼지 묻은 세월의 두께와 발랄하고 신선한 감수성들이 충돌하고 과거와 현재가 불협화음을 일으킨다. 그래서 소설은 여전히 우리 삶의 총체성을 짐작할 수 있는 최고의 고전이다. 하지만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들의 모습을 얼마나 잘 담아낼 수 있을 것인지 의문이다. 그것이 문학의 다양성이 사라진 시대라면 더더욱.

이상문학상 작품집을 읽는 이유는 대한민국에서 가장 권위 있는 문학상에 대한 경외감 때문이 아니라 이 시대를 살아가는 문학적 감수성에 대한 흐름을 이해하기 위함이다. 독자마다 그 이유가 다르겠으나 대상 수상작 뿐만 아니라 우수상 수상작들이 바로 이 시대의 문학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기 때문이다. 정지아, 김경욱, 전성태, 김숨, 김언수, 김태용, 황정은 등이 바로 다음 수상 후보자이며 그들의 소설이 우리 시대의 자화상이다.

물리적인 폭력뿐만 아니라 인간의 모든 고통에 대한 통찰이 문학의 바탕은 아닐까. 공지영의 소설은 시대의 아픔을 넘어 이제 인간의 보편적 고통에 대한 불가해함을 통찰한다. 문장과 표현을 넘어 행간의 의미를 읽어내는 방식은 공지영의 소설을 읽는 사람마다 조금씩 다를 수 있다. 하지만 작가가 지금까지 지켜온 인간에 대한 애정과 세상의 폭력에 대한 저항은 앞으로도 애정을 가지고 지켜볼 수밖에 없는 연민을 느끼게 한다. 물론 이 연민은 작가에 대한 것이 아니라 인간과 우리 사회에 대한 애정에서 비롯된다.

인간은 누구나 ‘평범성이 주는 온갖 열락을 향한 은밀하고 애타는 동경’을 가지고 있다. 다만 ‘인간이 성장해가는 것은 운명이다!’

110313-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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