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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 원자 - 세상만사를 명쾌하게 해명하는 사회 물리학의 세계
마크 뷰캐넌 지음, 김희봉 옮김 / 사이언스북스 / 2010년 8월
평점 :
사회적 모방은 정보 수집 면에서 이득이 있지만 상식을 포기하게 하기도 한다. - P. 131
인간의 삶은 사회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태어나는 순간부터 부모와의 본능적인 관계에서 시작되어 수많은 타인과의 관계와 사회제도, 규범, 문화의 틀 안에서 의식이 형성되고 자신의 정체성을 만들어 가는 존재가 인간이다. 본능적 자아에서 사회적 존재로 거듭나는 과정을 거쳐 사회의 일원으로 받아들여지고, 그렇게 오랜 시간에 걸쳐 학습되고 내면화된 습성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 살아남기 위한 방법과 태도를 배우고 경쟁에서 이기기 위한 기술을 익히며 이기적 욕망을 충족시키는 방법을 본능적으로 알게 된다.
그래서 때로는 가치관의 혼란을 겪기도 하고 견고한 사회적 편견에 좌절하기도 하며 인생관이 바뀌기도 한다. 큰 흐름, 보수적 질서에 편입되는 과정을 우리는 어른이 된다고 말한다. 합리적이고 논리적인 이유를 들어 따지고 상식이 무엇인지 묻기 시작하면 피곤한 사람으로 낙인 찍힐 우려가 있다. 기득권을 지키려는 사람들에 맞서 제도와 시스템을 고쳐나가려는 노력은 외롭고 힘겨운 싸움이 되기도 한다. 대다수의 사람들이 움직이지 않는 한 작은 모래 한 알 움직일 수 없을 때도 있다. 그것은 이념의 문제가 아니라 인식의 힘과 삶의 태도의 문제다.
인간 개개인은 전체 사회에서 볼 때 작은 원자에 불과하다는 놀라운 발상. 마크 뷰캐넌의 『사회적 원자』는 물리학의 잣대로 인간과 사회 문제를 해결하려는 시도이다. 개인적인 삶의 태도와 결합되어 읽는 내내 색다른 감동을 안겨준 책이다. 객관적인 평가는 차치하고라도 이 책은 새로운 시각을 얻고 사유 방식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 어떤 상황에 대처하는 방식은 개인마다 다르고 사회 현상에 대한 견해도 제각각이다. 그런데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그것은 독특한 관점이나 주관적 견해가 아닌 경우가 많다. 대다수의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하고 판단하고 행동하는가의 문제와 나에게 어떤 이익이 주어지는가의 문제가 결합되는 경우가 많다.
그렇다면 물질세계는 명쾌하게 해명되었을까? 과학자들은 여전히 원자를 중심으로 구성된 세상의 비밀을 알아내기 위해 몸부림치고 있다. 불규칙한 움직임과 알 수 없는 흐름들 그리고 이해할 수 없는 변화가 단지 물질세계만의 문제는 아니다. 인간을 하나의 원자로 본다는 발상 자체가 불가능하다고 생각하겠지만 어차피 사회라는 거대한 조직 안에서 인간은 나름의 법치과 시스템 안에서 움직이지 않는가. 그렇다면 나름대로 그들의 생각과 행동과 변화의 패턴을 읽어낼 수 있지 않을까? 물리학으로 사회를 해석하려는 시도가 충격적일 만큼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절대 합리적으로 행동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밝혀진 사람들의 경제 행위와 예측 불가능하고 불합리한 심리, 자신의 의지와 무관하게 타인을 모방하고 자신의 판단을 미루는 사람들이 모인 사회는 오직 알 수 없다는 말만 되풀이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이론 물리학을 전공한 저자는 물리학의 복잡한 이론을 말하지 않는다. 다만 물리학의 원리가 사회를 해석하고 인간을 분석하는데 어떻게 적용될 수 있는지 치밀하게 파헤치고 있다. 이 책의 제목은 결국 인간에 대한 물리학적 평가에 불과하다. 인간은 사회적 원자다. 수많은 사회 현상들을 토대로 그것이 어떤 패턴을 가지고 어떤 결과를 초래할 것인지 고민하는 것은 사람들의 오래된 관심사이다. 이 책은 그것을 탐구하려는 목적으로 인간의 심리와 행동을 분석한다.
단순한 호기심이나 물리학자의 사회학 들여다보기가 아니라 다양한 사회 현상을 통해 인간을 이해하려는 노력이고 거꾸로 사회적 원자인 인간을 통해 사회를 파악하려는 시도이다. 사람이 아니라 패턴을 통해 인간의 심리와 행동 그리고 사회의 흐름을 해석하는 과정이 어떤 인문학 서적보다도 흥미롭다. 저자의 통찰력은 실제 사례를 통해 논리적으로 분석하고 그것을 물리학의 세계에 견주어 분석하는 데서 얻어진 듯하다. 우리는 이 책을 통해 수많은 심리학, 철학, 사회학, 문학의 주제로 다루어졌던 이야기들이 하나로 모아질 수도 있고 다양한 모습으로 파생될 수도 있음을 확인해야 한다.
하지만 이 책이 모든 인간과 사회의 비밀을 보여주는 것은 아니다. 이제 시작에 불과할 지도 모르는 노력들이 작은 결실을 맺고 그것이 또 다시 새로운 시작이 될 수도 있다는 진지한 성찰과 고민만으로 충분히 읽을 만한 가치가 있는 책이다. 정재승의 『과학 콘서트』에 열광했던 독자라면 이 책은 본격적으로 물리학이 보여줄 수 있는 새로운 가능성을 탐색해 보기 위해 반드시 읽고 싶어질 것 같다. 저자는 이 책의 말미에서 ‘진실’을 이야기한다. 세상의 진실, 사회의 진실 그리고 개인의 진실은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라 생각과 행동 그리고 패턴과 흐름의 진실을 규명하기 위한 진실을 말하는 것은 아닌가 싶다.
우리는 ‘과거의 지혜’를 되살려 흄과 스미스의 시대 사람들이 높이 쳐들었던 횃불을 이어받아, 진실이 무엇이든 그 진실을 찾을 수 있다는 낙관과 확신으로 세계에 접근할 수 있을 것이다. - P. 255
독일의 극작가 고트홀트 에프라임(Gotthold Ephraim Lessing, 1729~1778)이 1778년에 남겼던 말을 마음속에 간직하고 계속 전진할 수 있을 것이다.
사람은 자신의 소유물이 아니라 진실을 발견하기 위한 정직한 노력에 따라 가치가 매겨진다. 사람의 힘을 늘리는 것은 소유물이 아니라 진리 탐구이며, 이것을 통해서만 인간의 완성에 끝없이 다가갈 수 있다. - P. 255
110227-0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