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이 정의인가? - 한국사회, <정의란 무엇인가>에 답하다
이택광 외 지음 / 마티 / 2011년 1월
평점 :
절판


원래 정의라는 말은 그리스어로 ‘제 자신의 할 일에 마음을 쓴다’는 의미를 갖고 있었다. 말하자면 마땅히 자신이 해야 할 일을 하되, 외람되게 남의 일을 대신해 주겠다는 망동을 자신이 해야 할 일을 하되, 외람되게 남의 일을 대신해 주겠다는 망동을 하지 않는 것이 정의라는 것이다. 이 말은 플라톤에 이르면 ‘책임’이라는 말로 변주되어 나타난다. 사회에서 자신의 책임을 다하는 것이 정의라는 것이다. 그렇게 때문에 샌델이 말하는 것처럼 서로 다른 의견을 인정하고, 도덕적 분쟁을 수용하는 것이 곧 정의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과연 이런 생각은 한국사회에서 얼마나 설득력을 가질 수 있을까? - 이택광, ‘정의없는 사회는 왜 정의를 욕망하는가?’, 31쪽

수많은 말들의 향연. 그만큼 2010년의 시대정신을 읽어낼 수 있는 책으로 마이클 샌델의 『정의란 무엇인가』를 들수 있다. 인문서로 8년 만에 종합베스트셀러 1위에 오르며 단순한 한 권의 책 이상의 의미를 갖게 되었다. 베스트셀러가 스테드셀러가 되고 스테디셀러가 고전이 되는 가장 영광스런 자리를 순서를 밟게 될지는 알 수 없다. 책은 나름의 운명을 지니기 때문이다. 어쨌든 이 한권의 책에 관한 또 한 권의 책이 나왔다.

『무엇이 정의인가?』는 ‘한국사회, <정의란 무엇인가>에 답하다’는 부제를 달고 11명의 이야기를 담았다. 2008년 이후 급격한 ‘설마’가 현실이 되는 과정을 지켜본 대한민국 국민들에게 ‘정의’는 새로운 화두로 떠올랐다. 각 언론과 글쟁이들에 의해 이 현상을 파헤쳐왔고 그 이유를 분석했으며 미래를 전망했다. 좌우를 가리지 않고 ‘정의’라는 담론을 나름의 방식으로 아전인수하기에 바빴다. 그러나 이런 현상에 대한 다양한 시각과 해석을 한 권의 책으로 모아놓고 보니 교집합과 여집합이 보인다. 이 책을 읽는 독자들이 찾아내야 하는 퍼즐이 바로 그것이다.

우선 이 책을 재미있게 읽는 방법이다. 마이클 샌델의 『정의란 무엇인가』, 『왜 도덕인가?』를 읽고 플라톤의 ‘국가’, 아리스토텔레스의 ‘니코마코스 윤리학’, 존 롤스의 ‘정의론’과 비교 분석한 후 11명의 해석과 분석을 따라가며 비판적 관점에서 자신의 생각을 정리한다. 제대로 읽는 방법은 길고 지루하게 보이지만 지금까지 인문학에 관심이 있거나 배경지식이 조금 있는 독자라면 이 책은 정말 다양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먼저 필자들의 면면을 떠올려 보자. 이택광, 장정일, 이현우(로쟈), 이양수, 김도균, 최원, 박홍규, 노정태, 서동진, 박가분, 이권우.

낯선 이름도 있겠으나 글의 내용과 방향을 충분히 짐작할 수 있는 필자도 있다. 『정의란 무엇인가』를 통해 ‘공정사회’를 외치는 한국사회의 문화적 풍토를 살펴보는 글들에 이어 샌델의 정의론에 대한 불만을 성토하는 글들이 이어진 후 우리 사회의 정의를 고찰하는 글들로 구성되어 있다. 주제를 정해놓고 쓴 글들이 아니라는 사실은 필자들의 글속에 중복되는 이론적 배경과 해석들 그리고 『정의란 무엇인가』에 대한 각기 다른 입장과 미세하게 차이나는 부분들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결국 이 책은 『정의란 무엇인가』에 대한 해석과 분석을 통해 ‘한국사회’의 ‘정의’를 고민하자는 내용으로 읽힌다. 과거 그리스에서 기원한 ‘정의’와 ‘도덕’이 하버드의 마이클 샌델을 거쳐 한국사회에서 심각하게 논의되는 이유는 최근 몇 년간 벌어진 대한민국의 현실과 끈끈하게 맥이 닿아 있다. 이러한 현실에 대해 박홍규는 직격탄을 날린다.

출판 대국이니, 전국민 대졸화를 눈앞에 두고 있다느니, 대부분 대학에 철학과가 있다느니 하는데도 그 유명한 디오게네스를 알 수 있는 책 한 권 없다니 너무 디오게네스하다. 너무 개같다. 개판이다. - 박홍규, ‘정의가 돈이라고? : 아리스토텔레스의 정의론과 한국사회’, 267쪽

소크라테스와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로 이어지는 철학의 계보학 자체를 부정하고 디오게네스 철학을 갈급해한다. 노정태는 ‘정의[正義, justice]’에 대한 정의[定義, definition] 자체를 문제 삼는다.

‘우리는 우리 공동체의 가치에 따를 때 정의롭다’가 아니라, ‘우리 공동체의 가치와 다른 공동체의 가치가 충돌할 때 어떻게 그 갈등을 평화롭게 해결할 수 있을 것인가’라는 질문을 던져야 할 필요가 있다. - 노정태, ‘정의의 딜레마, 딜레마의 정의’, 285쪽

두 사람 이외에도 필자들은 각자의 생각을 정교하고 설득력 있게 풀어 놓는다. 한 사람 한 사람의 의견을 읽고 판단하는 것은 각자의 몫이겠다. 다만 어떤 책에 대한 주목할 만한 현상이 벌어지는 사회를 톺아볼 필요가 있다. 원인과 과정에 대한 해석에 따라 결과를 바라보는 눈도 다르기 때문이다. 이것은 자연스럽게 미래에 대한 전망과 실천으로 나아간다. 『정의란 무엇인가』 이후에 국방부 불온서적 『나쁜 사마리안인들』을 쓴 캠브리지대 장하준 교수의 『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가 베스트셀러에 올랐다. 우리는 ‘그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들’의 정의와 우리의 정의가 어떻게 다른가. 그들과 우리를 구별짓자는 말이 아니라 모두가 ‘정의’를 부르짖지만 그 의미와 실현 방법은 너무 다르지 않은가. 2011년은 우리 사회의 변화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 미세한 흔들림이 감지되는 것은 70만부가 팔린 책의 내용 때문이 아니라 이 책에 관심을 갖는 사회현상 때문이다. 이권우의 말대로 책 읽는 한국사회가 과연 현실까지도 바꿀 수 있을지 책보다 흥미로운 미래가 펼쳐지고 있다.

지금 우리는 책읽기의 사회학을 검증하는 현장에 서 있다. 문제는, 그들이 말하지 않는 정의를 현실에 세울 수 있을는지에 있다. 책 읽는 한국사회가 과연 현실을 바꿀 수 있을지 지켜 볼 일이다. - 이권우, ‘‘정의’가 읽혔던 2010년 한국사회의 풍경’<무엇이 정의인가?>, 346쪽


110208-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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