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이트, 심청을 만나다 - 마음속 상처를 치유하는 고전 속 심리여행
신동흔.고전과출판연구모임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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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내가 만약 눈 먼 아버지를 두었다면 심청이처럼 행동할 수 있을까?’, ‘장화와 홍련이는 왜 순순히 죽음의 길을 택했을까?’ 우리 고전 소설을 읽다보면 현실에서 찾기 힘든 인물들이 주인공인 경우가 많다. 문학은 새로운 경험과 낯선 세계에 대한 호기심이어야 하며 동시에 개연성(probability)을 전제로 해야 한다. 하지만 초기의 소설은 그야말로 허무맹랑한 이야기가 많다. 귀신과 사랑을 나누거나 염라대왕을 만나기도 한다. 흥미와 감동이 전해진다면 사실성(reality)은 그리 중요하지 않은 것일 수도 있다. 현대소설과 달리 고전소설은 이렇게 무한한 상상의 세계를 즐길 수 있었고, 그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의 세계관을 반영하고 있다. ‘시대정신(zeitgeist)’은 당대의 진실을 함축한다. 소설은 이러한 시대 정신의 정수라고 볼 수 있다. 그 범위가 넓고 좁음에 따라 달리 해석될 수 있겠지만, 인간의 삶을 함축적으로 표현하고 그 이면의 진실을 드러내는 역할을 해 온 것이 바로 소설이다. 누구나 쉽게 읽고 즐길 수 있으면서도 눈물과 웃음, 재미와 감동을 동시에 감당할 수 있는 소설이야말로 우리 고전 문학의 진수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심청이, 장화와 홍련이, 길동이, 흥부와 놀부, 옹고집, 변강쇠 등 고전 문학에 등장하는 수많은 인물들은 그리 행복한 사람들은 아니었던 것 같다.

성격을 창조한다는 측면에서 소설 속의 인물(character)은 새로운 인간상을 제시하거나 현실의 전형적인 인물을 보여주기도 한다. 어떤 인물 유형이든 아무 걱정 없이 행복하고 건강한 정신을 소유한 사람은 주인공이 될 자격이 없다. 인간이 본질적으로 완전할 수 없듯이 소설 속의 인물들도 무언가 부족한 사람들이다. 고전 소설에는 「사씨남정기」의 유연수와 사정옥처럼 재자가인(才子佳人)이 등장하여 우리를 기죽이기도 하지만 대부분 어느 한 구석이 부족하다. 그 결핍이 갈등의 근원이 되고 관심의 초점이 되며 그것을 해결하는 과정이 독자에겐 더할 나위 없는 즐거움이다.

그런데 이렇게 우리 고전문학에 등장하는 인물들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마치 지금 우리들의 모습을 비추어보는 거울과 같다. 사람들은 다른 사람의 모습은 잘 들여다보면서 나의 모습은 잘 보지 못한다. 기껏해야 거울을 통해 나의 생김새와 앞모습을 왜곡된 형태로 바라볼 뿐이다. 고전문학에 등장하는 인물들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내 마음의 상처가 수면 위로 떠올라 함께 울고 웃으며 공감과 동정, 분노와 비난의 감정을 느낀다. 문학을 통해 우리는 이렇게 내 마음 안의 상처를 위로 받기도 하고, 상처를 치유하기도 한다.

우리 고전을 새롭게 해석하려는 시도는 계속해서 시도되고 있다. 아주 오래 전에 태어나 화석이 된 고전이 아니라 현재적 유용성을 가지고 살아 숨 쉬는 의미를 전해주는 것이 고전이다. 문학의 보편성은 삶의 보편성이며 우리가 공감할 수 있는 정서적 보편성이다. 『프로이트, 심청을 만나다』는 이러한 보편성을 바탕으로 우리들 마음의 상처를 치유하기 위한 고전읽기의 방법을 제시하는 책이다.

고전문학 작품에서 만나는 인물들은 유형화되어 있다. 그러나 그들이 짊어졌던 강박증부터 피해의식에 이르기까지 현대인들도 고스란히 겪고 있는 스트레스성 질병들을 살펴보면 얘기가 달라진다. 단순하게 효녀나 영웅으로 볼 수 없는 인간적 상처가 너무 많다. 이 상처들은 고전문학의 인물들에게서만 발견되는 것이 아니라 지금 우리들에게도 그대로 적용된다. 인간은 얼마나 많은 상처와 고통 속에서 살아가는가. 그 아픔을 극복하고 상처를 보듬고 단단하게 성장하는 과정이 우리들의 삶이 아니겠는가. 그런 면에서 고전문학은 오래된 옛이야기가 아니라 우리들에게 오래된 미래를 보여주는 지혜의 보고(寶庫)라고 할 수 있다.

신동흔과 고전과출판연구모임이라는 이름으로 나온 이 책은 젊은 고전문학 연구자들이 ‘문학치료’라는 주제의식을 가지고 다양한 고전 속 인물들을 분석하고 있다. 1부 내 마음 속에 귀신이 산다와 2부 상처 입은 관계의 회복을 위하여로 나누어 「장화홍련전」부터 「변강쇠가」를 거쳐 「한중록」을 더듬고 「상사뱀설화」를 통과하여 「흥보가」에 이르는 고전여행을 즐겨보자. 목적은 ‘자기 서사의 발견!’ 이 책은 고전문학을 다시 읽고 뒤집어 생각하기 위한 목적이 아니라 등장인물의 심리를 분석하여 ‘나’를 발견하는 것이 목적이다. 사람마다 고유하게 가지고 있는 문학을 ‘자기서사’라고 하는데 문학치료학의 관점에서 우리 자신의 모습을 돌아보고 각자 ‘자기서사’를 점검해 보자는 의도가 이 책을 만들었다.

몸이 아프면 금방 병원에 가는 사람들도 마음이 아플 때는 회피, 외면, 인내 등의 방법으로 일관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그 상처는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책을 읽는 것은 자아를 발견하기 위한 가장 좋은 방법 중의 하나이다. 어떤 책이든 마찬가지겠지만 우리 고전에 등장하는 다양한 인물들을 통해 나를 비추어보고 ‘포용의 서사, 신뢰와 성장의 서사’를 만들어 보자는 이야기다.

우리 마음속의 고전은 영원한 고향처럼 자리 잡았으면 좋겠다. 지치고 힘들 때 다시 꺼내 보고 함께 울고 웃으며 ‘자기서사’를 점검하고 또 힘을 내어 한 걸음 내디딜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고리타분하고 지겨운 고전을 생각하지 말고 생생하게 살아 숨 쉬는 고전 속의 친근한 인물들을 다시 보자. 그리고 겉으로 드러난 인물의 말과 행동이 아니라 이면에 숨은 마음의 상처에 대해 생각해 보자. 그것은 바로 우리 안에, 내 안에 숨어있는 아픔과 고통일 것이다. 그리고 그 인물들과 함께 우리들의 삶은 조금 더 건강하고 행복해 질 것이라고 믿어보자. 그러면 책은 언제나 우리 곁에서 누구보다 진실한 친구가 되어 줄 것이다.


101222-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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