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설계
스티븐 호킹.레오나르드 믈로디노프 지음, 전대호 옮김 / 까치 / 2010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잘 있어.”
어린 왕자는 여우에게 작별 인사를 했다.
“잘 가.”
여우도 어린 왕자에게 작별 인사를 했지만 곧 이렇게 말했다.
“아까 말해 주겠다던 비밀은 이런 거야. 뭐 별 것은 아니야. 어떠한 것을 볼 때 마음으로 보지 않으면 잘 보이지 않는다는 거야. 가장 중요한 건 눈에 보이지 않는단다.”
“소중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단다 …….”
어린 왕자는 잊어버리지 않기 위해 여우를 따라 했다. 그러자 여우는 다시 한마디 했다.
“네 장미꽃을 그토록 소중하게 만드는 건 그 꽃을 위해 네가 써 버린 그 시간이란다.”

- 『어린왕자』 21장, 쌩 떽쥐뻬리, 김제하 옮김, 소담출판사, 1990

세상을 살아가며 우리는 무언가 아주 조그마한 것을 깨닫게 된다. 그 방법은 조금씩 다르겠지만 어느 순간, 어떤 계기를 통해 무언가를 조금 알게 된다. 가끔 우리는 책을 읽다가 생각했던 무언가를 문장으로 확인하게 된다. 그 중 하나가 이런 문장은 아닐까?

‘가장 중요한 건 눈에 보이지 않는단다.’

너무 평범해서 말해버리고 나면 피식 웃음이 나오는 문장이지만 이 문장을 처음 본 순간부터 세상에 온통 하찮은 것들만 눈에 보이는 것 같았다. 정말 중요한 우정, 사랑, 믿음, 평화, 배려, 나눔, 희망, 여유, 두근거림, 따뜻함, 꿈 같은 것들은 하나도 눈에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그것은 ‘돈’을 세상의 중심에 놓고 살아야 하는 사람들의 우울한 자화상이며 현대인들이 피할 수 없는 세상의 ‘법’이기도 하다. 그래서 사람들은 더더욱 어린왕자에 열광하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네 시에 오는 누군가를 기다리며 세 시부터 행복한 사람이 가장 행복한 사람이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세계적인 물리학자 스티븐 호킹의 『위대한 설계』는 명성만큼이나 거시적인 이론서이다. 세상이 존재하게 된 이유와 왜 그러할 수밖에 없는지에 대한 이야기는 마치 신화를 창조하고 있는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다. 실제로 이 책에는 과학적 이론에 근접한 신화나 신화 같은 과학적 이론들이 다수 등장한다. 상식에 근거한 것이 아니라 상상력과 창의력 경연대회를 하듯 이 세상이 탄생한 배경과 원인을 고민하고 있다.

결국 위대한 과학자는 위대한 예술가이며 위대한 철학자라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는 책이다. 이 책은 말하자면 ‘과학’을 통해 인간을 포함한 물질적 ‘존재’의 비밀을 밝히고자 하는 철학서이다. 해명될 수 없고 증명할 수 없는 이론은 상상력의 문제로 귀결된다. 세상은 무엇으로 시작했고 어떻게 만들어졌는가? 우주는 얼마나 클까? 시간과 공간은 어떻게 생기게 된 것일까? 존재의 수수께끼는 과학자들에게 영원한 숙제이다. 그리고 우리 모두의 관심사이며 호기심이다.

수많은 예술작품에 영감을 불어 넣어 준 우주의 신비를 밝히려는 과학자들의 노력은 오늘도 계속되고 있을 것이다. 스티븐 호킹은 짤막한 에세이 형식으로 그것을 설명하고 있다. 현재까지 과학의 역사와 이론을 통해 세상의 질서와 신비를 밝히려는 노력은 단순히 해박한 지식만으로 불가능하다. 각각의 이론들이 가진 특징과 과학자들의 생각을 명료하게 설명하고 그것의 의미를 밝히면서 현실의 적용 가능성과 문제점을 점검한다. 그리고 그것들의 오류는 무엇이며 오류를 극복하기 위한 방법은 무엇인지 고민한다. 주목할 만한 과학자들이 주장했던 이론적 성과를 토대로 현재 우리가 설명하고 만들어가야 할 이론으로 이 책은 마무리 된다. 그것이 바로 ‘위대한 설계’이다. 신의 존재를 인정한다고 해도 신은 누가 만들었으며 신이 존재하기 이전의 세상은 어떠했을까에 대한 의문은 사라지지 않는다. 과학과 종교의 대립도 타협도 아닌 이 책은,

왜 무(無)가 아니라 무엇인가가 있을까?
왜 우리가 있을까?
왜 다른 법칙들이 아니라 이 특정한 법칙들이 있을까?

라는 질문에 대한 생각의 단초를 제공한다. 생명, 우주, 만물에 관한 궁극적 질문에 대해 다함께 고민해보지 않겠는가. 그것은 과학적 실험에만 의존할 문제도 아니고, 종교적 해석에 기댈 일은 더더욱 아니다. 이 세상 모든 것들의 ‘존재’에 관한 고민은 어쩌면 무한한 상상의 세계만이 해답을 제시할 지도 모른다. ‘우리 개인은 오직 짧은 시간 동안만을 존재하면서, 오직 우주 전체의 작은 부분만을 경험한다’는 문장은 그래서 더욱 의미심장하다. 그 짧은 시간 동안 우주 전체를 고민하는 저자의 노력에 갈채를 보내고 싶다. 생각의 영역을 넓고 깊게 해 주었기 때문이다. 또한 이 책은 한없이 작아지는 자신의 존재를 통해 겸손을 배울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먼지가 되어 언제가 흔적도 없이 사라질 ‘나’는 누구인가를 고민하고 싶다면 이렇게 오히려 ‘우주의 신비’와 ‘위대한 설계’에 대해 먼저 고민해 보는 것은 어떤가?


101209-107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