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지 국가 비타 악티바 : 개념사 22
정원오 지음 / 책세상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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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퓰리즘(Populism)은 일반 대중의 인기에 영합하는 정치 행태를 일컫는 말로 현실 정치에서 상대당이나 정적(政敵)을 비난할 때 사용된다. 미국의 민주당과 공화당에 대항하기 위한 정당으로 1891년에 창당된 파퓰리스트 정당(Populist Party), 즉 인민당(People's Party)에서 그 어원을 찾을 수 있다. 이에 반하여 소수의 지배 집단이 통치하는 엘리트주의(Elitism)가 있다.

플라톤은 철인 정치 사상을 내세워 철학자가 국가를 지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물론 기원전에 주장했던 철학자의 말이지만 정치 엘리트주의는 여전히 유효한 현상이다. 높은 학력과 고도의 전문성을 갖춘 사람이 권력을 잡으면 국민들을 잘 살게 해주고 행복하게 만들어 줄 거라고 믿는 순진한 생각은 여전히 변함이 없기 때문이다. 과연 그런가? 기본적인 ‘상식’과 ‘합리적 이성’을 갖춘 사람이면 중요한 정책 결정과 국가의 목표를 결정하는 데 부족함이 없다. 실무적인 일이나 행정적인 절차는 전문성을 갖춘 공무원에게 맡기면 될 일이다. 국가의 중요한 정책이나 방향을 결정하는 일은 그리스의 직접 민주정치 방식으로도 가능하다. 정치는 국민을 위한 철저한 봉사 행위여야 한다. 정치 행위로 인해 어떠한 권력과 금전적 혜택도 얻을 수 없도록 하는 장치가 마련되어야 한다.

최근에 다시 불거지고 있는 ‘무상급식’ 논란을 살펴보면 우리 사회의 한 단면을 읽어낼 수 있다. 오세훈 서울 시장은 서울시 의회의 무상급식 조례 통과에 대해 “복지의 탈을 쓴 망국적 포퓰리즘 정책을 거부한다.”고 말했다. ‘복지’와 ‘포퓰리즘’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밝혀두지 않으면 서울 시장의 말을 찬성도 비판도 할 수 없다. 우선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포퓰리즘은 대중에 영합하는 행위로 복잡하고 다양한 측면에서 국가의 시스템을 고려하지 않고 우선 당장 대중들의 입맛에 맞는 정책을 제시하고 그 인기를 통해 정권을 창출하거나 유지하기 위한 행태를 말한다. 2011년 서울시 예산 20.6조원 중 700억원이 없어 무상급식을 못하겠다고 버티는 것이 아니다. 이 예산 중에 각종 토건형 개발, 시설사업 예산이 줄잡아 10조원이 넘는다. 이런 상황에서 무상급식이 단순히 망국적 포퓰리즘이라고 볼 수 있을까?

사회 수당 제도가 증장한 배경에는 빈곤 여부를 조사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부정적 낙인 효과, 소위 스티그마 문제를 제거하려는 목적이 있다. 성장기의 환경은 매우 중요하며, 정신적으로 미성숙 상태에 있는 아동이 낙인을 의식할 경우 정상적인 아동 발달에 매우 부정적인 영향이 미칠 수 있으므로, 아동을 지원하는 제도에서는 세심한 배려가 필요하다. 가난한 아동과 부유한 아동을 구분하지 않고 아동 수당을 보편적으로 제공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최근 우리나라에서 논란이 된 학교 무료급식 문제도 이러한 측면과 직접 관련되어 있다. 가정 형편이 어려운 아동에게 한정해 학교 급식을 무료로 제공해야 한다는 주장이 있는 반면, 빈부에 상관없이 모든 아동에게 무료 급식을 해야 한다는 주장이 있다. 그런데 부유한 가정의 아동에게까지 무료로 급식을 제공하는 것은 재원 낭비라는 주장은 하나만 생각하고 둘은 고려하지 못하는 근시안적인 것일 수 있다. 가난한 가정의 아동을 배려하는 진정한 복지는 수혜 당사자가 도움을 받는다는 느낌 없이 당연한 권리로서 복지를 향유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 P. 82

이렇게 긴 인용문은 정원오의 『복지 국가』에서 발췌한 내용이다. ‘복지’에 대한 개념이 무엇인지 알아야 하고 어떤 사회를 지향할 것인지 결정하는 일이 선행되어야 이러한 무상급식 논란을 정치적 대립이 아닌 사회적 논쟁으로 이끌어 갈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은 복지 국가의 개념을 설명하고 복지국가의 기원을 영국과 스웨덴에서 찾아 설명한다. 공공부조, 사회보험, 사회수당, 사회복지 서비스의 차이를 이해하면 무상급식에 대한 생각도 조금 바뀌게 되지 않을까 싶다. 신자유주의 시장 경제 이후 영국 노동당도 ‘제3의 길’을 걷고 있지만 복지가 단순히 게으른 가난뱅이를 양산하고 일할 의욕을 저하시키며 공정한 경쟁의 이익을 부당하게 뺏어 간다는 잘못된 생각은 바로 잡아야 한다.

복지 국가는 현재 위기의 상태에 놓여 있으며 변화의 시기를 겪고 있다. 향후 급격한 고령화 사회를 맞이하는 대한민국도 다양한 제도를 마련해 놓고 있지만 전체 예산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너무 적고, 기준이 엄격해 사실상 복지 후진국에 속한다고 볼 수 있다. 양날의 칼처럼 위험해 보이는 ‘복지’를 국민의 ‘행복’과 ‘평등’ 그리고 지속가능한 ‘발전’이라는 측면에서 다양하게 접근해야 할 때이다. 미래 사회에 대한 국민적 합의를 주장하는 정치인들이 언제 국민의 뜻을 물어 정책을 입안하고 집행하기를 기대하겠는가. 또, 국민들은 언제 나와 내 가족의 이익만이 아니라 이웃까지 배려하는 마음으로 ‘복지 국가’의 미래를 생각하며 투표를 하겠는가. 서로 생각이 다른 사람들이 살아가는 세상에서 무엇이 옳고 그른가의 기준이 아니라 어떻게 살아가야 할 것인가를 생각하는 것이 더 빠를지도 모르겠다.

일요일 저녁, 오세훈 시장이 이 책을 들고 조용히 사색에 잠겼으면 좋겠다. 누구를 위해, 무엇을 위해, 왜 ‘무상급식’을 반대하는지 다시 한 번 곰곰이 생각해 볼 일이다. 땅 좀 그만 파고 밥 좀 먹자!


101205-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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