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도덕인가?
마이클 샌델 지음, 안진환.이수경 옮김 / 한국경제신문 / 2010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유명환 전 외교부장관의 딸은 공공연한 대한민국의 ‘음서제(蔭敍制)’를 공론화했다. 아버지가 기업을 이루고 그 아들이 물려받는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외교부의 특별채용에 분노하는 이유는 개인기업과 국가기관이라는 차이 뿐일까?

사람들이 말하는 상식의 범위와 한계는 문화적 토대와 사회, 역사적 배경에 따라 조금씩 다르다. 그래서 고대 철학자들로부터 최근의 사회학자에 이르기까지 보편 타당한 윤리학에 관한 기준과 개념은 논쟁의 중심에 놓여있다. 특히 ‘도덕’이라는 이름으로 상황을 판단하고 사람을 평가하며 정책을 수립해야 하는 상황에서는 말할 나위도 없이 커다란 논란에 휩싸인다. 정치적 성향, 종교, 지역과 문화에 따라 전혀 다른 방식으로 접근할 수 있는 ‘도덕’이란 무엇인가?

칸트는 사람을 수단이 아닌 목적으로 대하라는 지극히 단순 명료한 입장에서 도덕적 입장을 밝힌다. 하지만 이것만으로 해결될 수 없는 현대사회의 복잡성은 수많은 정치적 논쟁을 불러왔다. 자유주의자들과 공리주의자들의 기나긴 대립은 우리 사회의 보수와 진보의 싸움처럼 지루하다. ‘도덕’을 바라보는 관점의 차이는 사람과 세계를 해석하는 기준의 차이로 드러나기 때문에 간과할 수 없는 문제이다. 마이클 샌델은 『왜 도덕인가why marality』를 통해 이 문제들을 집중적으로 조명한다.

동방예의지국이라 불렸던 우리나라에서는 오히려 ‘도덕적 가치’를 중시하지 않는다. 신산스런 역사를 돌아보면 철저하게 생존경쟁에 올인할 수밖에 없었던 우리들의 자화상이 처연하다. 그래서 ‘도덕’보다 ‘생존’이 앞섰고 살아남은 자의 슬픔보다 살아남았다는 행복을 느끼며 살아간다. 공동체의 가치는 생소한 용어이며 ‘가족’이라는 이기적 울타리 안에 매몰되기 십상이다. 근대국가가 출발하며 사람들에게 심어준 ‘민족’이라는 상상의 공동체 만큼이나 ‘가족’ 단위의 공동체는 강고하기만 하다. 나와 우리를 넘어서지 못하고 나와 가족 안에서 매몰되는 우리 사회의 슬픈 자화상은 가장의 가족 살해와 자살이라는 끔찍한 신문기사를 양산한다.

1부에서는 경제적 도덕, 사회적 도덕, 교육과 도덕, 종교와 도덕, 정치적 도덕 등에 대한 미국 사회의 현안들을 점검한다. 복권과 도박에서부터 낙태, 동성애, 존엄사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도덕적 주제를 다룬다. 2부에서는 정치 이론들을 검토한다. 이 이론들은 물론 미국인들이 소중하게 여기는 정치적, 종교적 가치는 물론 공동체와 시민의 덕목에 대해 살펴본다. 3부에서는 미국 정치사의 주요 논쟁을 보여준다.  

『생명의 윤리를 말하다』, 『정의란 무엇인가JUSTICE』에 이어 세 번째 책을 읽으면서 느낀 것은 한국적 가치체계에 대한 부재와 우리 사회의 부끄러움이다. 선진국과 후진국, 문명국과 원시사회를 가르는 기준은 자유와 평등, 인권의식, 정의와 윤리, 복지정책, 정치제도 등 다양한 기준이 있을 것이다. 우리 사회가 지향하는 공동체적 가치는 무엇인가 되돌아보는 기회가 되었다.

정치적 성향과 정책의 차이는 경상도와 전라도, 충청도와 강원도의 차이도 아니고 보수와 진보의 차이여서도 안 된다. 합의된 공동체의 가치가 마련되어야 하며 지향점을 향해 수많은 논쟁을 통해 정의의 기준을 마련해야 한다. ‘공정사회’는 주둥이로 부르짖는 공허한 외침이어서는 안 되며 모두가 공감하는 사회적 합의와 가치가 되어야 한다. 제도적인 기준을 마련하고 공정한 게임의 규칙을 어기는 사람은 공직사회에 발을 부치지 못해야 하며 그렇게 사는 것이 부끄러운 짓임을 알게 해야 한다. 개인적인 잣대가 아니라 사회적 합의를 통해 정의로운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다. 하긴, 전 재산 29만원으로 아직도 살아있는 전직대통령 재임시절 국정지표가 ‘정의사회 구현’이었던 대한민국이다.

미국의 현실과 우리의 현실이 다른 것은 분명하다. 그들의 역사와 문화가 우리와 다르듯 정의와 도덕의 기준과 개념도 다르다. 이 책은 오래된 논쟁의 한 페이지들을 넘겨 볼 수 있는 내용들로 가득하다. 비록 미국의 이야기지만 보편적 가치를 통해 우리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공정한 법 집행, 교육의 시장논리, 사생활 보호, 정치인의 거짓말 등 우리 사회에서도 여전히 논란이 되고 있는 문제들이지만 바라보는 관점과 받아들이는 태도는 많이 다르다.

이 책은 결국 3부에서 말하는 것처럼 ‘인간이 자신의 목적을 선택할 수 있는 능력’ 인 자유가 실현될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모두를 위한 경제정책, 시장중심주의의 위험성, 개인주의를 넘어 공동체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우리 모두가 실천적 지식인으로 살아야한다. 나와 무관한 정치인들의 이야기나 내가 어쩔 수 없는 사회의 구조적 모순이라고 생각하지 말고 지금 이 자리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들을 먼저 찾아보아야 한다. 무엇이 정의이고 도덕인가라는 질문이 우리에게 요구하는 것은 어려운 이론이나 정치적 신념이 아니다. 단순해 보이지만 복잡하게 얽혀있는 이해관계를 넘어선 우리 사회의 가치 지향점에 관한 논의로 나아갈 것을 요구하는 듯한 책이다.

내 주변에 있는 사람들과 내가 하고 있는 일과 내가 읽고 있는 책이 나를 말해준다. 즉, 우리사회의 베스트셀러가 가장 좋은 책은 아니지만 지금 우리들의 관심사와 우리들의 모습을 간접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정치와 권력의 이름으로 부당거래가 공공연한 사회에 경종을 울리는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우리들의 생각과 미래를 고민하는 계기가 된다면 이 책은 나름의 의미를 갖게 될 것이다.
 

101114-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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