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을 범하다 - 서늘하고 매혹적인 우리 고전 다시 읽기
이정원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10년 11월
평점 :
품절


-적(的) 접사. (일부 명사 뒤어 붙어) ‘그 성격을 띠는’, ‘그에 관계된’, ‘그 상태로 된’의 뜻을 더하는 접미사

고유어에는 ‘-적(的)’이 붙지 않는다. 부사에 붙은 ‘-적으로’와 부사어에 붙은 ‘-적’은 군더더기이다. ‘-적’ 대신 조사나 접사를 붙이면 한국어에 한결 어울린다.

정영숙, 일본어 접사 “的”의 성립 및 한국어로의 유입문제 고찰, 고려대학교 석사학위논문, 1994
문영은, 日本語と韓國語の漢語につく接辭「的」の硏究, 부산대학교, 석사학위논문, 1999

국회도서관이나 협정기관(도서관)에서만 볼 수 있는 논문자료라서 찾아볼 수 없다. 다음으로 미루어 두었다. 도대체 ‘-的’이란 무엇인가? 일본어의 영향이냐 아니냐에 대한 논쟁이 있지만 일상생활에서 사용되는 예를 보면 가끔씩 눈에 거슬릴 때가 많다. 책을 읽다가 특정 단어를 세어보기는 처음이다. 23페이지에 14번.

논문과 학술지에 사용하는 문장과 문법이 따로 있는 것은 아니지만 아카데미즘에 충실한 글씨는 따분하고 고루한 반면 진중하고 깊은 맛이 난다. 이에 비해 저널리즘에 충실한 글씨는 유연하고 부드럽지만 가볍고 자극적일 수 있다. 일반인을 대상으로 한 책은 당연히 두 가지 특성이 적절한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 이정원의 『전傳을 범하다』를 읽기 시작하면서 가독성이 떨어지는 이유를 찾다가 떠오른 생각들이다. 초반에 힘이 너무 들어간 것 같다. 중반이후에는 생각의 흐름이나 문장이 쉽게 읽힌다. 어쨌든 작가 특유의 문체라고 볼 수 없는 버릇 때문에 몰입할 수 없어 난감할 때가 있다.

자극적인 제목만큼 표지도 삽화도 전체 디자인도 공을 많이 들인 책이다. 우리에게 친숙한 고전소설을 재해석하려는 노력은 충분히 의미가 있다. 책머리에 앞세운 아나톨 프랑스의 말처럼 고전은 누구나 그 가치를 인정하는 책이지만 누구도 읽지 않는 책이다. 특히 세계문학과 고전문학이 그러하다. 줄거리를 알고 있거나 다른 매체를 통해서 먼저 접했기 때문에 읽은 것 같은 느낌, 다 아는 것 같은 착각이 들 때가 많다. 꼼꼼하게 읽어가며 시대와 대화를 나누고 작가와 소통하는 즐거움을 누리기 위해서는 독자들 입장에서 매우 적극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이 책은 두 가지 의미가 있다. 고전에 대한 관심과 흥미를 유발할 수 있다는 것이 첫 번째 의미이고, 뻔한 내용과 주제를 뒤집어 생각하는 다시읽기의 즐거움이 두 번째 의미이다. 황새결송이나 최낭전처럼 익숙하지 않은 고전에 대한 이야기는 새롭고, 토끼전이나 심청전 같은 익숙한 소설들은 다른 시각으로 접근하기 때문에 신선하다. 殺(죽은자의 변), 慾(욕망의 늪), 權(지배자의 힘), 我(나의 재발견)의 구성방식을 취하고 있다. 놓칠 수 없는 대목을 소개하기도 하고 각 부에서 못다 한 이야기를 간략하게 소개하기도 한다. 이렇게 소개한 고전소설은 모두 열일곱 편이다.

<토끼전>은 ‘봉권 권력에 대한 민중의 승리’ 따위의 도식적인 주제로 정리될 수 없는, 인간 본성에 대한 처연한 진실을 보여준다. - P. 103

예를 들어, <토끼전>이 인간의 욕망과 권력관계에서 파생된 삶의 진실을 폭로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는 해석은 단순하게 토끼의 임기응변과 용기, 자라의 충직함을 교훈적으로 받아들인 독자들에게 새로운 고전읽기의 즐거움을 제공한다. 토끼의 간을 빼려는 시도는 생명에도 ‘경중’과 ‘상하’의 위계관계가 엄존한다는 사실이 전제된 행위이다. 봉건사회의 가치가 반영된 이 소설은 자라 부인과 토끼와의 관계 등을 통해 인간 본성에 대한 본질을 드러낸다. 이렇게 고전 소설은 현재적 유용성을 가지기 때문에 가치가 있는 것이다. 문학의 보편성이란 시공을 초월한 자리에 오롯이 놓일 수 있어야 하는 법이다. 그래서 <토끼전>은 우리의 삶을 이렇게 재해석하는 데도 사용될 수 있다.

이 천박한 발전의 논리는 우리 사회에서 선진국의 이름으로 등장하기도 하고, 일류 국가의 명분으로 등장하기도 한다. 국가는 가난한 시민들의 간을 빼내어 신도시를 건설하려 하고, 하찮은 동식물을 죽여 세련된 자연 환경을 유지하려 한다. 자신이 수행하는 일에 대한 과분한 사명감은 때로 정말로 슬픈 결과를 낳기도 한다. - P. 106

무소불위의 용왕과 자라의 충직함이 세상을 구원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슬픈 결과’를 낳을 수 있다는 사실을 기억한다면 이 책은 우리에게 더 없이 소중한 고전읽기의 전례가 될 것이다. 고전은 언제나 살아 숨 쉬는 텍스트여야 하며 박제된 모습으로 먼지를 뒤집어쓰고 책꽂이 한켠을 장식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확인해야 한다.

<장화홍련전>에서 시작해서 <전우치전>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종횡무진 고전소설의 숲을 산택하는 즐거움은 충분하다. 스토리만 기억하는 사람이라면 꼼꼼한 텍스트 읽기의 필요성과 그것을 소화시키는 다양한 방법을 즐길 수 있다. 오래된 미래를 기억하는 상상의 공동체가 민족이다. 고전소설이 전하는 지혜는 현재 우리들의 모습을 성찰하는 거울이며 당대의 삶을 이해하는 기준이 된다. 조상들의 모습과 바로 지금 우리들의 모습이 중첩되는 이유는 시대와 공간을 뛰어넘어 인간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이 계속되기 때문이다. 신산스런 삶은 어깨를 무겁게 하지만 시대정신과 삶의 가치를 만들어가는 것도 바로 우리 장삼이사(張三李四)들이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해주는 것이 고전이다. 다시 읽고 되새기고 그 깊은 맛을 음미해 보기 전에 좋은 안내서가 될 만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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