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적 시 읽기의 즐거움 - 우리 시에 비친 현대 철학의 풍경
강신주 지음 / 동녘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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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관료 - 김남주

관료에게는 주인이 따로 없다!
봉급을 주는 사람이 주인이다!
개에게 개밥을 주는 사람이 그 주인이듯

일제 말기에 그는 면서기로 채용되었다
남달리 매사에 근면했기 때문이다

미군정 시기에 그는 군주사로 승진했다
남달리 매사에 정직했기 때문이다

자유당 시절에 그는 도청과장이 되었다
남달리 매사에 성실했기 때문이다

공화당 시절에 그는 서기관이 되었다
남달리 매사에 공정했기 때문이다

민정당 시절에 그는 청백리상을 받았다
반평생을 국가에 충성하고 국민에게 봉사했기 때문이다

나는 확신하는 바이다

아프리칸가 어딘가에서 식인종이 쳐들어와서
우리나를 지배한다 하더라도
한결같이 그는 관리생활을 계속할 것이다

국가에는 충성을 국민에게는 봉사를 일념으로 삼아
근면하고 정직하게!
성실하고 공정하게!

시 읽는 즐거움을 모르면 혀의 한 부분을 느끼지 못하는 것과 같다. 짧은 인생에서 맛보아야 할 수많은 즐거움 중에 시 읽기를 놓친다면 정말 아쉬운 일이다. 힘들고 지친 저녁 무렵 잠시 쉬어가라고 나무 밑에 놓여 있는 의자이며, 서걱이는 모래 바람이 지나갈 때 입안을 헹굴 수 있는 시원한 물 한 모금이며, 길을 잃고 어둠 속을 헤맬 때 멀리 보이는 희미한 등불 같은 것이 한 편의 시가 아닌가. 메마른 영혼을 적셔주고 꽉 막힌 사고의 틈을 열어주기도 하며 생각지 못한 깨달음을 얻기도 하는 시를 읽는 일은 얼마나 즐거운 일인가. 소설과 다른 시가 가진 모양과 맛을 제대로 느끼기 위해서는 온몸으로 다가서서 마음을 열어야 한다. 언어가 보여주는 진경은 시를 통해서만 가능하다고 믿는다.

이에 비해 철학은 고통스럽고 진지한 사유의 결과로 느껴진다. 평범한 사람은 머리가 아프다고 손을 내젓지만 철학자의 입장에서 보면 세계를 해석하는 도구라고 생각한다. 철학의 대중화를 위해 많은 사람들이 노력해 왔고 지금도 그러한 노력은 계속된다. 하지만 일상에서 피부로 느낄 수 있는 철학은 쉽지 않아 보인다. 그래서 우선 철학자들이 즐겨 사용하는 방법 중의 하나가 예술에게 손을 내미는 일이다. 심미적 감식안을 가지고 있는 철학자들이 많아서가 아니라 보편적이고 감각적인 예술과 만나는 일은 대중과 조우하는 좋은 방법이기 때문이다. 인간의 예술적 직관과 철학적 사유는 그리 멀지 않은 곳에 놓여 있고 그들이 만나는 자리가 바로 대중과 만나는 자리이기 때문은 아닐까.

오랜만에 김남주의 ‘어떤 관료’를 읽으며 예전과 다른 느낌을 받았다. 대학생의 입장에서 세상에 대한 날선 비판과 기성세대에 대한 통쾌한 비난으로 읽었다면 이제는 경험적 깨달음과 성찰의 시선으로 이 시를 보게 된다. ‘관료’가 아니라도 어느 조직에서나 존재한다는 사실을 간과한다면 이 시를 제대로 감상했다고 보기 어렵다. 자신의 주인에게 복종하는 ‘개’와 같은 사람들을 비난만 할 수는 없다. 그러나 과연 충성과 봉사의 대상이 누구이며 자신이 하고 있는 일이 무엇인지 조차 깨닫지 못하는 사람은 얼마나 많은가. 아니 오히려 그것을 신념으로 내세우며 맹목적으로 매달리는 사람의 용기가 더 무서운 것인지도 모르겠다. 『철학적 시읽기의 즐거움』에서 강신주는 ‘어떤 관료’를 한나 아렌트의 『예루살렘의 아이히만』과 연결시킨다. ‘악의 평범성’이라는 섬뜩한 말로 인간의 내면에 숨어 있는 근면과 정직과 성실과 공정함을 돌아본다. 아이히만은 바로 이런 덕목을 충실하게 지켜온 ‘어떤 관료’일 뿐이다. 그렇다고 해서 아우슈비츠의 원혼에게 진 빚이 없다는 말은 아니다. 다만 그 자리에 김남주의 시에 등장하는 ‘어떤 관료’나 혹은 우리 주변에 유사한 태도를 가진 사람이나 마찬가지였을 지도 모른다는 자괴감이 우리를 우울하게 한다. 이러한 깨달음과 철학적 관점이 만나는 자리를 마련했기 때문에 이 책은 보기 드문 인문학이 된다.

『철학, 삶을 만나다』로 강신주와 첫 만남은 강렬했다. 『상처받지 않을 권리』를 통해 자아와 현실 세계와의 관계망을 성찰했다면 이제 『철학적 시 읽기의 즐거움』으로 우리 시의 아름다움과 현대 철학의 만남을 지켜 볼 수 있다. 이 책은 단순히 시 읽기의 즐거움도 아니고 현대 철학의 쟁점 소개도 아니다. 시를 도구로 철학을 보여주려는 책도 아니고 철학을 동원해 시를 해석하려는 책도 아니다. 이도 저도 아니라면 무엇이란 말인가. 저자는 시와 철학의 진지한 만남을 이야기한다. 한 줄의 시 속에 철학적 사유가 담겨 있고 단 한 편의 시를 통해 세상을 들여다보고 인간을 성찰할 수 있다는 깨달음이다. 즉 재미있고 진지한 시 읽기가 곧 철학을 하는 것이며 철학하기는 곧 시 읽기와 다름 아니라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는 책이다. 개념과 이론을 토대로 예술을 바라보는 다양한 관점을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먼저 시를 읽고 그와 유사한 철학자나 개념을 소개하고 그것이 어떤 관계로 놓일 수 있는지 살펴보는 구조이다. 전체 21명의 시인과 21명의 철학자가 만나는 장면마다 ‘정-반-합’의 관계처럼 3개의 글들이 모여 각각의 완성된 글이 된다.

저자가 밝히고 있듯이 이 글은 실제 강의를 진행하면서 자료를 모으고 시를 고르는 과정이 즐거움으로 가득했으리라 짐작된다. 한 권의 책에 너무 많은 철학자와 시인들이 소개되고 철학적 개념들이 소개되기 때문에 번잡스런 요약처럼 보일 수도 있으나 ‘더 읽어볼 책들’이 그런 단점을 보완한다. 책은 책을 소개한다. 이 책을 통해 지금까지 만났던 많은 철학자들의 개념들이 다시 정리되기도 했지만 무엇보다도 새로 도전하고 싶은 책과 철학자들이 많아졌다는 사실이 기쁘다. 씨줄과 날줄처럼 연결된 책의 네트워크! 오늘도 그물을 따라 어슬렁거릴 여유가 허락된다면 얼마나 행복한 일인가.

사랑이란 ‘하나’의 지배가 균열되었을 때 ‘둘’이 생각되는 장소이다. (……) 사랑이란 그 자체가 비-관계, 탈-결합의 요소 속에 존재하는 이 역설적 둘의 실재성이다. 사랑이란 그런 둘에의 ‘접근’이다. 만남의 사건으로부터 기원하는 사랑은 무한한 또는 완성될 수 없는 경험의 피륙을 짠다.
- 바디우의 <철학을 위한 선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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