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스퍼 존스가 문제다
크레이그 실비 지음, 문세원 옮김 / 양철북 / 2010년 8월
평점 :
절판


슈퍼맨과 배트맨 중에서 누가 더 용감할까?

엉뚱한 상상이지만 현실은 영화나 소설보다 훨씬 더 역동적이고 다양한 이야기를 끊임없이 만들어낸다. 하루하루 시간을 견뎌내는 것 같은 삶이 있는 반면 즐겁고 유쾌하게 창조적으로 이끌어가는 삶이 있다. 반복되는 시간과 공간 속에서 새로움을 찾고 주체적으로 행동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그래서 때로는 우울하고 만사가 귀찮기도 하며 때로는 하늘을 날 듯 기쁘고 행복하기도 하다. 롤러코스터를 탄 것처럼 천당과 지옥을 오고가는 예측 불가능한 삶의 비밀을 알고 싶지는 않다. 그저 이렇게 고민하고 직접 몸으로 부대끼며 살아가는 것이 인간의 운명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 본다.

소설은 인간 삶의 다양성을 바탕으로 상상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보여준다. 서사의 힘은 실현 가능성을 염두에 두지 않는다. 개연성이 있든 없든 상관없이 무한한 가능성의 세계로 독자들을 끌어내기 때문이다. 한국 소설이 가진 정서와 세계관은 공감을 극대화할 수 있으나 새로움과 낯선 경험이라는 측면에서 한계가 있다. 시간과 공간적 배경이 확장된다고 해도 독자들은 조금 더 새로운 이야기에 포섭되고 싶어 한다. 그런 측면에서 세계 문학은 세계를 확장하고 인간의 이해를 넓히며 우리 삶의 범위와 사고를 확장시킬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된다.

크레이그 실비는 우리가 접하기 힘든 오스트레일리아 작가다. 지구의 저쪽 반대편에 자리잡은 나라의 작가라는 사실이 먼저 흥미를 끈다. 세계화 시대를 살고 있다고 말하지만 아랍과 아프리카, 남미와 오스트레일리아 등 유럽 선진국에 비해 상대적으로 문화교류가 적은 지역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하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그래서 『재스퍼 존스가 문제다』는 조금 더 많은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지 않을까 싶다.

앞서 던진 질문으로 돌아가자. 슈퍼맨은 정의를 지키기 위해 별다른 용기가 필요 없다. 일반인들과 구별되는 특별한 능력을 가진 슈퍼맨에게 위험으로부터 사람들을 구해내는 것은 어렵지 않은 일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배트맨은 연약하고 평범한 보통 인간이기 때문에 자신의 공포를 이겨낼 더 많은 용기가 필요하다. 그래서 배트맨이 슈퍼맨보다 용감하다고 할 수 있다. 이렇게 엉뚱한 질문과 나름대로 일리 있는 논쟁을 통해 이 소설의 서술자인 찰리 벅틴은 베트남에서 이민 온 이방인 제프리 루와 코리건의 토착민 사이를 잇는다. 소설의 전면에 나타나 갈등의 중심에 서 있는 재스퍼 존스는 원주민과의 혼혈이다. 두 이방인은 전통적인 백인 거주 지역의 이방인으로 분명한 색깔을 가지고 멸시와 천대를 이겨낸다.

1960년대 베트남전이 벌어지던 무렵을 시대적 배경으로 삼은 이 소설은 반전평화의 메시지를 담고 있거나 인종차별문제를 정면으로 다루지는 않는다. 하지만 이 소설은 개성이 뚜렷한 세 소년을 중심으로 코리건 마을에서 벌어진 실종사건을 흥미진진하게 펼쳐 보인다. 추리 소설의 형태로 소년과 소녀들의 성장과정을 재치있고 유쾌한 문장으로 풀어낸 작가의 솜씨가 예사롭지 않다. 로라 위셔트의 실종으로 온 마을은 공포에 휩싸인다. 이 마을의 또 한명의 이방인 잭 라이어넬은 재스퍼 존스와 함께 세상의 편견과 루머가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 보여주는 인물이다. 등장인물들의 면면을 살펴보면 서술자인 찰리를 제외하고는 세상의 부조리를 보여주는 힘없고 나약한 인물들이다.

작가는 이들을 통해 차이와 차별이 인간의 삶을 얼마나 피폐하게 만들 수 있는지 극명하게 드러낸다. 비극은 나와 너의 차이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인정하지 못하는 데서 시작된다. 피부색과 종교, 지식과 재산의 유무에 따라 사람은 다르게 취급될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상상을 초월한 편견과 배태성을 가지고 있다. 나는 아니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머리와 가슴이 다르고 말과 행동이 다른 것은 최악의 상황에서 쉽게 드러난다.

백인의 마을에서 벌어진 백인소녀 실종 사건의 배후에 숨겨진 진실은 과연 무엇일까? 500여페이지에 달하는 만만치 않은 분량의 소설이지만 지루하지 않고 단숨에 읽히는 것은 복잡하고 정교한 소설적 장치 때문이 아니라 1인칭 서술자인 찰리의 솔직하고 실감나는 심리적 갈등과 모든 사람이 용의자가 될 수 있는 상황 설정 때문이다.

그러나 한 가지 아쉬운 것은 장정일도 지적했듯이 기존의 영미 문학과의 차별성이다. 무수히 많은 영미 소설 속 주인공을 차용하고 하퍼 리의 <앵무새 죽이기>에 바치는 오마주라는 띠지를 둘렀지만 오스트레일리아의 문학이라고 할 수 있는 특징과 개성을 읽어내지는 못했다. 우둔한 독자인 내가 부족한 탓이겠지만 인간의 위선과 증오에 대한 일반적인 해석 이상을 보여주지는 못한 점도 있기 때문은 아닐까. 어쨌든 10대 소년들이 감당하기에는 너무 어려운 일이 어떻게 해결되는지 궁금한 독자라면 왜 재스퍼 존스가 문제인지 확인해 볼 일이다.

어려운 일을 당했을 때 어떻게 행동하느냐, 상황을 얼마나 넓게 둘러볼 줄 아느냐가 어른인지 아닌지를 결정하는 거야 - <재스퍼 존스가 문제다>, 23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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