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험한 정신의 지도 - 당신이 지극히 정상이라면 반드시 읽어야 할 발칙한 정신분석학
만프레드 뤼츠 지음, 배명자 옮김 / 21세기북스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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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과의사가 수술 방법을 배우려면 2년이 걸린다. 그리고 수술을 하지 말아야 할 때를 아는 데에는 20년이 걸린다. - P. 9

인간에 대해 말할 수 있는 사람은 누구인가. 특히 인간의 정신에 관한 한 아무도 정확히 들여다 볼 수 없는 것이 아닌가 싶다. 사람은 누구나 육체와 영혼이 조화를 이루는 건강한 삶을 기대한다. 하지만 기계도 고장이 나듯이 나약한 인간의 몸과 마음은 때때로 이상이 생긴다. 워낙 정교하고 복잡하게 진화해 온 탓이기도 하고 문명이 발달하면서 점점 더 인간의 육체는 약해지기도 하기 때문이다. 특히 인간의 정신을 관장하는 뇌는 말할 수 없을 만큼 예민하고 신비롭다. 눈에 보이지 않는 정신세계를 뇌가 조정하는 과정에서 가끔 문제가 발생하는 것이다.

이렇게 인간의 영혼을 다루는 정신과의사이자 심리치료사인 만프레드 뤼츠의 『위험한 정신의 지도』의 원제는 ‘Irre!(미쳤다!)’이다. 이 말은 두 가지 의미를 함께 내포한다. 정신이 나갔다는 의미로도 사용되기도 하지만 정상의 범주에서 벗어난 양극단을 모두 의미한다. 중의적 의미를 내포하기 언어 유희적 성격을 띤 제목이다. 심리학 서적에 어울릴 것 같지 않다. 하지만 저자는 이 한 마디 말로 ‘평범’한 사람들이 ‘미친’ 사람들보다 얼마나 더 위험한지 미쳤다는 것의 범위와 한계는 무엇인지를 묻고 있다.

시대에 따라 그리고 과학과 의학의 발달에 따라 정신병에 대한 인식도 달라진다. 그렇다면 정상인이 더 문제가 아닐까? 이런 도발적인 질문으로 시작되는 만프레드 뤼츠의 정신병 이야기는 외람된 말이지만 재미있다. 정상에서 벗어난다는 것을 결코 반가워하지 않는 사람들도 많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은 정상에서 벗어난 특별함을 원하기도 한다. 우리가 정신병으로 분류하는 특성을 가진 사람들이 무조건 위험하거나 나쁜 사람들이 아닌데도 불구하고 우리는 정신병에 대한 지나친 혐오가 공포를 가지고 있다. 왜 그럴까? 그것은 몸이 아픈 것과 다른 보이지 않는 세계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 아닐까. 인간은 여전히 알 수 없는 미래와 보이지 않는 세계 때문에 절망한다.

그러나 저자는 인간의 정신세계를 한 권의 책에 담아내려는 대담한 시도를 한다. 인류의 역사만큼이나 많은 관심을 갖고 연구되어온 분야가 바로 인간의 영혼이다. 보이지 않고 만질 수 없는 세계는 실험과 관찰이 거의 불가능하다. 그만큼 발전 속도가 더디다. 저자는 이런 세계를 ‘웃음’으로 극복한다. 거시적인 안목에서 보면 우리 주변에는 골빈 사람들이 훨씬 많다는 주장이다. 극히 정상적인 정신박약자들을 비롯해서 수많은 편견과 아집, 극단적인 이기심을 가진 사람들을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다. 정말 문제는 정상인이라는 저자의 말에 공감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미치도록 정상적인 사람들(‘스탠더드패스’ - 작가가 사이코패스를 빗대어 만들어낸 신조어), 골빈 사람들이 우리의 삶을 결정하고 우리의 삶을 지옥으로 만든다. 사람들은 늘 비범한 인물을 기대하지만 언제나 평범한 인물을 얻을 뿐이다. - P. 61

이 말에 공감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 서글프다. 특별한 영웅을 원하는 것은 아니지만 우리의 삶을 지옥으로 만드는 미치도록 평범한 사람들 때문에 현실은 요지부동이다. 저자는 이 책을 통해 자신의 치료법 즉, ‘만프레드식 치료법’을 이야기한다. 그런데 정신병을 소개하거나 치료하는 데 중점을 두는 것이 아니라 정신질환에 대한 잘못된 편견과 상식에 대한 도전을 시도한다. 유쾌한 문장과 발랄한 상상력 재치있는 표현으로 다소 무거울 수 있는 주제를 가볍고 즐겁게 만는 책이다. 후반에서 보여주는 자신만의 치료법은 특수한 비법을 내놓았다기 보다는 현상에 대한 정확한 분석과 사람들이 가진 정신병에 대한 편견을 걷어내는 것으로부터 출발한다.

우리는 정상인가? 그렇다고 확신할 수 있을까? 어느 부분이 얼만큼 잘못 됐는지도 모르는 것은 아닐까? 이 책을 읽는 동안 독자들은 자신의 현재와 과거 그리고 미래를 돌아볼 필요가 있다. 저자의 말대로 정신과의사들이 행복을 보장하지는 못하기 때문이다. 스스로 점검하고 타인을 돌아보는 과정에서 ‘위험한 정신’의 신호를 감지할 지도 모른다. 정상이다, 미쳤다라고 하는 말 속에 숨은 뜻을 가만히 생각해 보면 정신분석학의 갖고 있는 모순과 위험을 포착할 수 있을 것 같다.

정신과의사들이 행복을 보장하지는 못한다. 독일 철학자 오도 마르크바르트의 말이 여기에도 적용된다. “인간이 무의미하다고 버린 것은 늘 의미가 있다.” 만약 전국의 조언자들과 삽화가들이 인간의 정신과 심리에 대해 멈추지 않고 중얼거린다면 언젠가는 이 영역에서도 올더스 헉슬리Aldous Huxley가 전체 의학에 경고했던 일이 실제로 벌어질지도 모른다. “의학이 너무 발전해서 건강한 사람이 아무도 없다.” - P. 269

인간에 대해 우리가 알고 있는 것이 얼마나 될까. 뇌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의 극히 일부분이라도 우리는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 걸까. 끝없이 이어지는 질문에 대한 답변을 구하고 싶은 것이 아니라 여전히 인간의 생각과 행동은 변화하고 있는데 우리의 고민과 연구 방법, 치료 방식은 정체되어 있는 것이 아닌가 싶어진다. 상황에 따라 급변하는 사회에서 인간은 얼마나 지치고 힘든 영혼을 달래가며 살아가고 있는지 모른다. 그래서 ‘미쳤다’는 말은 병으로 진단할 때 사용하는 의미를 이미 오래 전에 벗어난 것인지도 모르겠다.

만약 정상인이 문제라는 이 책의 명제에 당신도 동의한다면 바로 당신 때문에 인류는 희망이 있다. - P. 2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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