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몽
황석영 지음 / 창비 / 2010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승부를 결정하는 건 스피드?

1994년 10월 21일 아침 7시 40분경에 성수대교가 무너져 내리고 교각만 남은 장면을 TV에서 처음 봤을 때 황당함. 이듬해 1995년 6월 29일 붕괴된 삼풍 백화점의 처참함. 곧이어 1997년 IMF로 상징되는 한국 경제의 몰락.

우리는 혼란스런 근현대사에서 한강의 기적이라는 말로 치장된 눈부신 경제발전을 이루어왔다. 하지만 밥은 먹고 살자는 생존을 넘어서 경주마처럼 돈벌레로 살아온 것은 아닌가 싶은 깊은 반성의 시간을 가진 적이 없다. 해방과 6.25로 이어지는 치열한 생존 경쟁 조건에서 살아남기 위해 다른 사람을 밟고 일어서야했으며 무엇보다도 삶의 목표와 철학적 성찰이 없었다. 거창한 이념이나 궁극적인 지향점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소박하게 내 아이들과 우리들의 미래는 이래야 한다는 공동체의 가치관이나 삶의 질에 관심을 갖지 않고 살아온 것이다. 물질적으로 풍요롭고 경제적으로 윤택해지는 것이 곧바로 대한민국의 번영과 발전이라고 볼 수는 없다. 필요조건이지만 충분조건은 아닌 것이다.

이렇게 혼란스럽고 급변하는 상황에서 친일파가 그대로 우리 사회의 기득권이 되고 각종 이권을 선점하며 권력과 명예를 거머쥐는 뼈아픈 현대사가 전개된다. 시작부터 잘못 꿰어진 단추를 바로 잡으려니 이제는 엄두가 나지 않는 것이다.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된지 60년이 넘었지만 이제는 그 정통성마저 부정하는 시도가 공공연하게 벌어지고 악취를 풍기는 수구 보수 세력은 철지난 이념 논쟁으로 공공연하게 온 국민을 협박한다. 21세기에 벌어지는 부끄러운 대한민국의 현실을 돌아보면 한숨이 절로 나온다. 우리는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 것일까?

역사에서 아무런 교훈도 얻지 못하는 것이 가장 어리석은 인간이라는 어느 역사가의 말대로 우리는 시행착오를 반복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금방 잊어버리고 또 다시 같은 실수를 반복한다. 이제 발전의 속도와 차이가 아니라 발전의 방향과 질적인 면을 살펴야 할 때이다. 무한 경쟁 시대에서 살아남는 일이 중요했고 동족상잔의 비극을 통해 이념의 허망감을 확인했음에도 불구하고 본질적인 우리들의 모습이 크게 달라졌다고 보기 어렵다. 씨줄과 날줄처럼 정교하게 얽혀있는 우리의 삶은 시간과 공간의 축을 따라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넘나들며 자연스럽게 현상에 대한 원인을 찾고 결과를 예상하기도 한다. 역사가 그러하듯이 우리의 삶도 마찬가지다. ‘지금-여기’의 삶은 오래된 미래일 뿐이다. 그래서 뒤를 돌아보는 일은 추억을 더듬는 감상적인 행위가 아니라 현재와 미래를 조망하는 가장 기본적인 성찰이다.


숨가쁜 근대화의 파노라마, 그 빛과 그림자

황석영의 『강남몽』은 자본주의 상징인 백화점이 대한민국 강남 한복판에서 붕괴되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유래를 찾아 볼 수 없는 일이 연이어 벌어졌다. 성수대교가 무너진 다음 해에 백화점이 무너졌다. 천박한 자본주의와 부패 사슬로 얽힌 건설업이 빚어낸 참극이었다. 이 소설은 백화점에 콘크리트 더미에 깔린 유한 마담 박선녀의 삶을 추적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일제시대 일본군의 첩자 노릇을 하던 김진의 삶도 파란만장하다. 부동산과 강남 개발에 편승하여 투기 자본의 형성 과정을 보여주는 심남수까지 보태지면 대한민국의 현재를 보여주는 대표적 개인이라고 할 만하다. 거기에 조직폭력의 보스로 등장하는 홍양태가 가세한다.

정치와 경제는 분리될 수 없으며 더구나 우리의 삶은 그것으로부터 자유로울 수가 없다. 이 소설에 등장하는 제 2의 이인국 박사 같은 ‘김진’은 신산스런 근현대사의 상처이자 아픔이다. 선악의 기준으로 김진과 박선녀, 심남수와 홍양태를 손가락질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상황 논리로 그들에게 면죄부를 주자는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 사회가 견뎌온 세월에 대한 아픈 성찰의 시간을 갖자는 것이다. 첫 단추가 잘못 끼워진 옷은 처음부터 다시 채워야 한다. 하지만 역사를 어찌 그리 할 수 있겠는가. 그렇다면 지금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이겠는가 하는 질문이 남는다.

한 편의 소설이 시대에 물음을 던지고 과거의 시간과 미래에 대한 전망을 가능하게 할 수도 있다. 거시적인 안목에서 우리 근현대사를 성찰하는 무거운 소설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황석영의 『강남몽』은 최소한 우리 시대의 아이콘이 되어버린 ‘강남’이라는 신화에 대한 근원을 파헤치고 있다. 재미있는 이야기 한 편이 어떻게 우리에게 전달되느냐의 문제는 소설의 기본이다. 인터넷 연재라는 새로운 생산과 수용방식으로 독자와 만났던 소설이기 때문에 그 의미가 남다르다. 이제는 보편적인 방법이 되었기 때문에 특별히 색다르게 바라볼 필요도 없지만 전통적인 방식에서 벗어나 독자들의 흥미와 요구에 부흥하고 창작 과정에서 어떤 식으로든 독자들의 반응을 살폈을 작가의 속내를 상상해 본다.

가볍고 흥미진진한 단막극처럼 각 장의 주인공을 내세운 점이나 요정과 지하경제, 폭력세계 등 자극적인 요소들의 사적 전개 과정을 그린 점 등은 독자들의 호기심에 충분히 부흥했다는 면에서 성공적이다. 하지만 그것은 단순히 근대화 과정에서 펼쳐진 발전의 이면이 아니라 소설적 재미를 위한 양념일 수도 있다. 이 소설의 궁극적인 목적이 우리 사회의 아픈 성장과정을 그린 대한민국의 성장소설이라는 측면에서 볼 때 누구나 겪는 ‘성장통’이라고 치부하기엔 아직도 해결되지 않은 문제가 너무 많다. 아니 어쩌면 가장 큰 문제는 우리가 당면하고 있는 가장 큰 문제일 수도 있다. 우리 사회가 나아갈 공동체의 가치와 대한민국이 만들어가야 할 문화에 대한 반성은 지난 시간을 통한 지금 이 시대에 대한 반성에서 비롯되기 때문이다.

우리 소설 문학을 대표하는 작가를 이제는 트위터에서 종종 만난다. 얼마 전에 트위터를 시작한 작가에게 박수를 보내는 이유는 시대의 흐름을 쫓기 때문이 아니라 형식과 틀을 벗어나 동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 대한 관심과 책임의식 때문이다. 함께 더불어 호흡하고 울고 웃는 작가야 말로 이 시대가 원하는 젊음이 아닌가. 나이를 무색케 하는 작가의 자유분방함과 열정이 독자에게 그대로 전해지는 『강남몽』을 이번 휴가에 챙겨야 할 배낭 속 필수품으로 권할 만하다.


100701-057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