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란 무엇인가
크리스토프 바우젠바인 지음, 김태희 옮김 / 민음인 / 2010년 5월
평점 :
절판


사람들은 저마다 현실 밖에서 꿈을 꿀 때가 있다. 그 꿈이 어떤 것이든 우리 모두는 꿈꿀 권리가 있다. 그 꿈은 자신만의 즐거움일 수 있고 또 하나의 세계일 수도 있다. 현실원칙과 쾌락원칙의 간극이 벌어질수록 더 몰입하고 열광한다. 상징계와 상상계가 현실계를 반영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비틀리고 왜곡된 환타지어도 좋고 간절히 바라는 소망이어도 좋다. 다만, 우리들의 삶을 즐겁게 해 줄 수만 있다면.

4년에 한 번씩 지구인들은 발을 구르고 소리를 지른다. 가장 원시적인 형태의 동물적 본능에 가까운 스포츠 축구. 세련된 형태로 발전했고 자본과 매스미디어를 등에 업은 채 거대한 산업으로 발전했지만 축구경기 자체가 주는 즐거움과 흥분을 반감시키지는 않았다. 축구는 가장 오랫동안, 가장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은 지구인의 스포츠가 틀림없다.

초등학교시절에 잠시 축구선수 생활을 하다가 중학교에 진학하면서 공부(?)하라는 아버지의 강압에 못 이겨 포기했기 때문에 언제나 운동에 대한 미련이 남아있었다. 20대 중반까지 축구 경기장 계단을 올라 녹색의 잔디를 보면 미친 듯이 심장이 두근거렸다. 어떤 여자를 만났을 때 그렇게 내 심장이 90분간 두근거렸을까. 그것은 말할 수 없는 동경이며 환타지에 가까운 열망이었다. 그래서 여전히 축구는 때때로 관심과 증오와 환희와 열광의 대상이다.

1986년 박창선의 월드컵 첫 골 장면이나 최순호의 중거리 슛이 1982년 한일전 김재박의 스퀴즈 번트만큼 선명하게 기억나는 것은 또 다른 세계에 대한 그리움이었고 열정이었는지도 모른다. 런너스하이를 경험해 본 사람은 운동 중독에 빠지게 된다. 쉬지 않고 그라운드를 달리고 드리블하고 상황을 파악하고 순간적으로 판단하며 숨이 넘어갈 듯 달리다보면 동물적 즐거움의 극치를 경험하게 된다. 이것은 축구 경기를 즐기는 사람뿐만 아니라 경기를 보며 몰입하는 사람의 흥분상태를 포함한다. 독일의 크리스토프 바우젠바인의 『축구란 무엇인가』는 바로 이렇게 축구에 미친 사람들을 위한 책이다. 아니 왜 축구여야 하는지 궁금한 사람들을 위한 책이기도 하다.

알프레드 바알의 『축구의 역사』와 이은호의 『축구의 문화사』가 축구에 관한 에피타이저라면 프랭클린 포어의 『축구는 어떻게 세계를 지배했는가』와 닉 혼비의 『피버 피치』는 축구에 대한 본격적인 몰입의 즐거움을 선사하고 축구의 역할과 기능을 다각도로 살펴보는 책이다. 『축구란 무엇인가』는 ‘축구’라는 경기에 대하여, 축구의 역사, 축구는 어떤 의미를 갖는가라는 큰 주제를 가지고 축구의 모든 것에 대해 말한다. 실로 축구의 백과사전이라 할 만한 분량과 내용을 갖춘 책이다. 축구의 기원과 역사에서부터 사람들이 축구에 열광하는 이유까지 상세하게 다루고 있다.

축구가 관중에게 주는 매력은 본질적으로 발의 허약함에 있다. 고집 센 공을 다루는 발의 허약함으로 인하여 자주 실수가 일어나기 때문에, 어떤 일이 일어날지 우리가 절대 예견할 수 없고 거기에서 매력이 나온다. - 크리스토프 바우젠바인, <축구란 무엇인가>, 70쪽

이 책은 단순히 지식과 정보를 담고 있는 백과사전류가 아니다. 저자는 독일 축구의 주요 장면을 실감나는 문장으로 되살려내고 있으며 역대 월드컵을 기억한다. 축구에 대한 깊은 애정과 깊이 있는 분석을 토대로 다양한 접근을 시도한다. 저자는 축구에 관한 모든 이야기를 샅샅히 훑어내고 있다. 참 많은 이야기로 독자들을 사로잡는 책이다.

월드컵이 열리는 기간이다. 온 국민이 열광하고 있지만 단기간의 축제여도 좋고 분위기에 휩쓸려 흥겨움을 즐겨도 좋다. 집단적 애국주의와 전체주의의 광기라고 욕하지 말고 국가주의를 공고히 하는 부정적 측면을 강조하지 말고 ‘축구’ 자체가 주는 즐거움과 의외성 그리고 몰입의 즐거움에 대해 조금 더 생각해 보고 싶은 사람들에게 일독을 권한다.

"어떤 사람들은 축구를 생사가 걸린 문제라고 여긴다. 나는 이런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 다시 말하지만, 축구는 그보다 훨씬 중요한 일이다."(빌 생클리, 리버풀 감독) - 크리스토프 바우젠바인, <축구란 무엇인가>, 507쪽

미쳐야 미친다. 무엇에든 미치지 않고서야 그 지극한 즐거움의 언저리를 맛보지 못한다. 세상에는 다양한 즐거움이 있고 사람들은 저마다의 행복과 기쁨을 만들어 간다. 축구는 인류에게 어떤 의미를 갖고 있으며 어떤 역사를 거쳐 여기까지 왔는지 조금 더 생각해 보고 재미있게 즐겨보자. 2010년 남아공 월드컵을 스타디움이 아닌 TV를 통해 봐야하는 아쉬움은 사치에 불과하다. 즐길 준비가 되어 있다면 ‘공은 둥글다’는 말을 믿어보자. 승부와 상관없이 이미 축제의 한 가운데 서 있다. 우리들의 생이 늘 축제일 수는 없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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