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는 수많은 사람들의 열망을 담아낸다. 그것이 현실적이든 비현실적이든 가리지 않는다. 그래서 소설을 읽는 사람들은 타인의 이야기를 통해 나를 확인하고 이루지 못한 꿈을 꾸기도 하며 내 삶에 대한 안도감을 느끼기도 한다. 현실적인 욕망을 모두 이야기를 통해 실현하고 싶은 것은 아니다. 사람마다 조금씩 다르겠지만 지루한 세상에 던지는 돌팔매질 같은 것일 수도 있고 말할 수 없는 또 하나의 세계에 대한 호기심 같은 것일 수도 있다. 이장욱의 소설집 『고백의 제왕』은 현실과 비현실 사이의 공간과 현실이지만 이해할 수 없는 틈에 대한 이야기로 들린다. 8편의 단편은 제각각 불협화음처럼 다른 소리를 낸다. 통일된 주제도 없고 귀를 쫑긋 세우고 들을만한 흥미진진함도 찾아볼 수 없지만 다음 이야기가 못내 궁금하다. 기이한 소설들로 읽힌 것은 나만의 생각일지도 모르지만 현실이라는 것이 어차피 유리벽 안에 놓여 있는 사람들에겐 저 너머의 세상일 뿐이다. 작가는 소설을 통해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에 대해 고백한다. 그것은 내 이야기일 수도 있고 다른 사람의 비밀일 수도 있겠다. 다만 누구나 가지고 있을 법한 이야기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전혀 불가능한 이야기도 아닌 이야기들을 들려준다. 독자들은 작가의 이야기를 듣다보면 이상하게도 기시감이나 어디서 보았지만 기억이 나지 않는 느낌을 받게 된다. 아니 어쩌면 그것은 순전히 나만의 희미하고 어렴풋한 기억의 편린들일지도 모르겠다. 소설도 독자에 따라 전혀 다른 형태와 모습으로 받아들여지는 것이 당연하다면 객관적인 느낌이나 특징을 짚어낼 수 없는 소설들이 많다. 이장욱의 소설이 그러하다. 맨 앞에 내 놓은 ‘동경소년’이 그렇고 ‘변희봉’이 그렇다. 유끼를 사랑하게 된 나는 유끼를 사라진 유끼를 통해 잃어버린 시간이 아니라 무너져 내린 자신의 가슴의 빈 공간을 안타까워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괴물에서 아버지 역할을 맡은 변희봉을 사람들은 모두 김인문으로 기억한다. 내 입장에서 미치고 환장할 노릇이다. 하지만 죽기 직전 유언처럼 아버지의 입을 통해 변희봉이라는 이름 석자를 듣고 그것이 아버지와 나 사이에 공유할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다. 주인공들은 현실로부터 한 발짝 떨어져 세상을 보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이 아니다. 지극히 평범하고 일상적인 사람들이다. 다만 문제가 되는 것은 단 하나의 기억, 단 하나의 경험이 어긋난다. 그것은 때로 치명적인 상처가 되고 세상과 화해하지 못하는 결격 사유가 되기 십상이다. 앞으로로의 인생에서 이런 생활이, 이런 감정이, 이런 시간이 다시 오지 않으리라는 것을 직감하게 되는 때가 있는데, 그때가 꼭 그러했습니다. 일생의 모든 것이 갑자기 명백해지는 순간이 있는 법이니까요. - P. ‘동경소년’중에서 특히 표제작이 된 ‘고백의 제왕’처럼 지극히 일상적인, 어디서나 볼 수 있을 것 같은, 누구나 한 번쯤 경험했을 이야기들을 통해 작가는 독자들에게 끊임없이 사람들의 사소한 일상과 비루한 삶을 중얼거린다. 고백의 제왕은 사람들이 차마 하지 못하는 이야기를 해버린다. 그것은 타인을 불편하게 하면서 자신의 존재를 각인시키는 이중적인 역할을 한다. 또한 그 고백의 신뢰성보다 중요한 후일담을 통해 끝없이 이야기를 확대 재생산한다. 아니면 모든 상황을 종료하거나. 고백, 즉 이야기는 바로 소설이다. 이장욱의 소설은 바로 이런 사람들의 심리에 대해 혹은 자신의 욕망에 대해 충실한 소설이다. ‘아르마딜로 공간’과 ‘기차 방귀 카타콤’의 세계가 그러하고 간간이 흥얼거리는 김광석의 노래 ‘매일 이별하며 살고 있구나’가 그러하다. ‘곡란’에서는 바로 그러한 인물들의 집합소이다. 생을 이별하고 싶은 사람들의 찌질한 인생. 죽음조차 생에 대한 욕망이 아니라 두려움의 연장일 뿐이라면 얼마나 비참할까. 그래서 작가는 우리가 모두 ‘인형의 집’에 갇힌 사람들은 아닐까 반문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인생은 왜 빛이며 죽음은 왜 어둠인가? 인생은 왜 빛이며 죽음은 왜 어둠인가. 삶은 오히려 어둠의 편에서 오는 것은 아닌가. - P. 73 ‘변희봉’중에서(‘인형의 집’에 나오는 대사 재인용) 사람들은 하루하루 서로 다른 생의 목표와 즐거움을 찾아 떠나기도 하고 지루한 일상을 견디기도 하며 내일 혹은 희망이라는 피로회복제를 복용하고 매일 이별하며 살고 있다. 나와 상관없이 벌어지는 현실 세계를 유리창 밖의 이야기처럼 바라보기도 하고 뜨거운 열정과 가슴 뭉클한 감동으로 생의 한 순간을 살아내기도 한다. 길고 짧다는 지극히 상대적인 개념으로 우리들의 인생을 이야기할 수는 없다. 다만 그것을 바라보고 느끼고 살아내는 것은 소설가가 아니라 현실속의 독자이며 우리이고 바로 나 자신이다. 내 인생은 어떠한가? 나는 유리상자 밖으로 나갈 수 있을까? 무언가 고백한다는 것은 내밀한 사생활의 영역이 아니라 신산한 인생과 아득한 사랑에 대한 깨달음은 아닐는지. 인생은 신산했고 사랑은 아득했으며 대학은 생각보다 세속적이었다. - P. 92 ‘고백의 제왕’ 100602-04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