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커 (양장) - 제3회 창비 청소년문학상 수상작
배미주 지음 / 창비 / 2010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21세기 중엽, 유럽연합과 미국 등이 강대국에 대항해 출범한 동아시아연합은 이미 포화 상태에 이른 지구를 벗어나 새로운 삶의 터전을 찾을 수 있을지 모색하기 시작했다. - P. 7

미래는 알 수 없는 법. 꿈꾸고 상상하고 의심하라.

  시험 전날, 학교에 불이 나거나 갑자기 휴교를 하는 상상을 해 본 적이 있다. 피할 수 없는 상황에서 벗어나고 싶은 마음은 누구나 마찬가지다. 어른이 되어서도 가끔 황당한 상상을 하며 혼자 웃곤 한다. 유리벽 안에 갇힌 사차원의 세계를 들키지 않기 위해 ‘일코(일반인 코스프레)’에 가담한다. 평범하게 웃고 떠들고 보조를 맞추며 들키지 않고 엉뚱한 상상과 공상을 즐긴다. 정도의 차이가 조금 있을 뿐 사람은 누구나 조금씩 자기만의 세계를 가지고 있다. 각자 현실에서 그것을 어떻게 표현하는지 궁금할 때가 많다. 사람들은 정말 현실세계만을 받아들이고 사는 걸까?

  영화 <매트릭스>를 보며 장자의 ‘나비’를 떠올린 관객은 나뿐만이 아니었을 것이다. 이상과 현실 사이의 경계만큼이나 모호한 삶의 죽음의 경계. 초등학교 시절 밤에 잠들지 못하고 혼자서 고민했던 기억이 선명하다. 이대로 잠이 들면 그대로 죽어버릴 것 같았다. 다음날 아침에 눈을 뜰 때마다 안도의 한숨을 쉬었고 밤이 되면 또다시 죽음의 세계로 넘어가지는 않을까 걱정이 되어 한참이나 뒤척였다. 아무에게도 말한 적은 없지만 그때는 꽤나 심각했던 고민이었다. 사람들은 그렇게 현실과 꿈의 세계를 혼동하며 살아가는 것은 아닐까? ‘구운몽’의 성진이 처럼 지금 잠시 양소유의 꿈을 꾸는 것은 아닌가. 모든 것을 다 가질 수 있고 모든 욕망을 충족시킬 수는 없지만 행복한 순간이 있다면 그것이 꿈이 아닐까. 지구별로 잠시 여행을 온 우리들의 덧없는 삶에 그토록 집착하는 이유는 사람마다 조금씩 그 이유가 다르다. 나는 무엇이 집착하고 있는가?

  이렇게 말도 안 되는 상상, 황당한 공상이 얼마든지 즐겁게 펼쳐질 수 있는 공간이 바로 소설이다. SF, 미래소설, 공상과학 등으로 명명되는 이런 종류의 서사를 즐기는 것은 인간의 본능이다. 아주 오래전부터 즐겼을 이야기가 우리 문학에서는 정통 소설의 주변에 머물며 그 가치를 인정받지 못했다. 무협지 혹은 환타지와 구별되는 영역을 구축하며 과학의 발전을 예견하기도 했고 미래의 삶을 추측하기도 하며 사람들에게 색다른 즐거움을 주고 있는 분야지만 우리의 문학적 풍토에서는 설 자리가 많지 않았다.

  창비청소년문학상의 세 번째 소설로 선택된 배미주의 『싱커Syncher』는 『위저드 베이커리』와 유사하게 비현실적인 시간과 공간을 다루고 있지만 미래사회를 그린다는 점에서 구별된다. 문학적 상상력을 일궈낸 가상의 미래도시 ‘시안’은 지하세계에 건설된 유토피아이다. 수많은 영화에서 확대재생산하고 대부분 미래소설에서 그리고 있는 - 최근에 나온 『2058 제너시스』 - 이상사회는 인간의 끝없는 욕망을 반영한다. 하지만 그곳은 완벽한 세상이 아니라 디스토피아에 대한 경고에 불과하다. 관점에 따라 다르게 바라볼 수 있지만 보다 나은 세상은 ‘자연’스럽지 않은 곳이다. 자연에 대한 끝없는 도전과 지칠줄 모르는 인간의 욕망이 초래할 미래는 굳이 소설이 아니어도 어렵지 않게 상상할 수 있다.

  작가는 이 소설에서 청소년들을 주인공으로 내세워 완벽한 인공도시에서 ‘자연’에 접속(sync)한다. 게임을 테스트한다는 명목이지만 경험하지 못한 자연 즉, 동물의 감각을 가상현실에서 간접경험하게 되는 주인공은 눈에 보이는 세계와 보이지 않는 세계를 동시에 경험하며 세상을 낯설고 새롭게 바라보게 된다. 부정적 관점이 아니라 비판적 관점으로 세상을 보지 않으면 우리는 바보로 살아갈 수밖에 없다. 사람들이 말하는 대로 믿고 보이는대로 판단한다. 이성적 판단력과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논리를 스스로 갖추지 않는다면 편협한 이기주의자가 될 수밖에 없다. 작가는 청소년들에게 현실에 대한 비판적 상상력을 요구하고 있다. 우리 아이들은 그렇게 자라고 있는지 의문이지만.

  하층계급에 속한 미마가 신분상승을 위한 유일한 수단인 ‘시험’을 잘 보기 위해 ‘스마트약’을 찾는 사건의 출발은 우리들의 현실을 그대로 반영한다. 현실에 대한 의심과 상상력이 결여된 무조건적 복종과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한 각개전투로 우리는 결코 행복한 미래도 즐거운 인생도 얻을 수 없다. 이 소설은 220여페이지의 짧은 분량에 수많은 메시지가 담겨 있는 듯 복잡하다. 새롭고 흥미진진한 스토리도 아니고 충분히 예측 가능한 전개와 결론이 아니어서 아쉽다. 극적 반전이나 깜짝 놀랄만한 클라이맥스가 반드시 필요한 것은 아니지만 청소년들이 읽기에는 지루하고 재미없다는 치명적이고 단순한 평가를 받을 우려가 있어 아쉽다.

  현재든 미래든 소설은 결국 인간의 문제,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싱커’를 하게 된 후로 미마는 인간이 얼마나 자기중심적인지 깨달았다. 아니, 모든 생물이 서로에게 외계였다. 지식은 결코 '이해'가 아니었다. - P. 71

그것은 특별한 자든 평범한 자든 인간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는 욕망 - 이해받고 함께하고 싶은 욕망때문이었을 것이다 - P. 1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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