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58 제너시스 내인생의책 푸른봄 문학 (돌멩이 문고) 7
버나드 베켓 지음, 김현우 옮김 / 내인생의책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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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삶의 문제를 어떻게 그리고 얼마나 담아낼 수 있느냐에 따라 소설은 단순히 ‘재미있는 이야기’의 범위를 넘어선다. 때로는 『소피의 세계』처럼 철학이 소설의 옷을 입고 나타나기도 하고 서사 구조를 빌어 다양한 형식의 학문 영역이 융합되기도 한다. 그만큼 다양한 스펙트럼이 펼쳐진다는 것은 소설의 재미가 갖는 매력 때문이다. 어찌됐든 소설은 여전히 사람과 삶에 대한 가장 깊은 고민과 통찰을 제공한다. 사람과 사람이 모여 사회를 이루고 그 사회와 역사가 보여주는 다양한 이야기를 변주하며 현실과 미래를 조망하기도 하고 불편한 진실을 드러내기도 한다. 따라서 모든 소설은 인간의 삶이며 역사이고 미래이다.

  미래 사회를 다룬 고전으로 올더스 헉슬리의『멋진 신세계』, 조지 오웰의『1984』 등을 들 수 있다. 쥘 베른의『지구속 여행』은 SF 소설의 고전으로 손꼽을 만하다. 알 수 없는 미래에 대한 불안과 현실에 대한 비판적 관점을 제시하는 데 소설만큼 효과적인 방법도 없다. 얼마든지 상상하고 창조하고 파괴할 수 있는 세계가 바로 소설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소설가의 창조력 상상력은 『해저 2만리』처럼 미래를 예견하고 과학의 발달을 선도하며 인간의 삶을 짐작할 수 있는 척도가 되기도 한다. 왜냐하면 인간의 욕망이 멀지 않아 현실이 되기 때문이다. 이성적 존재인 인간의 지식과 과학기술은 끝없는 문명의 진보를 초래하고 있지만 본질적으로 인간이 인간인 이유는 변함이 없다.

  네덜란드의 작가 버나드 베켓의 소설 『2058 제네시스』는 무엇이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가에 대한 철학적 질문들을 쏟아낸다. <공각기동대>가 보여주는 인간과 인공지능 로봇의 미래사회 때문에 두려움은 물론 혼란스런 의문들을 가진 적이 있다. 충격적이기까지 했던 기억이 수많은 영화를 통해 확대, 재생산되고 있지만 근본적인 질문에는 답이 없다. 과연 인간이란 무엇인가, 인간과 기계의 차이가 단순히 뼈와 살과 피로 구분할 수 있는가. 과학적 경계를 넘어 존재론적 의문들에 대해 쉽게 답을 할 수 없는 문제이다. 이 소설은 독특한 형식과 깊이 있는 내용으로 이런 문제들에 대한 독자들의 깊은 고민을 요구하고 있다.

  플라톤의 이상국가를 미래 사회에 실현했다는 발상이 재미있는 소설이다. <허생전>의 ‘빈섬’이나 <홍길동전>의 ‘율도국’과 유사한 유토피아가 건설된 미래 사회는 행복할까? 세상과 단절된 후 신분과 계급에 맞게 완벽한 시스템 속에 갇힌 사람들의 삶은 온전하게 유지될 수 있을까? 작가는 가상의 유토피아를 만드는 일에는 서툴다. 서양의 고전철학에서 그 이상을 가져와 플라톤의 이데아를 실현하는 듯하지만 시스템을 감독하고 통제하고 지배하는 자들의 세계는 우리가 상상하기 어려운 음모와 함정을 숨기고 있다. 결국 사람이 살아가는 세상은 완전할 수 없고 어둠과 그림자가 있게 마련이다. 완벽한 세상은 어디에도 없다. 그곳은 어쩌면 영원히 인간의 마음속에만 존재하는 곳인지도 모른다. 복잡하고 완벽해 보이는 시스템에도 균열이 일어나며 그 작은 틈은 나비효과를 가져온다.

역사는 우리에게 음모이론의 무용성을 보여줍니다. 복잡한 것은 실수를 낳게 되고, 그런 실수 속에 편견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 P. 49

  이 소설은 철저하게 대화 형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시험관과 아낙시맨더의 대화는 단순한 외화에 불과하다. 학술원에 들어가려는 아낙시맨더의 준비와 사유의 틀은 결국 전체 시스템의 균열이라는 사실을 확인하는 순간 소설은 끝난다. 극적인 반전과 서스펜스를 즐기기 위한 소설이 아니다. 결론을 말한다고 해서 재미가 반감되는 것도 아니다. 이 소설은 시스템에 도전하는 아담과 인공지능 로봇 아트가 주인공이다. 둘 사이의 대립과 갈등이야말로 이 소설의 팽팽한 긴장의 끈이다. 인간과 로봇의 차이는 ‘인간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이기도 하다.

  아담의 입을 통해 작가는 인간이 이룩한 이성과 합리적 제도 그리고 조직과 시스템을 움직이는 거대한 권력과 음모에 대해 이야기한다. 과연 무엇을 위해 어디까지 개인을 희생할 수 있느냐는 질문은 전체주의에 대한 반성에 앞서 개인의 삶과 행복의 의미를 묻고 있는 듯하다. 철학적, 형이상학적 주제에 대한 성찰과 논쟁으로 이 소설을 읽을 수도 있겠지만 단순하게 행복이란 무엇인지, 인간의 삶을 인간답게 하는 것은 무엇인지에 대한 의문부호로 읽어도 좋다. 물론 정답은 없다. 사람에 따라 조금씩 다른 생각을 가지고 생의 목적과 방향이 다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인간이라는 공통분모에 대해 조금 더 생각해 보면 어렵지 않게 답을 찾을 수 있을 것도 같다.

역시 시간이 흐르면, 행동은 습관이 되고, 습관이 이성을 조금씩 몰아내, 결국 이성은 흔적도 없이 사라지게 되죠. 아담은 자기 머리를 믿지만, 결국 마음을 따릅니다. - P. 113

  머리가 아니라 가슴을 따라가는 존재가 인간이 아닐까? 작가는 이성보다 감성을, 논리보다 직관을 인간의 본능적 도구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모두가 공감하지는 않겠지만 적어도 창밖에 연녹색 이파리가 바람에 흔들리는 소리를 들어본 사람이라면 작가의 이야기에 고개를 끄덕이지 않을까 싶다. 우리는 모두 인간이며 인간에게는 인간의 길이 있는 법이라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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