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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령화 가족
천명관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2월
평점 :
식구 [食口] 한집에서 함께 살면서 끼니를 같이하는 사람.
가족 [家族]
1 부부와 같이 혼인으로 맺어지거나, 부모·자식과 같이 혈연으로 이루어지는 집단. 또는 그 구성원. ≒처노(妻孥) .
2 <법률> 동일한 호적 내에 있는 친족.
가족이 친족으로 이루어진 폐쇄적 집단이라면 식구는 끼니를 함께하는 열린 개념의 공동체를 의미한다. 피는 물보다 진하는 말은 생면부지라도 부모와 자식의 관계가 확인되는 순간 모든 관계의 룰을 넘어서는 것이 한국적 전통의 가족이다. 살을 부대끼며 한 지붕 아래서 함께 살아가는 가족이 곧 식구이고, 식구가 곧 가족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래서 우리에겐 식구가 곧 가족인지도 모르겠다.
사회학적으로 모계사회에서 부계사회로 일부다처에서 일부일처로 변화한 것은 권력의 문제로 볼 수 있다. 아직도 지구상에는 모계사회나 일처다부제가 존재하기도 하지만 문명국가의 가족제도는 대체로 일부일처를 기본으로 하고 있다. 박현욱은 <아내가 결혼했다>에서 현대사회의 일부일처제에 대해 재치 있게 의문을 던졌다. 앞으로 가족의 개념이 어떤 형태로 달라지고 그 의미가 어떻게 달라질지 모르겠지만 21세기가 되어도 한국적 개념의 가족은 견고한 형태로 유지되고 있다. 아니 어쩌면 불안한 사회일수록 경쟁적 관계의 사회질서가 강화될수록 가족의 유대는 더욱 공고해질지도 모른다.
독일의 사회학자 퇴니스가 분류했듯이 가족은 자발적이고 의도적인 목적이 개입된 집단이 아닌 공동사회에 해당한다. 이해관계를 떠나 오로지 혈연관계로 이어져 분리될 수 없는 관계로 치부되는 것이 한국적 개념의 가족이다. 따라서 입양, 재혼, 혼외정사 등에 의해 새롭게 결합된 가족의 경우 한국인의 정서로는 온전한 가족으로 받아들이기 힘들다. 천명관은 이런 예민한 문제로부터 『고령화 가족』을 온전한 가족으로 만들어냈다.
사십대 후반의 화자인 나는 관객을 배신했다는 평가를 받은, 철저하게 망해버린 영화를 만든 실패한 영화감독이다. 스튜어디스 출신 아내와 이혼하고 신용불량자가 되어 칠순이 넘은 어머니에게 돌아가지만 오십대 초반의 전과자 백수 형이 먼저 방 하나를 차지하고 있다. 아버지가 교통사고로 돌아가시면서 남긴 보상금으로 마련한 연립주택에 이혼하고 중학교에 다니는 딸을 데리고 돌아온 여동생이 결합하면서 다섯 식구가 완성된다. 뒤늦게 다시 모인 형제들은 서로의 상처를 드러내기 시작한다. 하지만 전처 자식인 형과 어머니의 불륜으로 얻은 여동생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는 과정이 이 소설의 중심축을 이루는 것은 아니다. 소설은 제각각 말할 수 없는 상처와 신산스런 고통을 맛본 가족들이 다시 모이고 흩어지는 과정을 통해 가족의 의미를 묻기 전에 ‘밥벌이의 지겨움’에 대해 이야기한다. 산다는 것이 무엇인지, 가족이 우리에게 어떤 존재인지 확인하는 과정을 통해 작가가 보여주려 한 것은 그저 통속적이고 특별할 것 없는 우리들의 삶의 단면이 아닐까.
하지만 인생은 영화가 끝난 이후에도 멈추지 않고 계속되는 법이다. 지루한 일상과 수많은 시행착오, 어리석은 욕망과 부주의한 선택……인생은 단지 구십 분의 플롯을 멋지게 꾸미는 일이 아니라 곳곳에 널려 있는 함정을 피해 평생 동안 도망다녀야 하는 일이리라. 애초부터 불가능했던 해피엔딩을 꿈꾸면서 말이다. - P. 45
죽는 순간까지 우리는 영화의 마지막 장면을 기대하는 것처럼 우리 삶의 해피엔딩을 꿈꾼다. 그것을 희망이라고 부르기도 하고 꿈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하지만 인생은 영화와 다르다. 작가는 그것이 애초부터 불가능한 일이라고 말한다. 그래서 지루한 일상, 수많은 시행착오, 어리석은 욕망과 부주의한 선택을 이 소설의 곳곳에 배치한다.
찌질한 인간의 향연이라고 할 만한 인생 막장 드라마와 같은 소설을 읽는 내내 공감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바로 가족이라는 이름의 중심에 선 어머니 때문이었는지 모르겠다. 어머니의 존재는 이 소설에서 ‘밥’으로 대변된다. 먹이는 일에 목숨을 거는 듯한 모습에서 우리는 평범한 어머니를 읽게된다. 가족으로 묶일 수도 없는 3남매의 연결고리가 되어 한 가족을 이끌고 살아온 어머니를 통해 형제들은 각기 또다시 세상 속으로 나아간다. 마치 생의 출발과 종착역 같은 어머니의 모습은 이 소설에서도 여전히 따뜻함의 원천이 된다.
더불어 『고래』에서 보여주었던 거침없는 상상력과 영화 스토리 같은 사건 전개 걸쭉한 입담과 구라 솜씨는 소설의 흡입력으로 작용한다. 잡지의 표지처럼 통속하다는 인생에 대해 우리는 다시 한 번 곰곰이 생각해볼 기회를 갖게 된다. 삶의 의미와 가족에 대해.
나는 언제나 목표가 앞에 있다고 생각하며 살았다. 그 이외의 모든 것은 다 과정이고 임시라고 여겼고 나의 진짜 삶은 언제나 미래에 있을 거라고 믿었다. 그 결과 나에게 남은 것은 부서진 희망의 흔적뿐이었다. - P. 286쪽
생의 마지막 순간에 얻지도 못하고 말 깨달음은 아닐까. 항상 미래에 살고 있는 우리들은 이 모든 순간과 과정이 바로 우리들의 인생이라는 사실을 언제쯤 인정하게 될지 모르겠다. 부서진 희망의 흔적뿐인 삶이 아니라 즐겁고 행복하게 순간을 즐길 수 있는 인생을 위해 다시 한 번 주변을 돌아볼 일이다. 가족을 넘어 우리 모두의 행복한 삶을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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